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진심으로 즐거운 일이 하나라도 있다면

‘몽마르트 파파’가 보여준 열정

by 도르유
앞으로 뭐 하실 거예요?

다 생각이 있지

중학교 미술 선생님으로서 정년 은퇴를 하시는 아버지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보는 아들, 그리고 그 물음에 대한 아버지의 대답.


은퇴 후 1년 여간 산책의 연속인 하루하루를 보내던 아버지는 ‘파리로 가겠다’고 선언을 한다. 파리에 가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오랫동안 가져온 꿈이라는 것. 어머니는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며 파리에 가면 손에 장을 지진다는 위험한(!) 약속까지 한다.


그리고 얼마 후,


아버지는 파리로 떠난다. 손에 장을 지지겠다던 어머니는 ‘그림이 팔리면’이라는 조건을 앞에 덧붙이며 여전히 손에 장을 지진다는 말과 함께 따라간다. 그 모습은 아들의 영상으로 담 다큐멘터리 영화 '몽마르트 파파'가 탄생되었다.




그렇게 꿈꾸던 파리에 도착한 아버지는 몽마르트 언덕에서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또 그린다. 그림에 관심을 보이며 구매 의사까지 표시하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하필 파업을 하는 날이라 함께 파업에 협조하자는 주변 화가들의 생각에 동참했고 결국 마지막까지 그림 한 점 팔지 못한다. 아무리 그림을 ‘팔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라지만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누군가가 자신의 작품을 구매한다는 것에서 오는 기쁨도 느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실망하지 않는다. 변덕스러운 날씨로 갑자기 비가 와도 불평하지 않는다. 그저 이 순간, 이 장소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기 때문에.


프랑스의 여러 미술관에 가서 사진으로만 보던 작품을 실제로 보며 감동한다. 몇십 년 동안 미술을 가르치며 셀 수 없이 여러 번 설명했던 그림이지만 이제야 실제 작품을 만나는 순간, 그 기분이 어떨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파리에 가면 손에 장을 지진다고 했던, 그림이 팔리면 손에 장을 지진다고 말을 바꾸었던 어머니는 말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옆에서 묵묵히 기다려준다. 말없이 지켜보며 조용히 응원한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속으로 얼마나 지지하고 있는지 느껴진다. 서로 티격태격하면서도 떨어질 수 없는, 시끄럽지 않게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로서 함께 걸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토록 바라던 꿈이었던 '파리에서 그림을 그리기'를 마치고 돌아온 '몽마르트 파파'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개인전을 열고 라디오에도 출연하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퇴를 기점으로 더 이상 그림과 관련 없는 삶을 살아갈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엔 남아있는 열정이 강하기 때문에 가능한 모습이다. 파리에 가서 그림을 그리는 일이 그저 한여름 밤의 꿈으로 끝나지 않은 이유는 그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즐길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진심으로 즐거움을 느끼는 일을 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아무런 압박이나 제한 없이 온전하게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내가 이 일을 할 때 정말 즐겁구나 깨닫는 순간, 지금과는 또 다른 나를 만나는 듯한 기분이 들 것 같다.


많을 필요도 없다. 딱 한 가지, 즐겁다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리고 그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다면 그보다 더 행복할 수 없겠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더더욱 다양한 경험을 하고 부딪쳐보며 시도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나이가 들어도, 본업이 없어지더라도, 좋아하는 일로 가득 찬 삶을 이어나가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46. 46번째 글 기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