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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먹는일기

맘...맘..맘

엄마와 셋째가 하루 있다가 갔다 - 월남쌈, 보리밥

by 김애니

어제 오후 4시, 나경선 엄마와 김아름 셋째 동생이 서울에 나를 보러 놀러 왔다.

오늘 오후 2시, 나경선 엄마와 김아름 셋째 동생이 여수로 나보고 내려갔다.


(엄마가 아닌 엄마 이름을 넣어 불러주고 싶은 마음)


나경선 엄마와 김아름 동생이 떠난 집으로 돌아오니 마음이 허하다. 엄마가 반나절도 못 있다 간 것 같은데, 부엌이 깔끔해졌다. 살림은 거의 손 놓고 있던 나에게 구세주나 다름없었던 나경선 엄마 솜씨는 괜히 마음 한 켠을 울컥하게 한다.


임신해서 외로웠던 마음이 엄마의 마음 씀으로 만져져서 그런 거겠지.


어제 오후 4시 전, 나경선 엄마와 김아름 동생을 기다리면서 집안 청소한다고 점심을 못 먹었다. 청소하는데 젬병이라 내 탓인데 배가 고파서 신경질을 부렸다. 내 인간성은 딱 거기까지인 것 같다. 엄마에게는 청소했는데 한소리 들었다. 그렇게 내가 집을 어지르고 살았을까? 한다고 했는데 엄마 눈에는 98퍼센트 부족하겠지.


나는 폭염으로 하루 종일 집안에 틀어박혀 있었는데, 엄마와 동생은 집으로 오는 길에 월남쌈 재료를 바리바리 사 왔다. 엄마 고생하는 게 싫어서 바깥에서 저녁도 사 먹고 카페도 갈 생각이었다. 허리가 좋지 않은 엄마 상태를 아니까 괜히 밥 대접받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기록적인 폭염이라 나가서 사 먹자고 제안했다.


2명은 들어가서 먹기 힘들었던 오리로스집. 본점이라고 했는데 이번만 가고 다음엔 못 갈 듯싶다. 갔다가 큰 실망감을 안고 우리는 카페로 향했다. 원래 가려던 곳은 폭염으로 오후 7시까지만 하고 다른 카페로 이동했다. 그곳도 이미 만차와 넘치는 사람으로 삼청동까지 흘러 들어갔다. 아무도 없었다. 카페 앞 카페가 있었다.



엄마는 처음 맛본 사과주스 맛에 홀딱 빠졌다. 인터넷에서 12병을 구매했다. 코스트코에 있는 골드메달 애플주스였다. 대화의 주는 출산 후 산후조리에 관한 것이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산후도우미 아주머니는 나중에, 일단 엄마 찬스를 쓰기로 했다. 성격이 서로 달라서 부딪히긴 하지만 타인보단 네 명의 아이를 낳아본 엄마가 더 편할 것 같았다. 우리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죽치며 삼청동 카페 나들이를 마쳤다.


둘이서만 살다가 두 명이 더 오니 고양이는 낯선 이를 경계했고, 침구류가 마땅치 않았다.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엄마는 거실에 있다가 방으로 피신했다. '슥'하고 고양이가 꼬리로 엄마 살갗을 부딪히며 지나가니까 소름이 돋는다고 했다. 냥이가 셋째 동생은 싫어하는데 엄마는 잘 따랐다. 신기한 냥이일세.


그날따라 아무리 에어컨을 틀어도 무더웠다.


오늘 새벽, 엄마는 미처 요리하지 못한 월남쌈 재료로 한상을 차렸다. 서울에서 살면서 귀찮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음식을 잘 먹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예를 들면 꽃게를 발라먹어야 한다거나 월남쌈 역시 나에겐 그런 음식이었다. 월남쌈과 샤브샤브 중에서 무엇을 먹을 것인가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샤브샤브를 외칠 스타일이랄까.



사위는 외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장모님 덕분에 아침부터 호사를 누렸다. 빨갛고 노란 파프리카, 단무지, 파인애플, 깻잎, 당근, 소불고기, 오이, 뜨거운 물, 라이스페이퍼로 차려진 아침식탁은 풍성했다. 애매하게 남은 채소는 라이스페이퍼에 넣고 다 말아서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까지 먹을 계획이다. 귀찮았지만 맛있었다. 배터지게 먹었다.


사위는 자신의 일터로 향했고, 나와 엄마 그리고 셋째동생은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엄마는 내가 더위에 쓰러질까 여러모로 살폈다. 엄마 양산도 양보를 받았다. 언제나 고개를 푹 숙이고 뜨거운 태양을 피해서 걸었는데 오늘은 엄마 양산이 있다. 오늘, 내일까지 있다가 내려갔으면 좋겠는데, 엄마는 금팔찌를 오후 6시까지 찾으러 가야 하는 스케줄이 있었다. 금은방 아저씨가 내일부터 휴가라서, 엄마 집이 아니라 불편해서 내 얼굴만 보고 내려가는 듯했다.


커피도 먹고 더치커피 원액도 사고 용산역으로 이동했다. 역이나 터미널, 공항 근처에는 왜 늘 맛있는 밥집이 없을까 궁금하다. 용산역 아이파크몰 나름 브랜드 있는 매장에 들어갔는데 기대 이하였다. 임산부로 있을 날도 18일 남았다. 따로 옷을 장만하지 않았다. 한 번 입고 말 것이라고 생각해 프리사이즈 있던 옷을 입고 다녔다. 엄마는 그런 내가 안쓰러웠던 걸까. 기어코 원피스 1벌과 티셔츠를 사서 건넸다. 어딜 가나 날이 더워서 나는 꼼지락 거리는 움직임 조차 버거웠다.


용산역 이마트에 가서 엄마가 좋아하는 간식을 선물하고 싶었다. 골드메달 사과주스는 보이지 않아서 못 사고 나쵸칩이랑 셋째 동생이 좋아하는 문어발 그리고 마실 음료수를 구매했다. 그렇게 헤어졌다.


함께 먹고 싶었던 팥빙수

함께 먹고 싶었던 감자탕

함께 가고 싶었던 좋은 곳들


기록적인 폭염이 얄궂다 생각했다. 고양이만 남은 텅 빈 집 그리고 남은 나경선 엄마표 월남쌈. 이제 출산하면 몸조리해주러 엄마가 서울로 출동하겠지. 엄마랑 동생따라 여수 갈 걸 그랬나... 아쉬움만 가득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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