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퇴근 후 운동하러 가기 전 남은 시간 동안 책을 읽으려고 알라딘 중고서점에 간 적이 있다. 어떤 책을 사야겠다, 읽어야겠다는 생각 없이 들어가 찬찬히 책을 보던 중 눈에 들어온 책이 있었다.
임경선 작가의 <<태도에 관하여>>
포장까지 깔끔하게 되어있었기 때문에 내용도 보지 못했지만 제목만으로 끌려서 바로 구입했다. 읽으며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고 만약 내가 에세이를 쓴다면 이런 에세이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 소설, 사회과학 등 여러 장르와 분야의 책을 읽다가 오랜만에 에세이를 읽고 싶어졌고 자연스레 임경선 작가가 떠올랐다. 임경선 작가의 에세이라면 믿고 읽어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고른 책이 바로 <<자유로울 것>>이다. 구입하기 전 목차만 봤을 땐 주제별로 분류가 되어있지 않은 것 같아서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믿고 사서 읽었다.
서문에서 작가는 당시(2017년)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더욱 또렷하게 의식하며 살았다고 한다.
자유란, 내 마음과 영혼이 시키는 일을 내 몸이 자연스럽게 실천하는 가장 편안한 상태일 것이다.
그래서 책 제목도 자연스럽게 '자유로울 것'으로 정해졌다고 한다. 사실 책을 끝까지 읽은 후에도 이 모든 주제가 '자유'라는 단어로 묶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나의 챕터 속에서도 여러 주제가 섞여있고 한 주제가 여러 챕터 안에 들어가 있기도 한, 조금은 혼란스러운 책이지만 제목에 맞춰 내용도 자유롭게 넣은 건가, 싶기도 하다.
조금은 신변잡기 적인 내용도 들어있었기 때문에 모든 내용에 공감하고 인상 깊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내가 항상 머릿속으로 생각하지만 글로 정리가 되지 않던 주제에 대해 명료하고 심도 깊게 표현되어 있는 부분들도 많았다. 답답했던 내 머릿속이 명쾌하게 뚫린 기분이 들었다.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정리하려고 한다.
○ 행복과 욕망
우리는 행복이라는 것이 주관적인 감정임을 알면서도 행복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무언가, 어떤 객관적인 대상을 찾으려고 한다. 그 대상이 무엇인지, 그 양이 얼마나 되는가와 관계없이 나의 주관으로 행복의 크기가 결정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별일 없는 일상 속에서 그날만의 특별한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지금 그대로도 좋다는 생각으로 현재를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도 좋겠지만 더 나은 하루, 결핍이 충족되는 하루를 만들기 위한 욕망이 필요하다는 작가의 말. 행복과 욕망을 연결 지어 볼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이따금 욕망이 내 안에서 스멀스멀 올라올 때에도 이 정도면 괜찮지 뭐, 크게 불만족스러운 게 있는 것도 아닌데, 라며 욕망의 힘을 억눌러왔다. 욕망을 억누르고 싶어서 억누르는 것이 아니다. 욕망을 추구할 수 있는 근력이 부족해서이다. 욕망의 힘으로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확실하지 않은, 앞이 막막한 길을 걷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근력을 키우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막막하더라도 욕망하는 마음을 따르는 과정에서 나는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행복과 욕망, 무엇 하나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하는 삶을 추구하고 싶다.
○ 솔직하다는 것
솔직함이란 감정에 따라 일어난 생각을 숨기지 않고, 타인을 의식하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성향이다.
글을 쓰기 시작한 후 솔직하게 글을 쓴다는 것이 항상 어렵고 하나의 넘어야 할 산처럼 느껴진다. 나의 모든 것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하지만 과연 어느 정도까지 나를 보여줘도 괜찮을지, 나도 모르게 나를 꾸민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객관적으로 보려고 해도 스스로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하는 것'
나를 솔직하게 내보이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나를 잘 알아야 할 것이다. 나조차 나 자신을 잘 모르는데 남들에게 솔직한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잘 안다는 것은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의미이고 자연스레 더 나아져야 할 부분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다. 단순히 정말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만족하지 않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나가는 나를 좋아해야겠다.
