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고 공부하며 글쓰는 녀자

퇴사하고 글쓰기 #1일1글쓰기

by 김애니

나는 월요일과 화요일에 글쓰기 수업을 듣는다. 메타포라 글쓰기가 2번 남았고, 감응의 글쓰기는 12번 남았다. 감응의 글쓰기는 아기와 함께 수강한다. 취소 1주일 전까진 고민했다.

아기와 함께 듣지 말아야 할 이유는 내 입장에선 여러 가지가 있었다. 아이가 어리고 데리고 다니기 불편하단 이유로 경험할 권리를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나만 생각했다. 함께 듣는 학인들에겐 수업 첫날 양해를 구했다. 양해를 구해도 불편할 이가 있을 수 있을 터.

몸은 고되지만 아기와 함께 무언가를 배우는 건 짜릿한 경험이다. 육아하는 엄마들이 바깥으로 해야 할 이유만 붙잡고 아기와 같이 많이 나섰으면 좋겠다.

작년 8월에 나는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이번에도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자기소개 시간이다. 출발하기 전부터 나는 어떻게 자기소개를 할 것인지 고민하지 못했다. 아기가 3시간을 한 공간에 있어야 했기 때문에 나는 녀석 생각으로만 가득했다.

나는 글쓰기 수업에서 아기 덕분에 처음으로 소개를 했다. 아기 이름과 내 이름 그리고 쓰고 싶은 글. 나도 모르게 소개를 하면서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는 아기를 싫어했던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나는 4남매 중 장녀로, 자녀가 많아서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있었다. 나만 사랑해줬던 엄마의 존재를 2살 이후로 동생들에게 빼앗기곤 아기가 울 때마다 짜증 섞인 감정이 먼저 올라왔다. 내가 낳은 아기를 대할 때는 짜증과 기쁨이 동시다발적으로 올라온다.


엄마의 사랑을 빼앗아간 동생의 존재가 울 때마다 나는 힘에 부쳤다. 사랑받고 싶지만 받을 수 없었고, 투정하고 싶지만 할 수 없었다. 나는 맏이이고 장녀이고 모범이 되어야 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사족으로 양육가설을 읽는 중이다, 흥미진진해, 인식의 변화가 있을 듯 싶다).


아기는 운다. 우는 것밖에 하지 못한다. 그 울음을 이해하기까지 나 역시 몇십 년이 걸렸다. 아기의 울음은 여유가 있을 땐 귀엽고, 버거울 땐 화를 낼 여지를 제공한다. 나는 아기를 입체적으로 바라볼 여지가 겨우 이제 생겼다고 착각한다. 6개월이 되니 꼼지락거리는 생명체에게 정이 들었다.

6개월부터 아기에게 다방면으로 자극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함께 들을 만한 수업이 내 생각엔 전무후무하다. 문화센터와 육아종합지원센터, 보건지소 등에 가면 있다. 함께 듣기만 원한다면 있다. 나는 아기와 함께 다이어트 위주가 아니라 제대로 내 몸을 인식하는 요가 수업을 듣고 싶고, 글쓰기 수업을 하고 싶다. 아기와 같이 가도 괜찮은 공간에는 내가 듣고 싶은 게 별로 없다. 대부분 프로그램이 천편일률적이다. 아기의 발달 위주로 엄마가 대신해주는 방식이다. 복사하고 붙여 넣기도 계속하면 질리던데, 기획하는 사람이 바뀌지 않는 걸까. 세상의 트렌드는 변하는데, 엄마들이 아기와 함께 공부할 환경과 여건은 제자리걸음이다.

엄마와 아기가 함께 듣는 글쓰기 모임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독서모임은 있다. 글을 쓰기 위한 독서모임은 쉽지 않다. 어떤 모임이든 아기와 함께 할 때, 관심받을 주체는 아기가 아니라 엄마다. 아기도 같이 와서 들어도 전혀 부담 없는 공간 기획이 필요하다. 어린이도서관이나 어린이집 인테리어가 공간에 도입되어야 한다. 장난감, 그림책, 수유실, 기저귀 갈이대가 갖춰져 있어야 엄마도 편안히 들을 수 있다. 엄마 마음이 편안해야 아기도 덩달아 잘 견딜 수 있다.

이번 글쓰기는 내 삶의 연장선이다. 엄마되어가기. 이 주제는 아기와 씨름하면서 엄마가 처음인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써보고 싶다. 엄마는 자연스럽게 되는 게 아니라 만들어져 가서 피동태 형식으로 정의했다. 주도적으로 엄마가 된다면 덜 괴로울까. 엄마되기, 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긴 하다.

내 이야기에서만 그치지 않고 나는 다른 '엄마들 인터뷰'를 해서 기록하고 싶다. 평범하다고 생각되는 '엄마 인터뷰'. 세상을 바꾸는 건 엄마인 여성이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엄마가 되고 달라져버린 세상과 나라는 존재를 향한 질문 그리고 바꿔버린 공기는 무엇으로 해석될까. 엄마가 되니까 주변 엄마들 이야기가 듣고 싶다. 이상하게 다른 이야기가 별로 없다. 그러니까 다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 하는데,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엄마의 기준이 없다. 그래서 같은 말만 한다. 나 역시 자녀에겐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지 구체적인 그림이 없다. 막연하다.

다른 이들의 엄마되기, 이야기를 들으면 막연한 좋은 엄마되기가 그려질 것 같다. 아직까진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에너지를 들여 들을 힘은 없다. 좀 더 쉬어야 들리지 않을까.

엄마 이전에 자신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행복해도 괜찮은데 엄마라서 망설여지는 순간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

사회는 모성신화를 자연스레 주입하면서 "넌 엄마잖아"라는 이야기를 겉치레처럼 한다. 나는 그런 엄마를 향한 아무말대잔치가 불편하다. 나는 엄마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역할놀이 하려고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 전생에 잔다르크였나 비장해.



keyword
작가 프로필 이미지 멤버쉽
김애니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구독자 942
월간 멤버십 가입 월간 멤버십 가입
이전 02화시간이 있어야 글을 잘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