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정신도 깜박거린다 D-36
습관처럼 목에 걸고 다녔던 카드지갑이 통째로 사라졌다. 기억을 더듬어서 어디에서부터 필름이 끊겼는지 도통 생각이 나질 않는다. 자주 쓰던 후불교통카드(신한), 체크신용겸용카드(우리), 신용카드(국민)이 담긴 카드가 발이 달렸을까. 아무리 찾아도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분명 마지막 종착지는 집이었다. 거기까지밖에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일단 급한 대로 카카오톡 체크카드를 찾을 때까지 사용하기로 했다.
오늘따라 집안일이 쌓여 있는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옆길로 샜다. 오랜만에 공차 밀크티를 쳐묵쳐묵 했다. 금지된 우유 메뉴를 향한 갈망이 스트레스를 받으니 불꽃처럼 일었다. 코를 풀어가며 꿀 단맛을 즐겼다.
공차에서 여유를 부리며 신나게 글쓰기 과제 책인 '딸에 대하여'를 정독하고 밀크티도 맛있게 마셨다. 여기까진 해피엔딩!
아뿔싸. 책을 다 읽고 대략적인 글쓰기 과제도 마쳤다. 맛있는 저녁까지 먹을 달콤한 상상을 마치고 돌아가려고 나왔다. 허-걱, 결제했던 체크카드가 없어졌다. 당황하고 또 당황했다.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다시 앉았던 그 자리로 돌아갔다. 없다.
카드 3개를 잃어버렸고 오늘 추가로 1개를 더 잃어버린 셈이다. 나에겐 후불교통카드 기능이 가능한 카드가 한 장도 남아있지 않았다. 지하철로 갈까 하다가 현금 1,300원을 내고 버스를 탔다. 아리랑정보도서관에 들러 빌려보려고 했던 만화책은 하필 '도서관에서만 보는 책'이었다. 젠장.
터덕거리며 무더위를 뚫고 집에 도착했다. 퇴사하고 이직을 준비하는 백수의 시간, 잃어버린 카드는 재발급을 신청하면 될 일이다.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아무런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스스로 초라함을 느꼈다. 전에는 카드 분실해도 당당하게 은행 가서 재발급했는데...뭐가 그리 켕기는 게 많은지 나 원 참.
카카오체크카드는 외부에서 잃어버렸으니 분실신고와 재발급을 재빠르게 했다. 나머지 카드는 조금 더 집안을 샅샅이 뒤져보고 재발급 신청을 해야겠다. 돈을 벌지 않으니 카드 분실해서 불편한 점이 생각보단 맞지 않다.
어제 일도 그제 일도 요즘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날은 덥고 기간은 다가오고 새벽마다 잠을 이루지 못한다. 지금 걱정한다고 고민이 줄어들 일도 아닌데 자꾸 미련하게 정신이 말똥말똥해진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여름밤, 36일 남은 그 밤이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