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애니 Sep 11. 2018

조산사, 엄마, 이모님을 거친 산후조리 후기

84끼 28일의 시간

"쉬세요" 


오늘도 어김없이 정부지원을 받아 노냥이를 봐주는 산후도우미 이모님의 한마디다. 벌써 8일째, 남은 2일 후면 오롯이 아이와 내가 쌓아갈 시간이다.


조산원에서 산후조리 - 6일


조산원에서 출산하고 6일 동안 시체처럼 먹고 자고 모유수유하는 일상을 보냈다. 그곳에서 3일째 되는 날에는 스마트폰으로 뒤적뒤적 타인의 SNS를 볼 여유도 생겼지만 별다른 흥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맛집을 다니는 일도, 일의 성취도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아기로 바뀐 나의 일상은 전에 흥미를 느꼈던 그들이 그림에 대해 어떤 핀트가 달라져 버린 상태였다.


나는 출산과 동시에 다른 존재인 것처럼 굴었다. 일자리를 구해도 '육아'에 지장없는 자리를 찾고 있었고, 모르는 것들을 물어볼 주변인이 없으니 맘스홀릭 카페에서 검색하는 내 모습이 낯설었다.


내가 아기를 낳은 방에서 지냈던 6일 동안 차려주는 밥을 맛있게 먹으며 나가는 날만을 기다렸다.



조산원 산후조리 장단점

장점 : 출산 직후라 기력도 정신도 말짱하지 않아 힘쓸 일이 거의 없다. 챙겨주는 밥과 간식 잘 먹고 시간에 맞춰 모유수유만 잘하면 될 일


단점 : 빌딩 숲 사이 한 층에 위치해 답답했다. 몸을 움직일 힘도 없었지만 같은 공간에 갇힌 느낌.


집에서 산후조리 - 친정엄마 찬스 12일


친정엄마가 집에서 산후조리를 해주었다. 12일이라는 기간 동안 나는 여왕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엄마의 돌봄을 받았다. 흡혈귀처럼 엄마의 챙김을 악착같이 누렸다. 끼니마다 차려지는 식탁은 인증샷을 찍을 만큼 나에겐 호사스러운 한상이었다.


엄마 덕분에 청소도 빨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됐다. 나는 그저 노냥이에게 젖을 물리고 가끔 기저귀를 갈아주면 나머진 엄마가 다 해줬다. 행복했다. 임신했을 때 4개월은 회사다니느라 고향인 여수를 가지 못했고, 퇴사하고 4개월은 루이스 카게를 돕는다고 가지 못했다. 막달은 몸이 무거워서 언제 아기가 나올지 모르니 이동 조차 어려웠다.


은유의 글쓰기 수업에서도 소재로 썼지만 엄마가 차려주는 밥이 미친듯이 그리웠다. 외식을 좋아하는 나지만 엄마 밥이 채워주지 못하는 2퍼센트는 산후조리하면서 엄마 손맛으로 풍족하게 채웠다.



친정엄마 찬스 장단점 

장점 : 또 올까 싶은 호사, 믿고 쉴 수 있어

단점 : 서로 달라 부딪히는 육아



정부지원 산후도우미 - 10일


엄마가 고향으로 떠나기 며칠 전, 정부지원 산후도우미를 신청했다. 지인이 추천해준 이모님은 이미 일을 들어가 버리셨다. 아뿔싸, 잘 몰라서 늑장 부리다가 기회를 놓쳤다. 다행히 업체 추천으로 소개받은 이모님 역시 베테랑이셨다. 경력 있는 이모님들만 쓴다며 업체 실장님의 말빨이 예상 이상이었다. 나는 급했고 실장님은 친절했다.


정부지원 산후도우미를 쓰기 전, 초산이자 예비엄마인 나의 불안한 점은 두 가지였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우리집에 와서 아기와 나를 돌보는 일이 괜찮을까? 한 공간에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같이 있으면 어색하지 않을까 하는 문제였다. 나는 낯도 가리고 성격도 까탈스러워서 쉽게 남에게 곁을 내주지 못하는 이유도 있었다.


어색해도 어떠하리, 내야 할 돈(39만원)을 냈고 계약한 날 이모님이 오셨다. 친정엄마 역할을 해주러 오셨다고 했지만 까탈스러운 나에겐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엄마가 이모님 오시기 전에 쓸고 닦고 반짝반짝 윤을 내놓고 가서 집은 깨끗했다. 몸을 움직이기 전보다 수월해진 나는 엄마 뒤를 이어받아 루이스가 출근하면 청소기를 돌렸다. 내가 할 일은 해두었더니 이모님은 할 일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아기가 잠들었던 첫째 날 받았던 산모 마사지는 시원했지만 아랫배 통증이 느껴졌다. 이모님이 마사지받고 싶으면 말하라고 했는데 나는 요구하지 않았다. 날 위해 하는 해주시는 마사지였지만 나이가 있는 중년의 이모님에게 받는 마사지가 마음 편하지 않았다. 지나고 보니 내 몸 하나 챙기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쓸데없는 오지랖을 부렸다.


내가 모유를 먹이고 나면 이모님이 노냥이를 봐주시니 한결 수월했다. 어떤 날에는 읽고 싶은 책을 빌리러 집 근처 도서관에 가서 콧바람을 쐬러 나갔다. 또 어떤 날은 마트에 가서 간단하게 쇼핑도 했다. 이모님이 가고 혼자가 되면 누리기 어려운 즐겨야 하는 순간이다.


새벽에 노냥이의 배고픔을 챙겨줘야 해서 산모인 나는 잠이 부족해졌다. 이모님이 "쉬세요"하면 나는 며칠은 잠만 잤고 오늘은 이렇게 브런치에 몇 글자 남길 여유가 생겼다. 얼마 남지 않은 이 자유를 누리리.


보건소에서 추천해준 업체로 하지 않고 지인 소개로 내가 사는 곳과는 떨어진 곳에서 정부지원 산후도우미를 신청했다. 이모님은 도착하면 오늘 하루 교통편이 어땠는지부터 이야기해주신다. 이제 그 이야기들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말이 많은 편이 아니라 프랜차이즈 미용실보다 1인 미용실을 찾아 굳이 가는 일인으로, 엄마보다 대화를 많이 했던 산후도우미 이모님. 대화가 많았던 게 조금 힘든 점이었다.


정부지원 산후도우미 장단점

장점 : 최신 육아를 경험, 100명 신생아 아기를 돌본 경험의 힘

단점 : 산후도우미 이모님 성향 따라 복불복. 산모와 아기에 집중  나머진 또 내가 해야 함


김애니로만 살았던 인생이 노냥이로 희로애락을 겪는 중이다. 아기를 만나고 뾰족하게 예민했던 나라는 유리벽이 점점 흐물흐물해진다. 변화를 겪는 나 자신에 대한 아쉬움이 있지만 함께 만들어갈 삶의 그림이 기대되기도 한다. 육아에만 전념하며 주부라는 새 역할을 얻을 수도 있고 아니면 병행 가능한 육아와 일을 해낼 기회도 엿보고 있다.


육아가 마냥 좋다고 우쭈쭈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마냥 비난할 일도 아닌 경계선을 사는 요즘이다.





작가의 이전글 진통이 찾아올 때마다 소리를 지를 줄 알았더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