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과 불안보다는 설렘과 기대로
‘시작’이라는 단어는 자연스레 설렘을 떠올리게 합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가슴은 두근거리고 뭐든지 다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상상에 빠지기도 하죠. 하지만 ‘시작’이 마냥 설레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해보지 않은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걱정과 불안한 마음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출발선 주변을 서성일뿐, 앞으로 한 발자국 걸어 나가기 어려운 이유는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두려움을 뛰어넘는 설렘과 기대로 ‘용기’를 낼 때, 출발선을 넘어 한걸음 내딛을 수 있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새로운 출발을 위한 ‘시작’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의 ‘시작’을 되돌아봤습니다. 용기가 없어 출발선 앞에서 되돌아간 적도 있었고, 용기를 내서 시작했지만 아름답게 마무리되지 않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시작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27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속에서 끊임없는 ‘시작’의 순간들을 마주했고, 용감하게 그 출발선을 넘어섰기에 ‘지금의 나’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이겠죠. 모든 이들의 삶 또한 그럴 것입니다. 설렘 가득했던 시작, 걱정과 불안이 앞섰던 시작, 크고 작은 모든 시작들이 모여 각자의 삶이 되고 이야기가 되고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매 순간 ‘시작’하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가 아닐까요.
2017년 12월, 인생 첫 자취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 20년 넘게 서울 밖으로 벗어나 보지 않은, 서울 토박이입니다. 부모님의 고향도 서울, 외가와 친가 모두 차로 20분 거리의 서울에 위치해 있죠. 어릴 땐, 명절 연휴의 고속도로 정체를 경험해보고 싶어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빠가 질색하셨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그런 서울 토박이가 생전 처음으로 자취를 ‘시작’했습니다. 서울이 아닌, 부모님 집이 아닌 곳에서 혼자 살게 된 것입니다. 자취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취업을 했기 때문입니다. 자취가 로망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공감을 하지 못했고, 가능한 오랫동안 부모님과 함께 살고 싶었기 때문에 꽤나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지방 근무도 괜찮다고, 어디든 합격만 시켜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취업 준비를 했지만 막상 합격 소식을 받는 순간, 서울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실감이 나지 않았죠. 아직 오지 않은 일을 막연히 상상하는 것과 실제 눈 앞의 일이 되어버린 현실은 차원이 달랐습니다.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 그 사이에 집을 구해야 했습니다. 일단 무작정 갔습니다. 처음으로 부동산 어플을 다운받았죠. 이곳이 어디인지조차 모른 채 부동산 중개업자와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여러 집들을 둘러봤습니다. 인턴 기간 동안 살 집을 구하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에 5개월 단기 월세를 구해야 했는데 선택지가 얼마 없었고 생각보다 집들의 상태는 좋지 않았습니다. 자취방이 어땠으면 좋겠다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지만 사진으로 본 모습과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이는 집들은 실망의 연속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취의 현실인가.. 싶었죠. 그렇게 점심쯤부터 돌아다니기 시작한 자취방 구하기는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마무리되었습니다. 다행히도 마지막으로 본 방이 괜찮아 계약까지 속전속결로 이루어졌습니다. 집 계약이라니.. 작은 규모의 월세 계약이었지만 부모님 없이 계약이란 것을 한다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기에 잘 결정한 것인지, 이렇게 계약하면 되는 것인지, 어느 하나 확신할 수 없는, 불안하고 떨리는 마음이었습니다. 설렘보다는 불안과 두려움이 앞서는, 출발선 위에서 평소보다 더 큰 용기를 내야 하는 순간이었죠.
보증금 500에 월 33만 원.
그렇게 나의 첫 자취가 '시작'되었습니다.
한순간에 1인 가구의 삶을 시작하면서 생활의 많은 부분이 달라졌습니다. 청소부터 빨래, 요리까지 온갖 집안일들은 온전히 나의 몫이 되었습니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해주지 않는 일들이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며칠 신경 쓰지 않으면 집 상태가 엉망이 되기 때문에 하루의 일정 부분은 시간을 내어야 하지만 내일로, 주말로 미뤄버리는 인간적인 자취 생활을 하고 있죠.
집안일뿐만이 아니라 여러 크고 작은 결정도 스스로 해야 합니다. 자유가 주어지는 만큼 그에 따른 책임도 따라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때론 그 무게가 버겁기만 합니다. 최근 월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세를 알아본 적이 있습니다. 괜찮은 조건의 전셋집이 있었지만 안전한 곳인지에 대한 걱정과 혼자 결정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미루고 미루다 다른 사람이 먼저 계약을 해버렸죠. 결국 지금 살고 있는 월세집을 1년 더 연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허탈한 마음과 함께 스스로에 대한 걱정이 밀려들어왔습니다.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으로 앞으로의 많은 '시작'들을 놓치진 않을까, 다들 어떻게 용기를 갖고 출발선을 넘는 것일까.
20살이 되었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닌가 봅니다. 대학생이 되었다고 해서, 취업을 하고 직장을 다닌다고 해서, 내 힘으로 돈을 번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아직 이 세상엔 알아야 할 것들도, 경험해 봐야 할 것들도 너무나 많더군요. 직접 부딪치고 배우며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죠.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지만, 용기 있게 시작하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럽게 자취를 시작해서 2년 넘게 홀로 잘 살고 있는 것처럼 앞으로의 출발선도 조금 더 용기 있게 넘어보고 싶습니다. 설렘과 기대가 가득한 시작을 멈추지 않는,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을 상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