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마음 기록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의 마음

[지금의 마음을 기록하기-마음 기록]

by 도르유


아... 망했다...



토요일 아침, 아니 해가 중천에 가있는 낮 12시, 침대 위에서 눈을 뜨고 핸드폰 시계를 보는 순간 던지는 외마디.


지난 한 주동안 쌓인 피로를 풀고 싶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늦잠을 자려고 했던 것은 아니였는데. 주말의 시작부터 기분이 좋지 않다. 이미 주말의 반이 날아간 기분이다. 좋지 않은 표정으로 일어나 엄마한테 왜 일찍 깨우지 않았냐는 괜한 볼멘 소리를 해버린다. 주말에라도 늦잠 자면서 피로도 좀 풀면 좋지, 라는 엄마의 대답에 할 말이 없다. 이러니하게도 시간이 많은 여유로운 주말보다 시간이 부족한 평일에 하는 일들이 더 많다. 평일날 퇴근 후, 30분 단위로 쪼개며 하려고 마음 먹은 일들을 체크해나가다보면 어느새 다 마치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그날 밤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뿌듯함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하루의 시작부터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주는 늦잠을 좋아하기가 어렵다.




오늘도 역시나 늦잠으로 토요일을 시작했다. 전날 밤, 예상보다 늦게 서울에 도착한 후 엄마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누다가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잠깐 TV를 보다보니 늦게 잠이 들었고 평일 동안의 피로를 풀고 싶다는 나의 의지가 늦잠으로 이끌어버렸다. 요즘 스스로 계속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오늘만큼은 ‘의도적인 늦잠’이었다. 부모님은 아침 일찍 자전거를 타러 나가셨기 때문에 혼자 간단히 밥을 차려먹었다. 너무 오래 잤을 때 나타나는 두통 증상이 있어서인지 몸이 무거웠다. 이렇게 어영부영 주말을 보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스쳤다.


늦잠으로 시작한 주말은 두 가지 갈림길로 나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주말을 잘 보내볼까’ 하는 생각과 ‘아 몰라.. 이번주말은 그냥 이렇게 보내지려나보다’ 하는 생각. 후자의 생각으로 방향이 틀어지는 순간, 몸은 무거워지고 정신은 멈춘다.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마음의 동력이 사라져버린다. 뭔가 하긴 해야하는데 무엇부터 해야할지, 그 모든 것들을 오늘 안에 다 할 수나 있을런지, 머리는 괜히 아프고 행동은 느려진다. 한번 탄력을 잃은 마음은 다시 돌아오기 어렵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것도 해야하는데, 저것도 아직 못했는데.. 머리 속으로는 하려고 마음 먹었던 일들이 쌓여있지만 몸은 따라 움직여주지 않으니 스트레스를 받을 뿐이다. 할 일들의 기한은 무기한으로 늘어난다. 차라리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라고 딱 정해버리고 마음 편히 쉬기로 한다면 좀 나을까. 과연 내가 아무것도 안 하기로 한다고 가마니가 되어 가만히 있을 사람인가. 몸은 가만히 있어 편할지 몰라도 눈 앞에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아까워서라도 무언가를 하려는 불편한 마음만 들 뿐이다.


20200527_194916.jpg


오늘은 ‘그럼에도 잘 보내자’는 생각으로 밖으로 나갔다. 이렇게 머리만 띵한 채로 집에만 있으면 안되겠다 싶었다. 집 뒤쪽에 있는 야외 카페를 갔지만 아쉽게 코로나로 인한 휴업 상태였다. 그대로 집에 돌아갈까도 생각했지만 어디든 가야 할 것만 같았다. 결국 프랜차이즈 카페에 들어가 글을 쓰는 중이다. 장소만 달라졌을 뿐인데 컨디션이 더 나아졌다. 무기한으로 미루던 일들을 조금씩이라도 하려는 의지가 생겨났다.




이번 주말은 ‘무언가 하는 날’을 보내고 있지만 만약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 된다고 하더라도 생각의 전환을 할 필요를 느낀다. 컨디션이 따라주지 않고 머리가 멈춰있는 상태에서 무언가 해야한다는 강박 때문에 억지로 하는 일의 효율은 그야말로 제로, 마이너스일 것이다. 일단 하기로 계획한 일이니까 하긴 하면서도 집중이 되지 않고 애꿎은 시간만 흘러갈 뿐이다. 몸도 마음도 힘든 날이 될 수 있다.


하루를 무언가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보내려는 강박을 조금은 내려놓기. 가끔은 정말 아무 생각없이 하늘만 바라볼 수도 있고, 그저 TV에 나오는 예능을 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웃을 수도 있다. 지나고 돌아봤을 때 아무 의미없는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그 순간 평온함을 느끼고, 엔도르핀이 도는 즐거움을 느꼈기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게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싶다.


‘아.. 오늘 늦잠 자고 밍기적 거리느라 이것도 못했고, 저것도 못했네’ 라는 생각를 조금만 전환해서 ‘오..! 오늘은 쉬면서 에너지 충전도 했지만 그러면서도 이것도 좀 했고 저것도 잠깐 했네’ 라고 해보면 어떨까. 하지 못했다는 자책보다는 했다는 성취에 더 집중해서 작게씩이나마 오늘도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나갔다는 것에 스스로 칭찬하는 하루를 만드는 것, 요즘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마음가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