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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먹는일기

식욕해결이 안 되니, 짜증만 늘어

D-10 : 혜화 OO의 짬뽕, 엘X 전통 팥빙수

by 김애니

욕구불만의 끝은 다른 것들로 잘못된 분출로 거대한 모습을 드러낼까? 막달 산모의 하루는 대부분 집안이나 근처에서 이루어진다. 언제 애가 나올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다. 처음 애를 낳는 산모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오전에는 글쓰기 수업에서 못다 한 인터뷰 글을 마무리하고, 오후에는 시도 가능한 공간 정리를 했다. 쓰레기가 된 화기와 흙, 식물 관련 취향 관련된 물품이 넘쳐났다. 오후 4시에 나가는 일정이 있어서 전부 마무리하진 못했다. 마음은 생각하지 않고 쓰레기봉투에 처넣고 싶다.


나가려고 준비하는데 아랫배뭉침이 느껴졌다.

'오늘 친구 만나러 가야 하는데...'

생리통처럼 알싸한 느낌은 기분이 썩 좋진 않은 쪽으로 갔다. 생리통을 심하게 겪지 않은 나 같은 사람에게 임신을 하고 출산할 때 느껴지는 통증은 낯설다.


본격적인 출산의 시작은 피가 섞인 이슬을 보거나 양수가 터졌을 때부터 시작이다. 지금 느껴지는 배뭉침이나 허리통증은 가진통이거나 딱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단지 통증이 있어서 감정이 격분해진 상태랄까.


출산 전 마지막 바디맵을 받으러 혜화로 이동했다. 혜화까지 집에서 멀지 않음에도 힘들었다. 열심히 운동하고 광화문으로 친구를 만나러 갈 요량이었다. 한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와 편하게 아무 이야기나 하고, 퇴사하고 만난 사람 인터뷰 시리즈를 쓰고 싶었다. 오늘 만날 친구 역시 음악 관련 일을 하다가 마케팅을 하고 있어서 호기심이 있었다.


38주, 태어날 날이 가까우니 몸은 내 마음처럼 절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사람의 근육과 몸을 만지는 바디맵 쌤은 근막테라피로 출산 전 운동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자꾸 배가 뭉쳐서 친구에게 급하게 연락해 다음을 기약했다.


아기를 낳고 친구를 만나는 일과 아기를 낳기 전 친구를 만나는 나 자신의 변화가 한편으론 싫었다. 자유로운 생활이 이젠 마지막이 되면 어쩌지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결국 친구도 만나지 못하고 바디맵 공간에 드러누워 있었다.


아이를 밴 산모 몸의 변화는 극적이다. 한편으론 경이롭기까지 하다. 울퉁불퉁 굴리면 굴러갈 것 같은 체형, 뻣뻣한 내 몸 조차도 출산을 위해 호르몬을 뿜어내며 바뀌고 있었다. 골반이 옆으로 벌어지는 줄 알았더니 바디맵 쌤이 뼈가 뒤집어져서 열리는 일이라고 했다. 일자로 다리를 찢는 일도 비슷한 원리였다. 골반 뼈가 위로 들리면서 360도 몸이 늘어나야 한다.


내 몸 상태는 꼬리뼈와 허리는 길어지는데, 서혜부 근육이 전혀 늘어나지 않았다. 이럴 땐 남은 기간 동안 가능한 일이 근육 마사지뿐이다. 루이스 도움이 필요했다. 쌤이 알려주는 방식을 루이스가 들어야 해서 나는 1시간 30분 정도 텅 빈 공간에 누워 있었다.


오후 7시 30분, 허기는 질 대로 졌다. 삶은 달걀과 토마토를 먹었지만 배고팠다. 짬뽕집에 가서 호기롭게 차돌박이 짬뽕을 시켰다. 9천 원인 고기짬뽕 맛은 배가 고팠지만 잘 먹히지 않았다. 끼적거렸다.

후각으로 자극된 라면스프 냄새, 안가


맛없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내 감정은 널뛰기를 한다. 나쁜 습관이다. 잘 고쳐지지 않는다. 본능에 충실한 동물이 된다. 성욕보다 식욕이 더 강한 나에게 맛없는 음식을 먹는다는 건 며칠 동안 성욕을 해결하지 못한 상태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결국 짬뽕을 먹다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빙수 맛집을 찾았다.


오늘 근막마사지로 근육을 건드렸더니 전혀 느껴보지 않았던 허리통증과 아랫배가 묵직하게 아파왔다. 의외로 빙수맛집이 별로 없었다. 걷다 보니 검색했던 스OO이 있었다. 들어갔더니 도깨비시장이다. 홍차빙수랑 팥빙수를 같은 가격에 먹을 수 있었지만 청각이 예민한 루이스가 시끄럽다며 엘O으로 이동했다.


엘O은 사람이 없어서 들어가도 되나 싶었다. 전통팥빙수를 욕구에 끌리대로 시켰고 먹었다. 결과는? 팥이 부족해서, 연유가 없어서 만족스럽게 먹질 못했다.

보기에 예쁜 게 아니라 맛있게 먹고 싶다고요


허기진 상태에서 먹고 돈을 냈음에도 나는 본능적인 욕구를 해소하지 못했다. 본능에 관한 욕구는 풀어야 해소가 되는 것일까? 하긴 내가 원하는 맛집 장소와 가고 싶은 곳이 있었다. 오늘 방문한 곳은 대안으로 간 장소였다. 그랬더니 짜증만 늘고 꼴사나운 산모가 되었다.


허리는 끊어질 것 같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험난했다. 돌아다닐만해서 돌아다닌 게 아닌데 아무도 건강해 보이는 나에게 자리 양보 따윈 없었다. 우린 모두다 불금을 보내고 피곤하다. 애를 낳아보이는 아주머니도 임산부석에서 고개를 떨구고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애꿎은 루이스가 샌드백 역할을 했다. 만지기만 해도 버럭거렸다. 점점 미치광이가 되는 느낌이다. 먹고 자고 싸는 일이 잘 해결되는 평범한 일상을 잘 보내다 순산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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