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무거운 가방, 가벼운 발걸음

오늘도 나의 가방은 무겁다.

by 도르유

'어후, 너는 가방이 왜 항상 이렇게 무겁니?'


현관문 앞에서 신발을 신는 동안 잠시 내 가방을 들어주시는 엄마가 매번 하시는 말씀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저 허허 웃어버린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 예정일 것 같아서, 왜 그런지는 나도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


고등학생 시기에 이어 대학생 때까지 내 가방은 기본적으로 백팩이었다. 멋진 디자인은 후순위였다. 크고 튼튼하고 어깨에 무리가 되지 않는 가방이 최고였다.


매일 아침, 머릿속으로 하루 동안 해야 할 계획들을 주르륵 세웠고 그 계획에 따라 가방에 책을 넣었다. 두껍고 무거운 전공책 두세 권을 넣고 자잘한 개인 물품들을 넣으면 가방이 터질 것 같았다. 노트북이 필요한 날이면 보조 가방까지 동원되기도 했다. 나에겐 그게 일상이었고 뻐근한 어깨는 덤이었다.


거창한 계획에 비해 부족한 시간과 마음가짐 때문에 하루 종일 빛을 보지 못하고 꺼내어지지 못한 책들이 있었다. 그날 하루의 계획을 모두 지키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었음에도 나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매일 아침 또다시 가방에 무언가를 꾹꾹 채워 넣었다. 일종의 강박이었던 것 같다. 하루를 무언가로 꽉 채워 보내야 한다는, 그래야 하루를 잘 보냈다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무거운 가방이라는 유형의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 같다.




대학생활이 끝나고 취업을 했다. 더 이상 무거운 책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으니 작고 귀여운 크로스백도 샀다. 이젠 뻐근한 어깨로 피곤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확신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

여전히 내 가방은 무겁다.


달라진 게 있다면 백팩만큼은 들고 다니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두껍고 무거운 전공책과 자격증 책 대신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 두 손에 들려있는 큰 숄더백과 쇼핑백에는 노트북과 아이패드, 블루투스 키보드, 책, 메모용 작은 다이어리, 드로잉북, 필통과 파우치가 들어있다.


여전히 하루를 가방 속 물건들로 가득 채워야 한다는 강박 같은 생각으로 매일 계획을 세우지만, 그중에서 하루 동안 꺼내어지지 않는 물건들도 있지만, 무거운 가방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그 안엔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들을 꺼내 하는 일들이 즐겁기 때문이다.


집 앞 카페를 가는 길,

가방은 역시나 무겁지만 발걸음만큼은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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