○ 재능이란 무엇일까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엄연히 다른 두 가지 사이의 갈등이 일어날 때 가장 많이 힘들었다. 분명히 좋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왜 잘하긴 어려울까, 왜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 걸까,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역시나 어려운 걸까..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을 체감할 때마다 괴로웠고 아무리 노력해도 좁혀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좌절했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무엇 하나 특별하게 재능이 있었던 분야는 없던 것 같다. 곧잘 했던 공부도 상위 몇 퍼센트에 들 정도의 수재는 아니었고 두루두루 다 잘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렇다고 재능이 있어 특정 어떤 분야를 파고 들어갈 정도도 아니었다. 재능이 무슨 천재적인 어떤 것이라고까진 생각하지 않지만 '나 이거 잘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도 여전히 나에게 없는 재능을 갈구하며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싶어 한다. 글쓰기가 그런 일 중 하나이고 그림 또한 그렇다. 임경선 작가와 같이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하는 사람조차 매번 책을 낼 때마다 마지막 책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낀다는데.. 재능이 있는지조차 모르겠는 분야에서 잘하고 싶어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고 있는 일들. 취미는 그저 취미라고 생각하며 그저 즐길 수도 있겠지만 잘하고 싶은 욕심은 줄어들지 않는다. 선천적 재능이 없다면 후천적 노력으로라도, 오랜 기간 시간을 들인다면 조금씩 더 나아지지 않을까 희망을 놓지 않고 있을 뿐이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가장 부럽다.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지레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시작해놓고 언제 시작했냐는 듯이 멈추고 싶지 않다. 좀 과하다 싶을 정도의 다양한 취미 생활을 하면서도 어느 하나 놓지 않으면서 계속해보고 싶은 이유이다. 재능이 없다면 최선을 다해 보기라도 해야 할 테니.
○ 에세이 쓰는 법
1. 솔직함
2. 작가 고유의 문체
마지막 문장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알 것 같으면서도 잘 모르겠는 '솔직함'의 세계.
누군가 내 글을 읽도록 만들 '고유의 문체, 고유의 매력'. 많고 많은 책들 사이에서 독자의 눈에 띄어 읽히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일 것이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어떻게 '나만의 고유한 문체'가 만들어질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계속 쓰다 보면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걸까, 고민과 연구(?)를 해야 하는 것일까.
○ 그 사람을 잊지 못할 때
'시간이 약이다', 라는 말이 꼭 들어맞는 상황. '이 또한 지나가리라'도 잘 맞는 듯하다.
○ 양자택일의 문제
간절함을 넘어서는 '절박감'을 느껴야 한다고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간절함을 넘어서는 절박감으로 어떤 일을 시작하려는 결정을 해본 적이 있었나, 되돌아보게 된다.
뭐든 고민만 해서는 해결되지도 않고 결정하지도 못한다는 사실은 직접 행동하며 얻어낸 많은 경험을 통해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 경험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고민만 하며 이도 저도 하지 못하고 시간만 보냈다면 지금까지도 아무 결정하지 못한 채 허공을 맴돌고 있지 않을까.
○ 친구가 별로 없어서 좋다
가장 공감이 갔던 파트. 동시에 머릿속으로 정리되지 않아 막막했던 부분을 뻥 뚫어주는 글.
한때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까지 잘 맞지도 않는 오래된 친구들과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었다. 과거에 잘 어울려 다녔던 시절의 추억을 잃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 시간이 흐르며 각자의 주변 환경과 생각, 성격까지 달라질 수밖에 없음을 깨달아갔다. 1년이 지날 때마다 친구들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었고 나 또한 어릴 때와는 달라져 있었다. 각자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하면서 공통 주제도 사라져 오랜만에 만나 꺼내는 주제는 연애 이야기 정도뿐. 만나서 얘기하고 싶거나 연락하고 싶은 마음이 점차 사라져 갔다. 1년에 한 번 만나는 것도 마치 연례행사 정도로만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드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러다 작은 틀어짐이 생겼고 다음에 보자고 했지만 그게 마지막 연락이 되었다.
