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마음 기록

3월.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_마음

나로서 충분히 멋진 글씨체를 만들어나가기

by 도르유

초등학교를 다닐 당시, 한창 신경 쓰고 공들이던 일 중 하나는 바로 ‘글씨 쓰기’였다.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사라졌을 것 같지만 당시에만 해도 ‘글씨 쓰기 대회’가 있어서 글씨를 예쁘게 잘 쓰는 학생에게 상을 주었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는 열심히 써서 그 상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정도로 나름 예쁜 글씨를 쓰는 학생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글씨체는 정체성을 잃기 시작했다. 같은 반 친구들은 제각기 다양한 글씨체로 글씨를 썼는데 내 눈에는 가지각색의 글씨체가 모두 예뻐 보이고 멋져 보였다. 둥글둥글 귀여운 글씨체, 또박또박 바른 글씨체, 약간 흘려 써서 어른스러워 보이는 글씨체까지.. 그런 글씨체를 따라 쓰며 똑같은 글씨체를 갖기 위해 노력했다. 그 노력의 결과, 나는 이도 저도 아닌 정체성을 잃어버린 글씨체를 갖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글씨체가 어느 정도 자기만의 스타일이 잡혀있어서 일정하게 글씨를 쓴다면, 나는 때와 기분에 따라 글씨체가 달라지는 것이다. 어떨 때는 ㅇ을 크게 써서 귀엽고 둥글둥글하게 썼다가도 사인을 할 때는 살짝 기울여서 쓴다. 나 혼자 메모식으로 글씨를 쓸 땐 이게 무슨 글씨체인가 싶을 정도로 매번 형태가 달라진다. 글씨체를 어느 정도 통일시키고 잘 쓰고 싶어서 캘리그래피도 배워봤지만 그때뿐이고, 평소에는 정체성을 알 수 없는 글씨체가 나온다.


만약 내가 다른 친구들의 글씨체를 흉내 내지 않았더라면, 내 글씨체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더 나은 글씨를 쓰려고 노력했다면 어땠을까.




성인이 되고 나이가 들어감에도 주변과 끊임없이 비교하게 된다.


이제는 글씨체뿐만 아니라 말투, 화법, 친화력, 업무 역량 등으로 그 범위가 확대되었다. 말보다는 글로 표현하는 게 편한 나로서는 말로 무언가를 주장하거나 전달하는 게 어렵다. 가족, 친구 사이라면 그럴 일이 없지만 여러 명이 모인 어려운 자리 나 직장 상사 앞에서는 더더욱 힘들어한다. 머릿속으로 여러 번 정리하고 시뮬레이션을 한 후에야 겨우 말을 꺼낼 수가 있다.


이런 나와 달리 직급과 관계에 상관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말하고 표현하는 일에 탁월한 사람도 있다. 의사표현이 과하지 않아 선을 넘지 않으면서도 편하게 대화를 주도하기 때문에 상대와의 거리가 빠른 시간 내에 가까워진다. 말투도 정확하고 자신감이 있다. 기본적으로 유쾌하기 때문에 상대방까지 기분 좋은 기운이 전파된다. 정적이 흐를 틈이 없다.


그런 사람을 옆에서 지켜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 모습과 비교를 하게 된다. ‘왜 나는 저렇게 하지 못할까, 저런 상황에서 어떻게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왜 나는 자신 있게 내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걸까’ 끝도 없이 생각의 꼬리를 문다. 그래서 시도해본다.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새롭게 관계를 맺는 자리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나를 어필해보기도 하고 주도적으로 대화를 이끌어나가려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몇 년에 걸쳐 여러 차례 시도를 하면서 내린 결론은


‘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하자’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해 남들과 비교하고 억지로 나를 바꾸려고 하는 건 내 자존감만 깎아버리는 일이다.
이런 내 모습만으로도 누군가는 좋게 바라보고 있다.
약점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내가 갖고 있는 강점을 잘 활용해보자.
그다음에 다른 사람들에게서 배울 점을 찾고 더 개선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회피하지 말고 극복해보자.


더 예뻐 보이고 멋져 보이는 글씨체를 따라 하려다가 온전한 나의 글씨체를 잃어버리는 실수는 더 이상 하지 말기로.

나를 온전히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먼저 하자.

나로서 충분히 멋진 글씨체를 써 내려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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