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이 있다.
아주 크다기보다, 숨을 쉬듯 오래 붙들고 있는 소망이다. 말로 꺼내면 닳아버릴까 봐 마음속에서만 조용히 다듬어 온 바람.
옆지기를 비롯해 어떤 형식으로든 내 곁에 함께 하는 모든 사람들의 건강. 아프지 않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시간이 갈수록 더 선명해진다. 하루가 무사히 저물고, 밤이 평온하게 접히는 일. 그저 그것이면 충분한 날들이 많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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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하지 않아도 좋다.
주머니가 가볍더라도 마음까지 요동치지 않는 삶이면 된다. 예기치 않은 파도에 휘청이지 않고, 잔잔한 물 위에서 찻잔 하나를 내려놓을 수 있는 정도의 여유. 욕심이 많지 않아도 불안이 적은 보통의 날들이 이어지는 것. 그것이 내가 그리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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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쪽에 인형처럼 웃는 꼬맹이가 있다.
세상의 빛을 아직은 그대로 믿는 얼굴.
언젠가 사춘기가 와 마음에 바람이 불고 부모라는 이름과 사이에 틈이 생기더라도 그 간격이 아주 조금이기를 바란다. 조금은 벌어져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아주 가까운 거리로. 말없이 앉아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온도. 그마저도 없으면 더 좋겠지만, 있다 해도 상처가 되지 않을 만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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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바다 근처, 군복을 입고 해군 수송병으로 서 있는 아들도 있다. 바람 센 부두에서 규칙과 책임이라는 단단한 시간 속에서 무탈하게 하루를 넘기고 또 하루를 쌓아가기를.
세상이 만만하지 않다는 걸 알되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청년으로 조금 더 깊어지기를 바란다.
급하지 않아도 괜찮다. 단단해지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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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망들을 품고 사는 나는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눈부신 사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직은 그런 평온함이 없는 날들이지만
좋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서 좋고
날이 좋아서 좋고 날이 그저 적당해서 더없이 좋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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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도 나는 큰 소원 대신
작은 감사 하나를 접어 가슴에 넣는다.
내일이 오면 다시 꺼내어 바라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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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혈하고 검사결과 기다리는 중.
유전자 수치는 며칠 뒤에 나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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