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마음 기록

'잘' 살고 싶다-는 마음

[지금의 마음을 기록하기 - 마음 기록]

by 도르유


'잘' 살고 싶다.


요즘 들어 혼자서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다.


잘 살고 싶어. 근데 어떻게 하는 게 잘 사는 거지?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는 거지? 다들 어떻게 잘 살고 있는 거지?


최근 들어 집중적인 스트레스와 피로가 겹치면서 몸에까지 반응이 왔다. 접질리지도 않은 발목이 붓고 아프기 시작했고 곧이어 골반, 허리까지 통증이 왔다. 어깨까지 굳은 느낌이 계속 들어서 결국 한의원에 침을 맞으러 갔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침을 맞았다고 엄마께 말씀드리니 다른 한의원에 한번 가보자고 하셨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정통' 한의원이 아닌 소위 ‘기'를 보고 진단하는 곳이라 이비라고 보려면 볼 수도 있겠지만 효과를 본 사람들은 계속해서 믿고 간다고 한다. 당장 엄마도 몇 달간 시달리던 불면증을 처방해준 환 하나로 해결해준 곳이었다. 토요일 오전 대기 시간은 무려 세 시간 반. 평소 같았으면 다음에 오지 뭐, 라며 다시 집으로 돌아갔겠지만 이상하게 이번만은 달랐다. 이번엔 뭐라도 제대로 진단을 받고 싶었다. 그만큼 지금의 상태가 스스로 답답했던 것 같다. 결국 밖에서 밥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와 2시가 넘어서야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요즘 내 상태를 간단하게 말하고 누워서 ‘기’의 상태를 진단받았다. 말로만 듣던 새로운 진료 방식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더 신기했던 것은 ‘기’ 하나만으로 진단한 의사의 말이었다.




‘나’에게 향하는 스트레스가 크다고 했다. 나 스스로에게 ‘이게 진짜인가, 가짜인가, 저 말이 맞는 것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좀 뜬구름 잡는 말이 아닌가 싶고 어떤 말인지 감을 잡기 어려웠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니 ‘지금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걸까’라는 질문에 대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렇게 살면 되는 걸까, 좀 더 나은 길은 없는 걸까, 잘 살고 있는 걸까..’ 대학에 가면 마냥 놀 줄 알았고, 취업을 하면 걱정 없이 살 줄 알았다. 하나의 언덕을 오르면 눈앞에 또 다른 언덕이 나타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뒤엔 수많은 언덕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점차 깨닫는 중이다. 하나씩, 어떨 땐 여러 언덕들을 동시에 오르며 정답이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정답이 무엇인지 찾으려고 하고 있는 듯하다. 가능한 가까운 정답을 향해 가려고 하는 마음의 발버둥이 ‘나’에 대한 스트레스로 표출된 것일까.


최고의 상태가 100이라고 한다면 지금 나의 상태는 56. 40 대면 아무것도 하기 힘든, 하기도 전에 못하겠다고 하는 정도이고, 50는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지금 하는 일들이 버겁게 느껴질 정도라고 한다. 열심히 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데 지금의 나는 몸의 상태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열심히 살려고 하고 있다고 했다. 매우 주관적인 의사의 의견이지만 그저 내 상태를 누군가 단번에 알아줬다는 사실만으로 순간 울컥했다.




나에게 부족한 부분을 몇 개 집어줬는데 나와 엄마도 공감하는, 뼈를 때리는 듯한 말들이었어서 엄청 웃었다. 그중 하나가 ‘융통성’. 살아가면서 어느 정도 융통성도 필요한데 나 같은 경우엔 선생님이 교실 청소를 시켰을 때 검사하지 않는 날에도 구석까지 성실하게(융통성 없게) 청소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삶을 스스로 되게 피곤하게 만드는 타입.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는 것은 좋지만 그게 건강을 해치는 정도까지 되면 안 되는데 말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쓸데없이 과하게’ 열심히 하는 부분이 있다. 취업 준비를 할 때 가산점을 위해 따야 했던 한국사 1급은 커트라인이 70점임에도 불구하고 50문제 중 2문제를 틀렸다. 취업 후 응시했던 사무자동화 산업기사 시험에서는 4과목 각 40점 이상, 총 평균 60점 이상이 커트라인이었던 필기에서 80문제 중 7문제 오답, 실기는 감점 없이 만점을 받았다.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다. 그냥 단기간 동안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무식하게 외웠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다. 적당히만 공부해도 자격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면서도 최선을 다해 완벽을 기하지 않으면 불안했기 때문이다.




