매거진 생각로드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준다는 것

나의 고민을 들어주는 사람들에게, 고맙다.

by 도르유

어릴 때부터 친구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을 좋아(?)했다. 친구들은 나에게 편하게 고민을 털어놓았고 나는 친구들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고민이라는 건 쉽게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것이기에, 그 고민을 들어주는 상대가 나라는 것만으로도 그 친구에게 내가 소중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동안 심리 상담사에 관심을 갖고 심리학과로 진학할까 고민할 정도였으니..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고민이야 말로 그 사람의 진솔한 이야기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기에 그 고민을 누군가에게 꺼내 보이는 것은 쉽지 않다.


어렵게 어렵게 꺼낸 고민에 대해 상대방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면 어떨까. 다시는 그 사람에게 어떤 고민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고민을 듣는 사람이 보여주는 반응과 태도에 따라서 그 이후에 내가 그 사람에게 다시 고민을 털어놓게 될지가 좌우된다. 그저 고민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위로받을 수 있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끼게 하는 친구들이 있다. 반면 고민을 들었을 때 그저 겉으로만 위로를 하고 진심으로 내 얘기에 공감하고 있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말이다. 그래서인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얘기하게 되는 주제가 달라지게 된다.


그리 좋지 않은 생각이긴 하지만, 내 고민을 상대방이 듣고 나에 대한 편견 또는 좋지 않은 인식을 갖게 되지는 않을까, 라는 걱정이 들 때가 있다. 아무래도 고민이라는 건 행복한 고민이 아닌 이상 그 사람의 진솔한 이야기인 동시에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은 것일 테니. (적절한 단어 선택이 어렵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는 멋모르고 내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했지만 이제는 처음 만난 사람, 또는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더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고민을 털어놓지 않게 되었다. 대신 오래 알고 지내면서 서로에 대해 깊이 알게 된 관계 속에서는 그런 제약 없이 서로의 고민과 생각을 주고받으며 힘을 얻고 있다.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준다는 것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 보니 나이를 먹을수록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들에 대한 부담이 더 커지고 있다.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어릴 때만 해도 고민의 범위가 좁았고 상대적으로 내 생각이나 의견을 편하게 말해줄 수 있는 고민이 대부분이었다면 이제는 그 주제도 무거워졌고 쉽게 다루기 어려운 고민들을 주고받게 된다. 그렇기에 내 생각을 상대에게 말하기 더 어려워지고 책임감이 많이 따르게 된다.


누군가의 고민에 100퍼센트 공감할 수 있을까.

고민을 들을 때마다 생기는 내적 갈등이 있다. 고민을 그저 들어주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내 의견을 말하는 것 사이의 갈등. 고민을 갖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저 고민을 털어놓을 상대가 필요하고, 고민을 말하는 것 자체만으로 마음을 비우려고 하는 경우가 있다. 이와 달리 '나 어떻게 하지?'라며 고민을 털어놓는 동시에 방안을 제시해주길 바라는 경우가 있다. 아무리 공감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고민에 100퍼센트 공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그만큼의 공감을 해주려고 하거나, 기대하려고 하는 생각은 위험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해결방안'을 알려주고 싶어 하는 성향이다. 생각보다 이성적이라서 현실적으로 바라보고 의견을 말해준다. 하지만 그러다가 문득 '상대방이 이런 얘기를 듣고 싶어 하는 걸까. 그저 듣기만 해줘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여기에서도 '적당히 하는 것'이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적절한 공감과 적절한 조언이 필요하다고 본다. 어렵다. 어려운 일이다.


사실 이 말을 하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 같다.

어렵고, 무겁고, 복잡함이 가득한 내 고민들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공감해주면서 함께 생각하는 시간을 아낌없이 보내줄 수 있는 나의 사람들에게 고맙다. 정말 고맙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고민을 들어주는 게 '그저 좋은' 사람이 아닌,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의 입장에서 '고민을 얘기하기 잘했다. 후련하다. 뭔가 길이 조금이나마 보이는 것 같다.'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고민을 '잘' 듣고 싶다.


나는 여전히 고민을 털어놓기 편안한 사람이고 싶다.


2016, 서울, 연남동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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