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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 Dec 13. 2023

파란 하늘 아래의 긴머리의 남자와 새치의 할머니.



아침 점심 저녁 상관없이 옆지기의 머리를 벅벅 긁는 소리에 얼마나 가렵고 답답할까 싶다. 자가면역질환으로 인한 과민한 피부에 아토피로 목 주변의 빨간 얼룩이 심해 보여서 마음이 유독 쓰이는 저녁이었다.


"저기 요새 블루컷 뭐 그런 곳 없나? 꼭 그런 곳 아니더라도 찾아보면 좀 저렴한 곳 있을 것 같아서."

"우연히 봤는데 저렴한 미용실 많더라고."

"그래? 잘 됐네. 내일은 그냥 자르자."

"글쎄.. 좀 생각해 보고."


우린 서로 검색해 보다가 카카@헤어라는 곳을 옆지기가 찾았고 첫 고객 3.000원 할인까지 해서 17.000원 하는 곳에 예약 후,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점심시간을 피한 2시 30분 예약에 오랜만에 둘이 밖으로 향했다.
찾아간 곳은 작은 식당들 사이로 미로처럼 자그마한 가게들이 빼곡한 상가에서 조금 찾다가 들어갔는데 바람이 부는 밖과 달리 안은 엄청 따뜻했고 정말 작은 1인 헤어숍으로 학생. 젊은 직장인이 주 고객인 듯 보였다.



전화벨이 울려 잠시 밖으로 나왔다가 들어갔는데
벌써 한 움큼의 머리카락이 바닥에 흩트려져 있었다. 머리카락이 강한 두꺼운 직모라서 잘 못하는 분과 숙련  분의 차이가 금방 눈으로 보이는 두상이라 혹시 하는 마음에 온통 내 신경과 눈을 집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깎아 내려갈수록 내 속이 다 시원해졌다. 디자이너분의 말씀이 "많이 기르셨네요."
그 소리에 계산해 보니 70일이 넘어왔구나 싶었다.



돌아오는 길에 바람이 불어도 짧아진 머리에 잠시여도 상쾌했다. 조금만 걸어도 식은땀이 나는 옆지도 나의 걸음도 불 켜진 넉넉한 신호등을 다음으로 미루 있다. 겨울엔 늘 내 손을 잡아서 자기 주머니에 손을 넣고 함께 걷는데 오늘은 서로가 힘을 주며 걸어왔다. 걸어오는 동안의 하늘은 얄궂게도 푸르렀다.



이제 그날로 60여 일이 또 지났다. 난 이제 새치가 자라서 하얗고 긴 머리의 젊은 할머니가 되어있다.



내 사진. 그 날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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