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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니 Sep 06. 2018

진통이 찾아올 때마다 소리를 지를 줄 알았더니...

마이 delivery 기록기 3 - 아기 머리가 보이고 진통이 끝나기까지

마이 delivery 기록기 2 - 지금 겪는 고통은 끝이 있어요, 힘내요(이어서)  


나는 분만 자세로 침대 위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내 두 다리는 벌려져 있고 이전 진통보다 훨씬 짧고 강력했다. 분만실로 사용된 방은 내가 느끼기에 어느 폭염의 날씨보다 무더웠다.


수시로 진통이 올 때마다 나는 자꾸 왼쪽 다리가 저렸다. 분만이 가까워올수록 더위를 느꼈다. 한차례 진통이 지나가고 잠깐 쉴 때, 조산사와 둘라가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치열한 나와 달리 참 평안했다.


중간에 조산사가 거의 다 왔다며 아기 머리를 만져보라고 했다. 나는 만질 기운도, 의지도 없었다. 만져지면 낳으려는 의지를 보인다고 생각했던 걸까? 이건 이렇게 기억을 더듬어 다시 적으면서도 똑같은 반응을 보였을 듯싶다.


당시엔 피가 꿀렁꿀렁 함께 나온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았을 뿐, 이렇게 펑펑 쏟아질지 알지 못했다. 아기가 나올 때까지 나의 왼쪽 다리는 경련으로 진통을 알려주었다. 나는 쥐가 찾아오면 양 다리를 부여잡고 똥을 싸는 느낌으로 힘을 줘야 했다. 내 입에선 ‘으악’하는 소리가 새어 나오는데, 조산사와 둘라는 소리를 지르지 않는 게 좋다고 말했다.


내가 경험한 출산의 기억은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반대였다. 진통이 찾아올 때마다 소리를 지를 줄 알았더니, 소리를 내지 말라고 했다. 나름 호흡법도 갈고닦았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진통하면서 사용하질 못했다. 고통의 강도가 커서 호흡법이 소용없게 느껴질 정도였다. 호흡하면 이완과 수축이 됐던 몸이 진통을 겪으면서 이완이 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조산사가 두 번 정도 배를 눌러주었고 아기가 나왔다. 어느 정도 했는지 모르겠지만 회음부 절개를 살짝 했다. 타이트해서 아기 머리가 나오기 힘들다며, 찢으면 훨씬 빠른 출산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미 극에 달한 고통 중이라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고 이 상황이 끝나기만 간절히 원했다.


아기가 나오자마자 죽을 듯했던 고통이 싹 사라졌다. 나와 탯줄로 이어진 아기를 만나는 순간, 축축한 물오징어 같은 엎드린 아기가 내 배위에 턱 하니 올려졌다. 성향상 축축한 느낌을 싫어한다.


아기와 만나면 기쁨의 눈물을 흘릴 줄 알았지만 나는 진통과 출산하는 과정을 지나며 지쳐 있었다. 아무 정신이 들지 않아 아기는 아빠에게 넘겨져 캥거루 케어를 했다.



나는 고통에선 해방됐지만 여러 가지 뒤처리들이 남아 있었다. 출산한 날은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기억나질 않는다. 첫 소변을 봐야 하는 날, 소변이 나오지 않으면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만 기억에 남는다. 조산사와 함께 화장실에 갔을 땐 소변이 나오지 않았는데 혼자 들어가서 결국 해결했다. 병원으로 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한시름을 놓았다.


성경에서 말하는 산고의 고통은 지금 당장은 또 겪고 싶지 않은 몸의 기억이 되었다. 출산하고 난 내 몸은 이렇게 그날의 기억을 적기까지 많이 아팠고 지금도 회복하는 중이다. 6일 동안 모자동실을 하면서 시간마다 들어오는 밥과 간식을 먹으며 사육당했다.


바깥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힘이 없었다. 아기를 낳았다고 지인에게 알릴 의지가 없었다. 스마트폰으론 모유수유 15분 알람 기능을 켤 힘만 겨우 남아 있었다. 지인은 촉으로 내 출산 소식을 접했고, 힘이 생기고 나선 지인에게 낳았다고 연락을 취했다.      


출산하면서 겪은 몸의 기억만큼 기침조차 시원하게 하기 힘들고, 뛰는 것도 힘들어진 몸을 마주해야 한다. 조산원에서 1주일 동안 오로라고 하는 피가 펑펑 쏟아지는 경험을 지나야 했고, 밤중 수유하면서 커피 없이 좀비처럼 적응하는 시간 역시 필요했다.      


산후조리를 하면서 무거운 물건을 들면 안 된다는 걸 몰라 잘못 사용했는지 오른쪽 손목이 성치 않은 몸이란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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