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겹친 아빠 모습 : 김치사발면, 복숭아, 샐러드
35주, 예정일대로 출산하려면 5주 남았다. 더 빨리 낳거나 늦어지지 않을까 예상한다. 요즘 일을 돕는 가게는 옥탑방, 노점상처럼 더위와 싸움이 치열하다.
작년에는 어떻게 보냈나 싶을 만큼 일하는 동안 무더위로 콧잔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맛있는 순간이다. 일단 모유수유를 시작하면 커피가 꿈의 음료가 될 테니 지금 많이 마음껏 마신다.
오늘은 재발급 신청한 카카오톡 체크카드를 면대면으로 받기 위해, 삼각김밥 대신 도르리 유부김밥을 사 먹었다. 며칠 사이에 도르리김밥집 신메뉴인 4,500원인 치킨김밥이 생겼다.
어제도 도르리 김밥 먹다가 체해서 오늘은 자리를 딱 잡고 최대한 천천히 먹었다. 김밥이라는 특성상 라면처럼 호로록 짭짭짭 하면 꿀떡 하고 몇 분 만에 게눈 감추듯 사라져 버린다. 20대 때부터 내 친구 김밥들 ㅠㅠ
날은 무더워졌지만 손님이 몰려오진 않았다. 계속 왔다. 그러다 같이 일하는 사장에게서 아빠의 모습이 겹쳤다. 타인에게는 잘하는데 정작 가장 가까운 가족에겐 소홀한 모습 말이다. 날은 덥고 배는 무겁고 나는 사장이 듣지 않을 때 혼잣말을 했다.
'손님한테 하는 것만큼 가족에게도 잘 대해주면 좋을 텐데...'
어쩌면 타인을 향한 한마디는 내가 스스로에게 기대하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마음이지 않을까. 반성한다.
나 역시 우리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한 번 보고 말 사람들에게는 기대가 없으니 잘한다. 반대로 평생 볼 가족에게는 늘 소홀하다.
아빠 모습이 사장에게 겹치면서 쌓였던 감정이 사장에게 투사됐다. 미쳤다, 날이 더워서였을까. 마음 상태가 썩 좋지 않다. 어디에서부터 삐뚤어진 걸까.
곧 출산을 앞두고도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직하겠다는 변함없는 마음에 관한 이야기다. 삶에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잘 되지 않는 부분이다. 나는 나이 들수록 현실과 이상이 주는 간극 때문에 괴롭다.
20대 때는 꿈꾸는 일은 어떻게든 성취하고 내 손으로 움켜쥐었다. 20대 후반에는 운이 다한 걸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계속 실패한다.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갔고 자존감은 한없이 낮아졌다. 인생은 원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쉽게 말한다. 나는 그 말이 쉽지 않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괜히 도전의식이 불끈 솟는단 말이다.
기자가 되고 싶었고, 어떤 모양새든 꿈꾸던 것을 이루고 나선 딱히 꿈꾸지 않았다. 높은 이상을 붙잡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퇴사하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보이니 허무맹랑한 일을 내 것으로 취하고 싶다. 꿈꾸는 직장에 다니는 이들의 인스타그램을 보며 작은 욕망 씨앗에 잘 자라도록 밥을 챙겨준다.
'거기에만 들어가면 전 직장을 나온 사실이 전-혀 아쉽지 않아'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이 원하는 워너비 회사다. 경쟁률이 높을 테고, 담당하는 사람들은 IT업계에서 내놓라는 대기업 출신이다. 아무것도 가진 것도 없는데 어떻게 지원하나. 나는 왜 이렇게 선택과 집중을 못할까. 왜 다 가지고 싶어할까. 욕심에는 끝이 없다지만 고장난 브레이크를 놓지 못할까. 답은 없고 질문만 늘어난다.
집으로 돌아와 출산용품과 산모용품 준비, 분만 점 검사 예약, 거실 청소할 계획이었다. 느지막하게 점심을 먹고 복숭아를 홀라당 먹고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까 6시다. 이런. 오늘 할 일은 내일로 미룬다.
김치사발면을 먹고 말았다. 맛있다. 꿀이다. 젖과 꿀은 김치사발면에 들었다. 저녁에는 풀떼기를 양심상 먹어줘야겠다, 풀떼기 먹으러 서브웨이 갑니다.
분만 전 검사 땐 얼마나 체중과 태아의 무게가 늘었을지 캄캄하다. 33일을 남겨놓은 임산부는 출산에만 매진하라는 법이 있을까. 텍스트로 폭주하는 마음을 적어봐도 좀체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