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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먹는일기

예약했던 산후조리원을 취소했다

이젠 정말 준비해야 하는데...

by 김애니

부부가 된지 1년이 되었다. 생명을 선물로 받았다(누군가 그렇게 말해줬다). 새로운 가족을 맞아야 하는데 머릿속으로 생각을 굴려봤을 땐 앞이 캄캄하다.


아이 중심으로 생활이 재편되는 삶이 두렵다. '나'라는 사람이 물거품처럼 희생하고 갈아 없어져야 한 명의 생명을 온전히 길러내는 것일까?


모성애는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시간과 함께 생기는 것이라고 들었다.


임신을 하고 딸 가진 중년의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이 벌써부터 바뀌었다. 약간 내가 꼰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자녀들에게 "엄마한테 잘해요"라는 말이 자동버튼 누른 사람처럼 튀어나온다.


마지막 달로 갈수록 출산에 대한 상상하기 어려운 공포와 몸이 점점 무거워지고 감정은 소용돌이 같아서 그런걸까.


어떤 물건을 준비해야 하는지 자료는 찾아두었다. 사기만 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게으를까.


남들 다 간다는 산후조리원을 취소했다. 어설프고 완벽하진 않지만 아이와 함께 육아를 하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에 고민하고 과감하게 내려놓았다.


불편하고 전쟁 같은 육아를 선택하겠다는 어떤 의지 표명이다. 몸 상태가 어떨지, 육아가 가능할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장소에서 산후조리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약간의 노동은 필수인 집에서 산후도우미를 구해서 도움을 받기로 생각했다.


결혼도 DIY처럼 내가 하고 싶은 방법대로 하다가 애를 많이 먹었는데, 출산하고 육아의 시작도 나만의 길을 만들려니 품이 많이 든다.


조리원을 취소하면서 몇 번이나 망설였다. 잘하는 선택일까. '조리원 동기도 없네'라는 마음도 불쑥 올라온다. 곧이라도 아기를 만날 것만 같은 이 기분의 정체는 무엇일까. 뱃속에 아기가 있을 때 남은 시간을 알차게 써야겠다.


30살이 되면 가고 싶었던 싱가포르는 환갑여행으로 가야 하진 않기를. 지금은 34주라 비행기 타고 어디 나가기도 애매해졌다.


건강하게만 순산하길 지금은 그것말곤 바라는 게 없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나 역시 0살부터 상상하지 않았던 삶의 여정을 배워나가겠지.


내일은 꼭 보건소에 가서 산후도우미 신청을 해야겠다. 하나씩 힘을 내서 차근차근 급하지 않게 준비해야지. 해보자, 아자아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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