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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간에 못 들은 라디오를 유튜브로 듣다가 생각이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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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나무의 수액이 처음부터 달콤한 시럽이 되리라 누가 알았을까. 겨울을 견디기 위해 몸속 깊이 숨겨 두었던 맑은 액체가, 봄의 가장자리에서 인간의 손을 만나 불 위에 오르자 비로소 농축된 달콤함으로 변한다. 그것은 애초에 누군가를 기쁘게 하려는 목적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다만 나무는 나무의 시간을 살았고, 사람은 사람의 호기심으로 다가갔을 뿐이다. 우연히 흐르고, 우연히 덜어내고, 우연히 기다린 끝에 그 달콤함은 세상에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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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실린 또한 그러했다. 의도하지 않은 방치, 정리되지 않은 실험대 위에서 피어난 곰팡이 하나. 실패라 부르기엔 너무 사소하고, 성공이라 이름 붙이기엔 너무 조용했던 그 순간이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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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계획은 늘 빗나가기도 하지만, 삶은 그 빗나간 자리에 뜻밖의 선물을 놓아두기도 하는 듯하다. 준비되지 않은 자리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살아오며 만난 사람들을 가끔 떠올린다. 처음부터 의미가 될 줄 알았던 인연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그저 스쳐가는 얼굴이었고, 그저 같은 시간대에 같은 공기를 나누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어떤 만남은 단풍나무의 수액처럼 내 안에 조용히 고여 있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맛을 낸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 말 한마디, 그 침묵의 순간, 그 곁에 있던 시간 하나가 내 삶을 어떻게 농축시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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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불처럼 다가왔다. 처음에는 과하게 뜨거운 사람 아닌가 싶어 피하고 싶었지만, 그 열기 덕분에 내 안의 묽은 감정들이 증발하고 남은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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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사람은 페니실린의 곰팡이처럼, 이해되지 않았을 때도 있지만, 상처가 깊어졌을 때 나를 살리는 방식으로 남아 있었다. 난 그들에게 좋은 조건의 실험자가 아니었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삶은 뜻밖의 해답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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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중요한 것은 ‘우연’ 그 자체가 아니라, 우연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머물렀는지 모른다.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그냥 실패라 단정 짓지 않고, 잠시 불을 지피고 기다려보는 태도. 삶은 늘 묻는다. 이 만남을, 이 시간을, 이 어긋남을 조금 더 지켜볼 수 있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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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도 그렇다. 바로 달지 않아도, 당장 약이 되지 않아도, 그저 곁에 두는 시간 속에서 서서히 변하는 것들이 있다. 말없이 흘러가던 날들이 어느새 삶을 지탱하는 진한 맛이 되고, 지나간 얼굴 하나가 위기의 순간에 나를 붙드는 기억이 된다. 우리는 종종 너무 빠른 결론을 내린다. 쓸모없다, 실패했다, 의미 없다. 하지만 단풍나무는 수년을 견딘 뒤에야 수액을 내어주고, 약은 우연한 방치 끝에 발견되었던 것처럼 감동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꼭 의미를 주고 감동을 주지 않아도 어쩌면 그대로의 모습이 힘이 될 때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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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수많은 우연 앞에 서서, 그 우연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삶은 설명 없이 다가오고, 의미는 늘 나중에 완성된다. 오늘의 만남이 무엇이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믿어본다. 우연히 시작된 것들 중에, 가장 깊고 오래 남는 진실이 숨어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