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포스트잇은 책상 위에 하나씩은 거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연노랑 외엔 다른 색은 쓰지 않았다. 그 후로 알록달록 파스텔 그림이 연하게 그려져 있는 것도 정말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그러나 작고 한 가지 색상만. 그 취향 어디 가겠나. 그랬던 포스트잇을 까맣게 잊고 살다가 세상의 모든 음악 전기현입니다. 에서 DJ의 말에 포스트잇이 의도한 발명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작가가 써준 얘기겠지만 뜨문뜨문 귀에 들어오는 것들에 새삼 궁금해져서 한번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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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미국의 3M 연구소에서 스펜서 실버라는 화학자가 강력한 접착제를 개발하고자 했다. 그러나 결과물은 정반대였다. 접착력이 너무 약해 붙였다 떼면 쉽게 떨어졌고, 흔적도 남지 않았다. 동료들은 이를 쓸모없는 실패작으로 여겼다. 하지만 실버는 포기하지 않고 언젠가 활용될 날이 있을 것이라 믿으며 계속해서 알리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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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던 아트 프라이는 합창단 활동 중 불편을 겪고 있었다. 찬송가 책에 꽂아둔 종이 조각이 자꾸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그 순간 실버의 약한 접착제가 떠올랐다. 종이에 바르면 북마크처럼 붙였다 떼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의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책은 손상되지 않았고, 종이도 다시 사용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시장 반응이 냉담했으나, 3M은 무료 샘플을 대규모로 배포했다. 제품을 직접 사용해 본 사람들은 편리함을 곧바로 알아차렸고, “없어서는 안 될 물건”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결국 1980년, 포스트잇은 정식 출시되어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사무용품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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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라고 불렸던 발명이 세상을 바꾸는 도구가 되었듯, 우리의 삶에도 그런 순간들이 있다. 당장은 무의미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들이, 시간이 흘러 전혀 다른 모습으로 빛을 발할 때가 있다. 어쩌면 그것은 한동안 잊힌 채 서랍 속에 묻혀 있다가, 어느 날 뜻밖의 순간에 다시 불려 나오는 기억처럼 찾아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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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언제나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기대와 달리 어긋나기도 하고, 원하던 방향과는 다른 길로 흘러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 굴곡과 실패가 전혀 소용없는 것은 아니다. 포스트잇이 그렇듯, 우리의 작은 좌절과 멈춤 또한 언젠가 누군가에게, 혹은 우리 자신에게 새로운 의미로 쓰일 날이 찾아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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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완벽한 접착제보다, 흔적 없이 붙였다 떼어낼 수 있는 약한 접착제와 더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강하게 붙어버린 집착과 완벽함 속에서는 자유가 사라지지만, 적당히 머물다 떠날 수 있는 여유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더 오래, 더 넓게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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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지금 붙잡고 있는 실패가 있다면, 너무 서둘러 버리려 하지 말자. 그것은 아직 쓰이지 않은 메모지일 뿐이다. 언젠가 우리의 삶에서도, 그 한 장의 포스트잇처럼 꼭 필요한 순간에 펼쳐져 새로운 의미를 남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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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8년째 그리고 오늘도 내일도 기다리고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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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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