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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먹는일기

산부인과 영상 찍으면 출산장려가 되나요?

사회적 시스템이 저출산 시대를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출산장려라니

by 김애니

"띠리링-띠링-띠링"

잘 울리지 않던 핸드폰으로 모르는 번호가 떴다. 전화를 받으니 진료받은 'ㄹ산부인과'다. 이번 주 주말에 분만 전 검사가 잡혀 있다. 그것 때문에 전화를 걸었나 싶었다.


내 생각과 전혀 다른 간호사의 낭랑한 목소리와 함께 전화를 건 이유가 명확히 들렸다.


"다름이 아니라 J방송국에서 저출산 시대에 출산 장려하는 영상 촬영 제안이 들어와서요. 취지도 너무 좋고 애니님과 남편에게도 좋은 추억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진료받는 장면, 분만하는 모습 등 촬영하면 어떨까요. 촬영 협조가 하시면 조리원 1주일 정도 제공해드리려고요"


나는 속으로 '번지수를 잘못 찾으셨는 걸. 출산 독려라니. 임신 과정이 이렇게 쉽지 않은데 간호사님...'이라는 마음의 소리가 올라왔다. 전화를 주었으니 남편과 상의해보고 이야기하겠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미디어는 여성의 임신 출산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덮고, 장점만 부각하면 낳고 싶지 않은 여성들이 '낳겠어요'라고 생각을 바꾼다고 판단한 걸까. 얼마나 촬영 현장은 영상으로 뽑고 싶은 장면만 편집해서 좋은 면만 걸러져서 내보낼까. 그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촬영하면 콩고물이 떨어지니 잽싸게 수락하면 병원도 나도 좋을 텐데. 예약했던 산후조리원도 취소한 마당에 1주일 공짜 조리원을 준다고 촬영 제안을 수락하진 않을 생각이다. 나에게만 전화를 한 건 아닐테니 뭐:)


나름 진료받는 곳을 고르고 골라서 자연주의, 감동 분만 이런 캐치 프레이즈로 철학을 가지고 운영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원장님이 임신 출산 책도 충분히 내어도 될 텐데 그런 것도 없어서 다행이라고 판단했다. 병원도 장사처럼 운영의 압박이 있고 먹어 살려야 할 직원들이 있기에 미디어의 힘을 이렇게 빌려야 하는 것일까.


왜 여성들이 저출산 하는지 본질에 집중해주면 좋겠다. 임신하고 출산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육아라는 긴 레이스를 아내, 여성의 몫으로만 돌려놓는 현실이다. 육아 때문에 경력단절여성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실 건가요. 오죽했으면 독박 육아라는 말이 있겠는가.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대기 리스트에 명단을 올리지 않으면 보내는 것조차 어려운 현실. 7월부터 정부에서는 출산 장려한다고 출산용품 지원을 한다고 대대적인 광고 중이다. 3개 중 1개. 줄 거면 다 주지, 1개 선택은 뭐람. 그 선물 리스트에 납품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경쟁을 뚫었을꼬.


화곡동 어린이집 사건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한 주 전에는 맘충이라며 욕하는 영상이 미디어에 유포되고 시간이 흐르니 이번엔 11개월 된 아기가 죽지 않나, 폭염에 어린이집 차량에 갇혀 죽질 않나. 엄마들의 죄책감만 키우는 영상으로 무슨 출산 독려야...진짜 저출산 시대이긴 한 것인지 되묻고 싶어 졌다.


출산을 앞둔 시점에서 마음을 곱게 먹어야 하나. 사회적 시스템이 저출산 시대를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출산장려라니 앞뒤가 안 맞는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고 제대로 된 정책과 콘텐츠 기획을 해주면 좋겠다. 아니면 쇼쇼 작가의 웹툰 '아기 낳는 만화'라도 읽고 나면 출산 장려를 하는 영상을 과연 만들고 싶을까.


매번 하는 방식대로 반복하는 지루한 장면을 담느니, 왜 저출산 시대에 출산율이 감소하는지 민낯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나라의 무책임함에 괜히 화가 난다. 임신 관련 사진은 다들 왜 이렇게 행복한 것만 있나(넘 산모가 부정적인가...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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