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알바 180일째 - 별별 사람 다 만나며 생활의 기술각
친구랑 수다 떨려고 카페에 가서 아무 생각 없이 주문하고 서비스를 제공받았을 땐 몰랐습니다. 손님이었다가 카페 알바를 하게 될 줄이야... 사람 인생 참 모르는 거죠.
카페 알바보다 극한 직업 많지만, 지금 제가 일하는 삶의 현장은 카페이니 그곳에서 뜻하지 않게 마주치는 사람들을 통해 생활의 기술을 갈고닦으며 내 마음속 블랙리스트를 정리해보고 싶어 졌습니다.
어떤 아저씨가 유령처럼 문에 다가와 유리 너머로, 저를 향해 수화를 하기 시작합니다. 엥? 뭥미...다짜고짜 이 여름에 고구마라떼를 달라고 하시네요. 자기가 하루에 한 번씩 온다고요.
제가 일하는 카게는 고구마라떼가 없습니다. 그리고 고구마라떼 손님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걸요.
손님은 왕일까요? 왕의 역할을 잘하는 나름 자격이 있는 손님만 가능한 이야기이지 않을까요.
180일 동안 일하면서 오늘 처음 봤는데, 마치 어제도 왔고 그제도 왔고 이 카게가 생긴 이후로 계속 온 것처럼 자기를 위해 없는 메뉴를 만들라는 손님.
고구마라떼에서 끝났으면 됐는데 신세한탄이 이어집니다.
자기 아들이 어디 대학 앞에서 20년 전에 커피가 없었을 때 유맹한 사람한테 강습비 줘가면서 가르쳤는데 말이야.
대형 프랜차이즈 때문에 장사가 안돼서 지금은 이태리 음식점 두어 개 한다고 말이죠.
이 손님은 카게에 고구마라떼를 먹고 싶어서 왔을까요? 아니면 아들이 커피 하다가 망한 하소연을 하러 왔을까요?
결국 이렇게 가다간 시간만 갈 것 같습니다. 다행히 저보다 경험 많은 사장님이 도와주셨습니다.
지내다보니 다짜고짜 손님에게는 똑 부러지는 맺고 끊음이 중요합니다. 전 회사에서 사람 만났을 때 이걸 잘 못해서 1시간 들을 이야길 2시간 듣고 나머진 말리고 정리하다 고생한 생각이 나네요.
맺고끊을 땐 생글방글 웃으면서 "뭐 드시겠어요"해야 본론이 나옵니다.
안 그러면 이야기가 길어져요. 대화는 소통이라고 하는데 일방적인 내뱉음까지 받아내야 하는 게 알바의 의무는 아니잖아요.
달지 않은 걸 원했던 다짜고짜 손님은 3천 원짜리 아이스초코라떼를 사서 다행히 가셨습니다.
내가 경험해봐서 아는데 주로 중년의 지긋한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이 보여주시는 모습 중 하나입니다.
해봐서 아는데 왜 지금은 안 하세요?라고 성격 같아선 질문하고 싶습니다.
경험은 언제 사용하는 것일까요?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건 아니라고 보는데요. 가타부타 여러 가지 잔소리가 시전됩니다.
음료 하나 시켜놓고 구구절절하니 답도 없습니다.
다음 손님이 올 때까진 개미지옥입니다. 카게에 손님이 많아지거나 더 넓은 곳에서 알바하고 싶습니다.
테이크아웃 카게는 회전율이 생명이죠. 1,500원 커피만 시키놓고 1시간 이상 밀도 높은 대화를 대기석인 불편해 보이는 자리에서, 수다 삼매경을 굳이 시전하는 손님들이 계십니다.
대기하는 의자를 다 없애는 방법뿐...빨리 사장님이 큰 로스터기를 장만해서 의자를 없앴으면 좋겠습니다.
죽치지 않을 손님을 위해 자리를 양보해주세요. 그리고 불륜처럼 보이는 애정행각 금지, 옆집 가게 위생상태 비난은 자제해주세요.