지금도 이따금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연락을 하고 싶다. 그럼에도 연락하지 못한 채 1년이 넘어가버렸다. 연락을 먼저 해서 이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은 건지, 그저 과거의 인연을 놓지 못하는 집착일 뿐인지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점차 멀어져 가는 사람들에 대한 무리한 책임감이나 죄책감을 갖지 말라는 문장에 위로를 받는다.
○ 아이를 키우면서 글을 쓰는 일
나이가 들수록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감각은 무뎌지고 감정은 가라앉는다.
소박한 일에 행복해하고 사소한 일에도 감사함을 느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별다를 것 없는 일상 속에서도 다채로운 감정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 나의 스물다섯 살
10년 후, 20년 후 나는 지금의 나에게 무슨 얘기를 해주고 싶을까, 무슨 얘기를 해줄 수 있을까.
지금 잘하고 있다고, 지금처럼만 살아가면 된다고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닌,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고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말을 듣고 싶다.
하루하루를 갈팡질팡 하지 않으며 충실하고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 마음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지만
최근 주말에 부모님과 뒷산 둘레길을 산책했다. 집에서 쉬고 싶은 마음에 두 분이서 다녀오시라고 했지만 그날따라 엄마가 같이 가고 싶어 하셔서 따라나선 길. 날씨 좋은 가을날, 1시간 반 코스의 둘레길을 걸었고 근처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들어갔다.
"요즘 재밌는 게 왜 이렇게 없니. 이젠 산에 가는 것도 재밌지가 않네."
갑작스러운 엄마의 한마디. 순간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새로 접하는 일에서 재미를 느끼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즐거워하는 나로서는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좋아하던 일을 해도 예전만큼 즐겁지 않고 새롭게 무언가를 하려고 해도 재미를 느끼지 못해 금방 그만두는 시기. 나이가 들어갈수록 설레거나 떨리는 일이 줄어들더라도 즐길 수 있는 일을 찾고 재미를 느끼며 살아가셨으면 좋겠다. 지금은 직장에서, 퇴직 후에는 또 다른 곳에서 삶의 재미와 활력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일을 찾으셨으면 좋겠다.
가끔 친구들과 건물주가 되어서 일은 안 하고 평생 놀고먹으며 살고 싶다는 얘기를 주고받는다. 농담으로 하는 이야기이지만 막상 그렇게 된다면 과연 행복할까 생각해보면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고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나의 삶에서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 나이가 들면서 더 깊게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 결혼하지 않는 인생
최근에 주변에서 결혼하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결혼에 대한 생각을 꽤 깊게 하게 되었다. 마냥 먼 이야기 같던 결혼을 현실적으로 마주해보니 이것만큼 어려운 결정이 없는 것 같다. 누구와 언제 어디서 어떻게 결혼할지, 아니면 하지 않을건지.. 생각하다 보면 끝이 없고 정답도 없는 일이기에 주변의 말과 생각에 휘둘리지 않고 자연스러운 내 마음의 흐름에 따라가고 싶다.
○ 작가에게 필요한 세 가지
재능, 노력, 그리고 운
○ 글을 쓰게 된 계기
작가마다 글을 쓰기 시작한 계기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임경선 작가처럼 다른 대안이 없어 선택했을 수도 있고 어릴 적부터 남다른 글쓰기 재능을 발견했을 수도 있다. 뒤늦게 글쓰기 매력에 빠져 본업과 병행하는 작가도 있다.
아무리 좋아하고 잘하는 글쓰기라도 마냥 즐겁고 쉽지만은 않은 일. 지금까지 해낸 것보다 더 '잘'해내야 한다는 부담이 들 수밖에 없다. 글쓰기뿐만 아니라 다른 일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고 되돌아가거나 멈춰 설 수는 없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안주하며 만족하기보단 '할 일'로 채워져 있는 이 길을 계속해서 묵묵히 걸어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