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오늘은 내가 요리사

by 도르유

생애 최초(!) 하루 종일 주방에서 요리를 하며 보낸 날의 이야기.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음력 생일을 따르는 아빠와 할머니는 설날 전후로 생신을 맞이하신다. 두 분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설날 전날인 오늘 할머니를 모시고 와서 함께 음식을 해 먹기로 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일이 일어났다. 잠든 사이에 온찜질 팩을 잘못 두어 엄마의 손에 물집이 잡힌 것이다. 최대한 물을 묻히지 않기 위해서는 일손이 더 필요했기에 내가 투입되었다.


요리에 대해서는 다른 취미에 비해 큰 흥미를 갖고 있지 않다. 가족 생일날이나 특별한 날엔 간단한 요리들을 해보기도 했지만 꾸준히 해오지 않아 어설픈 게 사실이다. 본격적인 요리의 전후 과정이 번거롭고 결과물에 비해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는 것이 요리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자취집에서 마지막으로 인덕션 불을 켜본지가 언제였는지 까마득할 정도이다.


오늘 해야 하는 요리의 양이 많기 때문에 도와드릴 생각은 당연히 하고 있었지만 내 할 일을 하다가 엄마가 부르실 때 주방에 가는 정도로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침에 상황이 이렇게 되어 처음부터 보조 역할을 맡아 요리를 시작했다. 엄마는 이렇게 다친 것도 어쩌면 내가 요리를 좀 배울 수 있도록 하는 뜻이라고 하시며 들어가는 시간이 반으로 줄었다고 좋아하셨다. 신나는 노래를 틀어두고 채소 씻기부터 시작했다. 오전엔 점심에 먹을 홍합 미역국을 전담해서 요리했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잠깐 커피를 마시며 쉬다가 다시 저녁 준비에 돌입했다.


엄마의 조금은 과장된 칭찬에 힘입어 요리를 계속해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도 모르고 있던 나를 발견했다. 생각보다 손이 빨랐고 국의 간을 잘 맞췄으며 못한다고 생각했던 마늘 채 썰기를 꽤 잘했다. 하나의 음식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는지 다시 한번 느낄 있었던 시간이었다.


여전히 요리는 어렵고 아직까진 직접 해 먹는 것보단 누가 해준 요리를 맛있게 먹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렇지만 오늘 하루 오랜만에 요리를 하면서 엄마와의 추억이 하나 늘어난 같아서 기쁘다. 내가 만든 요리를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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