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있어야 글을 잘 쓴다

퇴사하고 다시 글을 씁니다 - 은유의 감응의 글쓰기 12기 - 1

by 김애니
오늘 좋은 일 있었어요? 무엇 때문에 좋았던 것 같아요?
오늘 싫은 일 있었어요? 이유가 무엇 때문인 것 같아요?
글, 잘 쓰고 싶어요. 왜요?


글을 쓰며 살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었을 때 이유까진 생각하지 못했다. 막연히 잘 쓰고 싶었다. 20대 때 꿈을 품고 그 이유를 찾고 싶어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선택했다. 그때도 이유는 모른 채 글만이라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잘 모르니까 찾기 위해 독립출판 수업도 기웃거리고, 편집기자 강의도 들어보고, 맞춤법 수업도 들었다. 독립출판을 들을 때 인터뷰 모음집을 기획했다가 남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일이 썩 내키지 않았다. 편집기자 강의는 기자가 글을 쓸 때 도움이 되는 내용이었다. 우리 회사와는 맞지 않았다. 물론 맞춤법 수업도 내가 다니는 곳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나름대로 글쓰기에는 정답이 없다고 나를 합리화시키며 결론을 맺었다.


어떤 날에는 내가 아닌 타인이 글을 잘 쓴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의 글쓰기 능력을 하염없이 부러워했다. 왜 나한테는 저런 말을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심하게 머리를 굴리기도 했다.


글이 쓰고 싶어 선택했던 에디터, 컨텐츠 크리에이터의 삶. 주객이 전도된 삶에서 나는 지쳤고 쓰고 싶은 글이 없었다. 그렇게 퇴사하고 잃어버린 글쓰기의 감응을 찾기 위해 글쓰기 수업을 신청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부귀영화는 이미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줄어드는 돈으로 사는 퇴사자이기에 30만 원이라는 금액은 부담스러워서 망설였다. 하지만 점점 불러오는 배, 생명이 태어나면 더 늦어질 것 같다는 절박함으로 주저앉아버릴 것 같아 과감하게 신청했다. 돈이야 좀 덜 쓰면 그만 아닌가.


나에게 작가 은유의 의미


2015년 은유의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고 다시 글이 쓰고 싶어졌다고 기록해둔 포스팅을 살펴봤다. 얼마 전에는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를 읽고 은유가 쓰는 글쓰기에서 다른 이들이 흉내 내지 못하는 어떠함을 느꼈다. 뻔한 소리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작가인 그녀가 좋았다.


글이 더 쓰고 싶지 않을 때 작가 은유의 책은 말랑한 영양제 같았다. 작가 은유의 살아온 궤적을 읽으면서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문장이 떠올랐다.

글쓰기는 이렇다 저렇다 고주알미주알 떠들지 않아서 편안했다. 작가 은유의 글쓰기 강좌는 사람 냄새가 나서 좋았다.

인터뷰를 바라보는 관점이 따뜻해서 읽는 내내 편안했다. 그녀가 글쓰기 강좌를 진행하며 읽었던 책 리스트를 모조리 읽고 싶은 만큼 내 마음에 불씨를 지펴주었다.


내 인생에서는 의미 있는 작가 은유를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 글쓰기 수업으로 10주 동안 만나게 됐다. 횡재라고 생각한다.


오후 2시, 매주 화요일, 23명의 목소리


우리는 돌아가면서 이름, 별명, 왜 쓰는지, 왜 수업을 신청했는지 (공포의)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나는 왜 쓰는지, 수업 신청에 대한 이유가 명확하질 않아서 소개하기를 망설였다. 나는 왜 신청했을까 입을 열어 말했던 내용은 이랬다.

잃어버린 글쓰기의
감응을 찾고 싶었어요


이유 없이 글이 쓰고 싶었던 순수했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사람들이 이야기했던 자기소개 후에 은유의 짧은 코멘트는 잠언을 듣는 것 같았다. 너무 한 사람을 신격화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그래, 내가 그동안 듣고 싶었던 단어들이야.’


열심히 단어나 문장을 채집하지 않으려 했건만 또 열심히 하고 있었다. 대충하자. 제발.


정년퇴직한 60세 홀씨의 목소리


홀씨의 이야기에서는 연륜이 느껴졌다(홀씨인지 홀씨인지 부정확하다). 정년퇴직을 하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홀씨는 꼰대스럽지 않았다. 이직하고 싶고 일하고 싶어 발악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훅하고 지나갔다.


그리고 이렇게 끄적거렸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퇴직을 한다

신념을 쫓아 살았던 삶의 무게. 아무도 짊어지라고 말하지 않았던 삶. 가벼워지면 그때 별명을 바꿀 예정이라고 했다.


사회적 당위로 살았던 삶에 대해 많이 아쉬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 역시 그런 삶을 살았기에 당위가 주는 삶의 메마름이 두려워졌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신념이나 당위는 살면서 내려놓고 사는 게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동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내 안에 남은 말들


글은 대단하면서도 대단하지 않아요. 글은 시간이 있을 때만 쓸 수 있어요. 자신을 고정된 존재로 생각하지 않으면 돼요. 고정된 실체로 자신을 인식하면 글을 못써요. 떠나보내세요. 지금 판단하고 계세요? 행위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행동에 집중하면 판단하지 않게 돼요. 글의 주인의식을 버리세요. 쓰느냐, 쓰지 않느냐가 중요해요. 글은 표현이 되지 않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에요.
글 쓰는 사람은 왜곡된 프레임을 가지면 안 돼요. 나쁜 것은 나쁘다고 말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심판관이 아닌 열린 글쓰기가 필요해요. 일상에서 관찰력을 높여야 계속 글을 쓸 수 있고 실력도 늘어요.
누군가의 말이 나에게 남았나요? 내 안에 풀어야 하는 것이 있다는 의미예요. 글을 잘 쓴다는 건 전달력을 갖추느냐와 일맥상통해요.


시간이 많으면 누구나 글을 잘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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