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마음 기록

9월, 몸까지 아프게 만든_마음

악순환의 고리 속에서

by 도르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지만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 지금의 상태로 돌아와 버린다.


스트레스로 나타나는 증상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이렇게 몸 곳곳에서, 빈번하게 일어난 적은 처음이 아닐까 싶다. 스트레스는 모든 병의 근원이라는 말을 몸소 체감하고 있다. 기본 편두통부터 시작해서 7월부터 얻게 된 위장염, 그리고 이젠 하다 하다 두피까지 말썽이다. 참고 참다가 방문한 피부과에서는 역시나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을 원인으로 꼽았다. 이젠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다만 조금 많이 슬프고 씁쓸할 뿐이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내 몸을 망가트리면서까지 스트레스를 온전히 받고 있는 건지. 항상 내가 인지하는 정도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에 크게 반응하는 몸에게 미안하다.


언젠가부터인가 한 일주일간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12시에 겨우 잠들어도 2시에는 꼭 한번 깼고 7시에 일어나기 전까지 선잠을 자며 시도 때도 없이 눈이 떠졌다. 한 번은 돌아누웠을 때 보이는 콘센트의 빨간불이 너무나 신경 쓰이면서 저것 때문에 불이 나면 어떡하지 라는 말도 안 되는 망상.. 이 계속되어 새벽 내내 잠들지 못하기도 했다.


그때부터였을까, 아니면 그전부터였을까. 복합적인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요즘 나를 가장 괴롭히는 건 바로 회사. 정확히는 회사에서의 내 모습이다. 최근 편두통-위염-장염의 쓰리콤보가 연이어져서 거의 3일간 연차와 병가를 썼다. 회사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슨 일이냐고, 회사에서 누가 괴롭히냐고 물어봤지만 진심으로 그 누구 때문도 아닌 나 때문이었다.




입사한지도 어느새 만 3년 차, 햇수로 4년이 넘어가면서 그 유명한 3,6,9년 차 트랩에 걸린 건지 모르겠다. 내 나름대로 환기를 시키고자 3년간 일하던 부서에서 새로운 부서로 이동했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낳은 것이 아닌가 싶다.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업무를 최대한 빠르게 익혀서 내 역량을 발휘하고자 했지만 전혀 다른 성격의 업무를 맞이하면서 그 흐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걸렸다. 이미 그 업무만 3년째 하고 계신 선배님과 총괄 차장님 옆에서 내 역할은 너무나 미미할 뿐이었다. 오히려 입사 초기 사원이었던 시절에 맡았던 역할이 더 크게 느껴질 정도였다. 대리라는 직책에 맞게 지금까지 쌓아 올린 경험과 역량을 발휘하고 싶었지만 자리 잡히지 않은 업무 분장 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제한적이었다. 점점 업무에 대한 흥미를 잃었고 동기부여도 되지 않았다. 성향상 어느 정도 바쁘게 업무 처리를 하며 근무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당장 해야 할 일이 없어서 늘어지게 하루를 보내다가 퇴근하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업무가 새롭게 들어와도 내가 메인으로 처리할 수 없다고 먼저 생각해버리고 선배님이 중심이 되어 처리하시는 동안 서브 역할을 간간히 할 수밖에 없었다.


부서 이동을 하면서 나 스스로에게 3 달이라는 시간을 주었다. 신입일 때와 같은 마음으로 새로 업무를 배운다는 생각으로 딱 3달간 열심히 적응하고 익혀보자. 나름의 유예기간이었다. 3개월이 지나고 나면 부서 내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좀 더 주체적인 자세로 업무를 처리해나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새로운 부서와 업무가 적응하기 어려워도 그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첫 3달을 버텨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5개월이 지나 6개월 차를 향해 가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 악순환의 고리 속으로 파고 들어가고 있다. 지난 3년간 받았던 칭찬과 격려의 말들보다 내 안에서 들려오는 부정적인 말들에 흔들리고 있다. 어쩌면 그 모든 칭찬과 인정은 과대평가에 불과할 수도 있겠구나, 이제야 내 밑천이 드러나고 있구나. 어느순간 한계에 부딪쳐서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게 된 막막함만 느낄 뿐이다.




걔 나한테 보고 한번 안 하던데?


추석 연휴 전에 인사를 드리고자 저번 부서 차장님을 찾아뵈었다. 아파서 병가를 쓴 것을 알고 계신 차장님은 여러모로 나에 대해 걱정을 하고 계셨다. 그리고 전날 내가 속한 팀의 팀장님과 저녁 식사를 하며 저 말을 들었다고 하셨다. 식사 자리에서 한창 나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다가 들은 저 한 마디에 차장님은 너무 속상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하셨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6개월이 다되어가는 지금까지 팀장님께 보고드릴 일이 없을 정도로 내가 무언가 맡아서 처리한 적이 없었다.


가능하면 지금 내 상태에 대해 말씀드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저 말을 들으니 마음이 복잡해지면서 다 털어놓고 싶어져 버렸다. 업무 성격이 달라 적응하기 어렵다는 것, 부서에서의 내 역할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것, 동기부여가 되지 않고 일할 의욕이 나지 않는다는 것, 자신감이 없어졌고 보고 하나 드리는 것조차 어려워졌다는 것까지.. 터놓고 말하기 시작하다 보니 조금은 후련해질 정도였다.


나보다 10년의 회사생활을 더 해오신 차장님은 차분히, 진지하게 내 얘기를 들어주셨고 선배로서의 조언과 격려도 아끼지 않고 말씀해주셨다. 지금이 끝이 아니라고, 한 번은 넘어서야 할 단계이고 앞으로도 이런 단계는 계속해서 거쳐야 할 거라고, 보고를 한 번도 하지 못한 건 그 위의 선배들이 잘 신경 쓰지 못하고 있는 거니까 좀 더 적극적으로 부장님께 어필해서 보고드릴 기회도 만들어보라는 말씀까지 해주셨다. 마음을 다독이는 격려부터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의 조언까지 해주셔서 감사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너무 좋게 봐주셨던 모습이 아닌 실망스러워 보일 수 있는 모습을 보여드려서 죄송했다.





아직 당장 바뀔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차장님과의 대화 직후 급작스럽게 몰려온 업무를 처리하는 내 모습만 봐도 그렇다. 복잡한 항목을 제외한 간단하고 단순한 항목들만 골라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떨어져 버릴 대로 떨어진 자신감 때문에 사소한 것 하나마저 선배님께 여쭤보며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제출기한일에 연차를 써야 하는 선배님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져서 불안할 정도였다. 그런 내 모습에 다시 한번 마음이 무거워졌고 힘이 빠졌다. 새롭게 맡은 업무에 활력이 생겼지만 잠시뿐이었다.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사무실 속 내 모습이 싫다. 언제까지 이렇게 하루하루 출퇴근을 반복해야 할지 막막하지만 하다. 회사 가기 싫다는 생각을 이렇게 진심으로 해본 적이 있었나.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곳에서 느끼는 괴로움은 생각보다도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루빨리 이 악순환에서 벗어나고 싶다. 몸도 마음도 건강했던 예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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