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일차 #1일1글쓰기
회사를 퇴사하고 9년 치 묵은 연락처 정리와 SNS 중에서도 인스타그램과 카카오톡을 정리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일이었던 터라 한 번 만난 사람도 혹시 몰라 일단 저장해둔 게 많았다. 인연이 그렇듯 이제는 연예인의 연락처도 나에겐 아무 의미가 없어서 매니저 번호와 함께 삭제했다. 속이 시원했다.
집 정리하면서 회사 다닐 때 모아둔 명함집을 과감히 버렸다. 회사 들어갔을 때부터 차곡차곡 모았던 명함집만큼은 마지막 보루처럼 버리지 못했다. 늘 혹시나 하는 마음은 역시나 의미가 없다. 명함집을 버리니 카카오톡과 인스타그램 정리가 훨씬 수월했다.
어쩌면 나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굳은 다짐을 하는 의미에서 정리를 감행했다. '을'의 입장은 슬프다. 죽을 때까지 성질머리가 고약스럽진 못해서 갑이 되진 못할 것 같고, 을이 아닌 주체로 사는 삶이 더 낫겠다.
카카오톡을 정리하니 평소 연락하는 사람이 14명으로 줄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시 보였다. 인스타그램은 관심가지고 따라다녔던 계정이 900여 개였는데, 110명으로 줄었다. 팔로우로 남겨둔 110명 중에서도 보면 비교하고 질투심이 폭발할 듯싶은 관계는 피드에서 보지 않기를 눌러뒀다.
일 때문에 기독교 연예인들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따라다녔다. 연예인들의 인스타그램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피드를 보는 건 대리만족 후 찾아오는 비교 혹은 어떤 부정적인 감정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퇴사하고 육아하면서 인스타그램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게 좋지 않더라. 정신건강에 좋지 않은 관계들은 일제히 팔로우를 취소했다.
따라다니며 모았을 땐 900개였지만 관계를 정리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연락처를 정리하니 주변에 남는 사람은 가족이 대부분이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족'만 있으면 될까. 원수 같은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친구'가 많을까 궁금해졌다.
내게도 친구가 있다. 어렸을 때는 친구하면 희로애락을 같이 하는 사람 정도 의미였다. 나이가 들고 내 머리가 커져가니 친구를 대신할 고양이도 있고, 책도 있고 일방적인 대체재가 많아졌다. 비어있는 친구의 자리는 무생물이나 다른 차원으로 소통하는 것들이 가득해졌다.
회사 다닐 때 동료는 그곳을 벗어나도 주구장창 얼굴 볼 것처럼 굴었지만 결론은 만나거나 연락하기가 쉽지 않다. 회사 다닐 때만큼은 그 관계가 베스트였기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쉬우면 먼저 연락하면 되지 않느냐 물을 수 있다. 만나기 위한 에너지를 쓰는 일이 나는 버겁다는 변명을 둘러대니 회사관계는 답이 없다.
아기를 낳고 퇴사를 하고 나는 다음 인생을 사는 기분이 든다. 태어났을 때도 가진 게 없었던 듯싶은데 지금도 나는 움켜쥔 게 없는 처지다. 관심 있는 분야라고 쓸데없이 팔로우하지 않을 생각이다. 앞으로 정리할 게 더 있다. 브런치, 유튜브, 페이스북, 블로그도 정리하면 기름기 쏙 뺀 관계만 남을 듯싶다. 페이스북은 자주 하지 않아서 정리하는 게 귀찮긴 하다.
인생의 남은 시간에 끊임없이 나는 관계를 맺을 터다. 죽기 전까지 맺은 관계들은 최대한 끝까지 갈만한 인연들로 재구성될까. 그건 살면서 쉽지 않겠지만 그때 가서 또 정리하듯 비우고 채우면 되는 일이니까. 비워야 새 관계가 자리잡을 여유가 생기겠거니 흘러가는대로 두려 한다.
사진 =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