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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니 Dec 04. 2018

기성세대 어른은 되고 싶지 않습니다만

퇴사하고 읽은 책 - 불구의 삶, 사랑의 말

팍팍한 현실을 살다가 짬을 내서 봤던 영화 혹은 연극을 보고 나왔을 때 풍만한 감정이 책을 읽으면서 느껴졌다. 좋은 예술 작품을 경험할 때만 맛보는 어떤 감각을 경험했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저자가 써내려간 문장들마다 아름답다는 생각마저 들었다(알고보니 미학자). 


나는 '사라지는 아이를 위하여'라는 첫번째 파트가 좋았다. 라몬스 노래를 해석하는 방식에서 내가 생각했던 어떤 지점을 저자가 건드려 주었다. 예를 들면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을 조율하면서 하기 싫은 것도 하는 게 인생이지 라며 <어른들의 잔소리>라고 정의한 부분에선 해방감마저 느껴졌다. 기성 사회의 역할에 자신을 맞추기를 당연시할 때 개인은 결국 보호받지 못함으로 결론 맺어지는 문장에서 내 안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듯했다. 


저자가 사회는 좋다고 말하는 좋은 행동, 행복, 사랑, 건강, 충만, 안정 등과 같은 단어를 비틀어볼 수 있게 해줘서 읽는 내내 흥미롭게 봤다. 부정하는 단어는 일방적으로 좋지 않다는 시선 혹은 관념으로 나쁘게만 보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불행도 그리 나쁜 단어만은 아니구나 싶어 위로도 받았다. 


내가 밑줄 그은 문장들은 주로 사회가 부정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저자가 예로 든 시와 라이언 맥긴리 같은 실제적인 예시들로 채워져서 이해도가 높아지기도 했다. 


첫번째 파트에서부터 재미있게 읽기 시작했는데 뒤로 갈수록 이름만 들었지 잘 모르는 니체의 주체, 비체(?), 성철스님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에 관한 대상화 이런 단어들은 낯설어서 난감했다. 쉽게 쓰려고 저자가 최대한 풀어썼는데 주체, 대상화는 계속 아리까리함만 나에게 남겼다. 


책을 읽을 때 맨 앞의 저자의 말과 맨 뒤의 마무리를 좋아한다. 이 책의 저자가 피터 딘클리지 인터뷰에서 가져왔다며 이 책에서 거듭 이야기했던 걸로 정리하는데 완전한 동의를 하긴 어려웠다. "문제는 내가 아니고 그들에게 있음을, 문제는 자신을 주체라 생각했던 신민들의 개념-찌꺼기였음을 알아버렸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이들을 위하여'라는 부제로 마음을 흔들고 열심히 함께 걸어가다가 수많은 개념어들을 제시하고 쏭 사라진 기분이라면 설명이 되려나. 


밑줄 그은 문장


1. 10대의 모순은 성장을 원하면서도 원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을 조율하면서 하기 싫은 것도 하는 게 인생이라는 어른들의 잔소리를 견디면서 가급적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면서 우울해 한다...기성 사회의 역할에 자신을 맞추기를 당연시할 때 개인의 존재, 욕망은 보호받지 못한다. 사회가 원하는 생산인구, 직업을 갖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는 'want to be'의 의식이 필수적이다...경쟁이란 단어는 다양성이 없는 세계, 추구할 만한 역할이 극히 제한된 사회에서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미친듯이 질주하고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26쪽) 


2. 분노는 숨을 곳이 없는 사람이 드러내는 감정이다(44쪽)


3. 좋은 행동에는 개인의 존재와 욕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것은 사회를 위한 것이지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나쁜 행동에는 사회적 인정보다 자신의 존재와 욕망을 우선시하는 어떤 뿌리 깊은 동기와 힘이 내재되어 있다(56쪽).


4. 사회는 행복, 좋음, 사랑, 건강, 충만, 안정과 같은 명사들을 권장한다. 저 단어들은 지금 있는 것들에 동의하고 거기에 맞춰 살아가기를 우리에게 강요한다.(83쪽).


5. 결혼제도는 노동 인구를 확보하려는 사회의 공적 이데올로기이며 대(피)를 이으려는 아버지들을 위한 것이기에, 여성의 삶이나 욕망은 결혼 제도 안에서 존재할 수 없다. 여성은 결혼과 더불어 자신의 삶에서 멀어지고 모성성이 욕망을 대체한다(115쪽)


6. "나는 무언가이다"라는 말에서 무언가에는 진짜 내가 없다. 진짜 성장은 내게 들러붙으려 하고 또 내가 들어가 앉으려고 하는 이름들에서 나를 빼내는 데 달려 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이름들 때문에 상처를 입는다. 내 아버지가 좋은 아버지가 아니고 내 어머니가 좋은 어머니가 아니며, 내 친구가 좋은 친구가 아니고 내 애인이 좋은 애인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고통받는다. 그들이 나를 물건처럼, 짐승처럼, 시체처럼 대했다는 것이 나를 버러지 취급했다는 것이 우리가 상처받는 이유다. 나쁜 이름들은 우리가 곰팡이나 자국이나 시체, 즉 하염없이 죽어가는 존재 임을 알게 해 준다. 죽음은 무엇인가? 죽음은 우리가 이름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158쪽).


7.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시적이고 미적인 언어를 배우는 일이라 제안하고 싶다. 우리는 이해와 소통이라는 사회적 효율성의 언어가 아니라 무로서의 생에 충실한 미적 언어를 배워야 한다. 사회가 가르친 두려움과 공포를 거부하고 생을 긍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166쪽)


8. 우리는 우리 밖에 있는 프레임을 마치 모르는 것처럼 제외한 채 생각해 봐야 한다. "왜 저 사람은 저런 이상하고 끔찍한 행동을 했을까"라고. 우리는 우리 자신의 프레임에서는 불가능한 일을 일으킨 저 사람은 누구인가를 계속 생각하고 느껴야 한다. 관념은 삶을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덮어씌우려 한다(175쪽)


9. 당신은 배워야 한다. 관념을 사용하지 '않기를', 거리를 취하지  '않기를', 판단하지 '않기를', 지식에 호소하지 '않기를', 주체가 되지  '않기를', 오직 당신의 몸과 감각, 느낌을 사용해서 뛰어들기를, 즐기기를, 행복하기를. 행복이나 불행은 그저 상황을 재현하는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관념임을, 안전과 안정은 감각을 억압하는 지성의 교란임을, 단 한번뿐인 삶을 내 삶으로 만들어야 함을, 그러므로 불행이 곧 행복임을, 행복이 곧 불행임을 동시에 느껴야 함을 우리는 긍정해야 한다...예술가는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새로운 시간으로, 익숙해지지 않는 놀이로 똑같이 겪을 뿐이기 때문이다(181쪽) 


이날의 모임 후기

오늘의 메타포라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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