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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 Jan 14. 2024

남은 9일... 불안의 버팀.

혈액종양 내과에서는 처음부터 대놓고 맡을 자신이 없다고 했었지만, 골수검사조차도 네 명의 의사 손을 바꿀 만큼 채취가 어려울 줄은 몰랐습니다.
적나라하게 쓰고 싶지만 생략하겠습니다.


대학병원 유튜브 그 어디를 보아도 백혈구 수치가 300.000이 넘는 환자를 예를 드는 곳은 찾아볼 수가 없어서 더 무섭습니다. 그나마 치료받은 것은 적혈구 수치가 일반 남성의 13~17에 비해 남편은 처음엔 4였다가 여러 차례의 수혈과 치료로 겨우 9 정도로 올려놓았고, 내과와 협진했던 위궤양 치료는 제대로 받은 정도입니다.


퇴원 전 날까지 담당의가 환자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환자분은 지금 만성골수성 백혈병 가속기도 아닌 급성 백혈병으로 가는 급속 기라서 저희에겐 거의 <폭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였었죠. 어떻게 위로받을 환자에게 폭탄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쓸 수 있을까.. 이미 접은 마음이었지만 한번 더 꼬깃꼬깃 기억에서 접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네." 했던 우리의 대답. 고쳐지지 않는 사람과 대화를 할 기력도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퇴원 후,
일단 위궤양을 마무리해야 했기에 처방해 준 약을 꼬박꼬박 먹으며 조금씩 고춧가루 후추 가루 짜지 않게 주의하면서 처음엔 죽부터 야채무침 양배추 차츰 적혈구 수치도 그렇고 거의 매일 붉은 고기를 먹으면서 단백질 섭취를 해주면서 세끼가 아닌, 하루 네 끼로 조금씩 식사를 했습니다. 이제는 세끼로 먹자고 저의 수고를 위해 남편이 먼저 말하더군요.


일반적인 싱크대가 아닌 작은 개수대와 하냐의 인덕션, 냄비도 프라이팬도 변변치 못한 상태에서 솔직히 쉬운 일은 아니긴 해도 ( 고수는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 무언가 해줄 수 있는 게 있다는 게 좋았습니다. 면역이 안 좋은 상태에서 위궤양 치료해 주셨던 내과의 선생님께서 위생을 강하게 말씀하셔서 다행히 데일 듯하게 뜨거운 물로 닦고 신경을 더 쓰게 되었습니다. 일단 이곳엔 구비되어 있지 않은 양념류와 여유 없는 상황에서 제일 저렴한 것을 검색해서 고기 야채 과일을 사는데 물가가 비싼 것은 이미 몸소 알았지만 정말 심해졌구나... 생각했습니다.


이제 오늘이 13일입니다.
예약일은 23일. "급속기" 다 보니까 하루하루의 조급함이 마음을 조여옵니다. 예전엔 없던 흐릿한 거뭇거뭇한 점도 다리 전체에 퍼지듯 올라 와 있고 낮잠을 안 자는 사람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쓰러져 잠들어버리고 비대한 비장크기에 동반되는 통증으로 40분 이상을 못 넘기고 티셔츠와 베겟잇이 다 젖을 정도로 온몸에 땀이 한눈에 보이면 이것이 증상의 하나이지만 잠시 잠깐 잊었던 머릿속을 '아~! 심각한 상태지...!' 하고 헤집고 다시금 저 깊은 늪 같은 마음속으로 빠져들었다가 그 무서움을 털어내고 곁가지로 새려는 정신을 얼른 부여잡습니다.


요즘 더 깜빡 깜빡이 더 심해진 건지 머릿속이 가득 찬 것인지 어쩔 수 없는 갱년기에 수년간의 스트레스에 더 무거워진 마음 때문인지 나의 깜빡거림으로 이 사람을 더 불편하게 할 때가 종종 있을 땐 무기력함까지 몰려옵니다. 남편이 오롯이 기댈 수 있는 아내가 못 되는 것 같아서.....

-  2024년의 내 마음의 첫 흔적.


*사진 :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클럽의
             박 시은님 作 (허락받고 담아 왔어요.)


* 우리에게도 이렇게 마음도 몸도 상황도 조금은
    빠르게 환함이 찾아오기를 온 힘을 다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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