연습은 저기 넓은 공원가서 하시고, 옆집 가게 위생은 직접 전달해주세요. 저희 이웃이에요.
손님 입장에선 이것저것 고를 자유가 있습니다. 돈을 내고 서비스를 이용할 의무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리 많은 메뉴가 아닌데 왔다갔다리 하면 계산하면서 마음이 못내 어렵습니다. 이 메뉴 골라서 결제했더니, "죄송한데 이 메뉴로 바꿔주세요"라고 한 번은 괜찮은데 더 그러면 좀 곤란해요.
이 메뉴 괜찮다며 추천도 하고 싶을 때도 있는데, 강요처럼 느껴질까 봐 아무 말도 하지 못할 때가 있으니까요.
그냥 시간이 약. 대신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진 말아요. 계산하려고 포스를 누를까 말까 당신만 바라보며 기다리는 것도 은근 어렵거든요. 민망해요.
이때도 해결방법은 다음에 온 손님이 해결해줍니다.
큰 프랜차이즈에선 손님과 일정한 거리두기를 한다고 합니다. 부럽습니다. 작은 카게는 그게 잘 안됩니다.
손님일 땐 카게 언니나 오빠인 사장님이 알아봐 주고 기억해주고 맞장구쳐주는 게 좋더라고요. 관심받고 싶었나 봐요. 저 때문에 아는 척 해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지만 손님이 먼저 너무 지나치게 앞서서 친하게 다가오면 호들갑 떨며 놀라게 되더라고요. 손님이 떠난 후 생각해보면 자주 오는 이가 아니었거든요. 이제 2번 와놓고 너무 아는 척하면 좀 그렇지 않나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스킬이 필요해요. 곰곰히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단골은 좀 더 일해봐야 알 것 같아요.
친한척형은 메뉴를 고를 때뿐 아니라 카게 앞 꽃이 바뀔 때마다 평소 말 한마디 붙이지 않는데 지나가면서 꼭 그렇게 툭툭 던지고 갑니다.
카게를 위해 디스플레이를 했지, 대화의 소재가 되라고 만들어둔 거 아니거든요. 귀찮을 때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서비스업에 적격인 인재는 아닌 듯 합니다.
사람 관계라는 게 서로 친해지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는 점 기억해주세요.
별별 사람을 만나지만 '좋은 손님'이 있어 버팁니다. 결론이 아름답네요. 다른 곳에서 흔하게 먹을만한 커피를 꼭 제가 알바하는 곳까지 와서 먹어주고, 배고플까 봐 왕김밥까지 나눠주고, 경영의 고민도 함께 해주기도 하고 말이죠.
대학교 다닐 때, 99편의 나쁜 연극을 봐야, 1편의 좋은 연극을 알아볼 수 있다는 쌤의 말이 유독 살면서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인생이라는 게 그런가 봅니다. 99개의 나쁜 일을 겪어야 1개의 좋은 일을 누리고 감사하게 느끼게 되는 건가요. 99개가 좋은 일이고 1개만 나쁜 일이면 좋겠는데 말이죠.
아무것도 모르고 살다가 길 위에서 여러 인생 캐릭터를 만나면 오늘도 내 삶의 블랙리스트가 업데이트됩니다. 그런 업데이트를 통해 배웁니다.
나는 그런 손님이 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지만, 어느 공간에선 내가 진상 고객이 되겠죠. 어디 카페는 어떻게 메뉴를 만들고 저건 얼마짜리, 맛은 이러쿵 저러쿵 하며 말이죠.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는 알바생이 되겠습니다. 나부터 좋은 손님이 되는 게 마음을 태우는 블랙리스트로부터 멘탈강화되는 방법이 아닐까요.
비싼 매장에는 괜찮아보이는 손님만 오는 것 같던데, 하루 빨리 이직해서 손님하고 싶습니다. 카페 알바하는 분들 힘내요.
저 어제 고구마라떼 손님 때문에 당황해서 몇 자 끄적여 보았습니다. 읽어주서서 캄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