원체 긍정적인 편이라 그런지 몸이 이렇게까지 반응이 올 때까지도 나는 나름 하루하루를 만족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침마다 천근만근인 몸을 일으키며 회사 가기 싫다고 되뇌면서도 막상 사무실에 도착해 일을 시작하면 또 할 만하다. 일로 인해 받은 스트레스는 사람으로 회복된다. 다들 나정도로, 그 이상으로 일하는데 이만큼으로 힘들다고 하는 건 투정 부리는 것 같았다. 지금 당장 무언가를 걱정하고 힘들어할 만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 나날들을 보내고 있기에 이 정도면 나름 ‘괜찮다’고 생각해왔다. 몸이 버티지 못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엄마는 내가 이렇게까지 힘들어하고 있었는지 몰랐다며 꽤 많이 놀라셨다. 나조차도 잘 몰랐는데 엄마는 오죽했을까. 진료를 마치고 나오면서 앞서 들은 ‘융통성 부족’ 진단 때문에 계속해서 웃다가 잠시 생각에 잠기셨다. 그리고는 앞으로는 요령도 좀 피우고 실수에 대해 스스로를 너무 압박하거나 자책하지 말라고 하셨다. 나도 그러고 싶고 그럴 필요를 느끼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물었을 때 감이 오지 않는다. 요령도 피워본 사람이 한다고, 요령이란 것을 피워본 적 없는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려고 하면 그것부터 스트레스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요령일 것까지도 없이 ‘융통성 있게’ 내 컨디션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할 필요는 느낀다. 100 중 80 정도만 해도 맡은 일은 잘 돌아가고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나는 100, 120까지 해야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이다. 몸이 이를 따라와 준다면 아무 문제없겠지만 지금은 따라와 주지 못하고 억지로 끌려오고 있는 상태. 스스로를 조절할 줄 아는 현명함이 필요한 시기인 듯하다.


엄마도 비슷하다고 하셨다. 몸이 힘들더라도 마음이 만족하는 쪽으로 살아오다 보니 나이가 비슷한 이모들과 비교했을 때 아프기도 더 자주 아프고 더 피곤하게 살고 있다고 하셨다. 그렇다고 더 잘 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초등학교 소풍 때마다 엄마는 매번 김밥을 싸주셨다. 전날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해서 당일 새벽부터 김밥을 싸야 하는 일이 워킹맘으로서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겠지만 한 번도 빠짐없이 소풍날엔 김밥을 싸주셨다. 편하게 김밥을 사서 보낼 수도 있었지만 이왕이면 집에서 건강한 식재료로 만든 김밥이 좋으니까, 그렇게 하는 게 마음이 편하니까 직접 만들면서도 몸은 피곤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엄마를 많이 닮았다. 엄마처럼 피곤하게 살지 말라고 하면서도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할 때 받는 또 다른 스트레스를 잘 알기 때문에 딱 어떻게 하라고 말하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을, 더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 같다.




한의사는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여러 책도 읽어보며 스스로 생각해보라고 했다. 한의원에서 이런 얘기를 듣게 될 줄은 몰랐는데 진료를 받으러 온 게 아닌 심리 상담을 받으러 온 것 같았다. 지금처럼 무식하게 융통성 없이 살면서 건강을 해칠 것인가. 절대 그러고 싶지 않다. 신체 건강, 정신 건강을 모두 잘 챙기며 ‘잘’ 살고 싶다.


앞으로는 좀 더 내 마음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보려고 한다.

더 세심하고 꼼꼼하게 내 마음의 상태가 지금 어떠한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 더 해도 될지, 잠시 멈춰야 할지 마음속 깊숙이 들여다보려고 한다.

내 마음을 알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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