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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먹는일기

오늘은 퇴직금 500만원을 썼다

D-35 탐앤탐스 고구마 프레즐, 돈암동 대원칼국수

by 김애니

지난 추석, 중고나라에서 150만원에 팔리는 로스터기에 투자했다, 이때는 회사 다니면서 틈틈이 모았던 돈을 투자했다.


오늘은 중고나라에서 560만원인 로스터기에 투자했다. 새 제품으로 사려면 천2백만원짜리다. 서울에 올라와서 복정동에 집을 구할 때 첫 번째 집의 보증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썼다.


3kg 납품 문의가 한 곳에서 들어왔고 더는 150만원 로스터기로 커피콩을 볶기 힘든 상황이 왔다.


잘가 150만원인 로스터기! 그녀가 마지막 로스팅을 시작했다. 3평도 안 되는 공간은 미친 듯이 더워졌다. 19도로 에어컨을 켰지만 그곳에 있기 힘들었다.


오늘은 쉬는 날이다. 매주 월요일에는 손님이 뜸하다. 이유는 모른다. 잠깐 로스팅기 사러 갈 때 가게를 봐주기로 해서 오후 느지막하게 들렸다. 사장의 동네 친구가 들렸다. 그 분도 더운지 모자를 부채 삼아 계속 바람을 저어댔다.


나 역시 사장에게 더워서 못 있겠다고 이따 로스터기 사러 갈 시간에 맞춰 오겠다고 피신했다. 탐앤탐스 카페는 오랜만에 방문했다.


마음은 허니브레드를 먹고 싶었다. 혼자 먹기도 많고 당을 감당할 수 없을 듯싶어 고구마 프레즐로 바꿨다. 직원은 15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나도 모르게 "15분이요?"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넘 오랜만에 간 추억의 매장

생각보다 빵이 구워지고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다. 직원인지 아르바이트생인진 모르겠지만 훈훈한 외모의 바리스타 때문에 놀랐다. 또 가고 싶다.


이런 곳에서 일할 게 아닌 무대 위나 스크린에서 만나야 할 비주얼이었다. 역시 카페는 바리스타의 외모도 한몫한다고 생각했다. 평일 오후 4시 정도였는데 시원한 그곳에 손님이 꽤 많이 있었다.


4천원인 탄산 사과주스와 프레즐을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구웠다고 했던 프레즐은 설익은 느낌의 밀가루 맛이 났다. 반조리식품처럼 나올텐데...탐앤탐스 디저트도 예전 인기가 많았을 때처럼 그런 시대를 한 철 넘어간 듯한 느낌이었다.


4시 20분, 사장은 친구와 함께 상암동으로 떠났다. 글쓰기 과제를 고치고 바닥청소와 식물 물 주기를 했다.


사장의 커피를 좋아하는 단골이 왔다. 손님과 나는 얼굴은 알았지만 단둘이 만나긴 처음이었다. 데면데면했다. 매장 안에는 아무런 음악도 나오질 않아서 어색한 분위기는 한층 고조됐다. 손님은 생과일주스를 선택했다. 3분이 흘렀을까, 사장은 없고 손님은 아이스카페라떼 손님이 오자 홀연히 떠났다.


라떼 손님 역시 사장을 찾았다. 무언가 가져왔다. 잠깐 외출했다고 말했다. 사장을 찾는 남자 손님이 오늘 벌써 3명 째다.


이어 처음 보는 손님이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그라인더가 하나 더 가게에 생기고 만져봤다. 망했다. 미숙한 탓에 제대로 아메리카노가 내려오지 않았다. 잠깐 있다가 아이스라떼 손님이 왔다. 1샷에 맞춰진 정량인데 잘못 나간 아메리카노에 꽂혀서 투샷으로 나갔다. 사장에게 전화로 다급해져 물었더니 맛은 더 좋을 것이라며 괜찮다고 했다.


사장이 자리를 비웠던 2시간 동안 혼자 공간을 지키며 만2천원을 벌었다. 돈벌기란 어디에서나 힘들다.


커피의 꽃은 늘 로스팅이라고 생각했다. 기계는 사장이 아니어도 몇 달만 열심히 하기로 마음먹으면 누구나 해낼 수 있다. 하지만 로스팅과 블렌딩의 맛은 커피로 밥을 짓는 것과 비슷해서 꽃 중의 꽃이다. 로스팅을 할 줄 알아야 하나.


내가 좋아하는 커피는 성수동 매쉬커피의 홍차 같은 아메리카노다. 마시고 싶다. 그 맛. 더운 여름 더 생각나는 맛이다.


로스팅기를 설치하고 사장은 뿌듯한 마음에 칼국수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맛있는 곳이라고 했다. 입맛은 취향을 탄다. 맛있다는 말과 달리 칼국수의 국물은 라면칼국수를 먹는 느낌이었고, 한 움큼 내준 김치는 까나리액젓의 양이 많아서 약간 비릿했다. 그래도 쫄깃한 면발 덕에 맛있게 먹었다. 늘 바로 내어주는 음식은 맛없을 순 없다. 단지 내 기준에 미치느냐 못 미치느냐 일뿐.


더워서, 입맛이 당겨서 밀가루를 생각보다 많이 먹었다. 정신 차려야지. 체중 관리가 필요하다. 이번 주 산부인과 분만 전 검사가 있는데, 더 뚠뚠이가 되고 싶진 않단 말이다.


이젠 카페 아르바이트를 그만 둘 날이 멀지 않았다. 회사로 돌아가 일할 수 있을까. 리더와 불화를 꾹 참고 계속 회사를 다녔다면 어땠을까.


돈 많이 쓰고 수많은 생각이 톡톡 튀는 파편처럼 잠을 더 이루지 못하게 한다. 이제 남은 돈이 얼마 없다.


가진게 없어서 별 것도 아닌 것에 목숨 거는 나를 마주하는 일이 싫다. 무더운 열대야만큼 돈이 훅하고 줄어드니 회사로 반드시 돌아가야 할 명확한 이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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