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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니 Dec 18. 2018

나는 출산 후 어려움을 들을 기회가 없었다

퇴사하고 읽는 책 - 아름다운 외출



"임신에 대한 두려움도 여성으로 하여금 섹스를 기피하게 했다."(아름다운 외출, 131)


“여성에게 먹이고 씻기고 돌봐야 할 아이의 수가 줄어들수록, 글을 읽고 사색하고 자신을 계발할 수 있는 여유는 더욱 많아질 것이다. 자유를 누리려면 여유가 있어야 한다...”(아름다운 외출, 155)


출산 후 140일, 다시 생리가 시작됐다. 모유수유 중에도 생리를 한다는 건 인터넷 검색으로 알았다. 출산 전 생리를 할 때는 나는 '임신 가능한 몸이야'라는 메시지로 이해했다. 또다시 시작된 생리는 반갑지 않았다. 나에게는 '다시 임신 가능한 몸일 수 있어’라는 메시지니까.


작년에 임신하고 올해 출산을 경험하면서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이렇게 잘 들어맞을 때가 있을까. 나는 피임에 관해 별 생각이 없었지만 출산 후 나를 기다리는 변화에 더없이 무지했다.

4년 넘는 연애 후 결혼한 남편은 세 자녀를 원했다(나는 그럴 생각이 없지만) 어차피 낳아야 한다면 빨리 낳고 끝내자고 단순하게 여겼다.

나는 결혼하기 전 여성으로 살면서 육체의 쾌락은 맛집을 찾아다니며 음식을 소비하는 것으로 맞바꾼 지 오래였다. 식욕으로 대체된 성욕이었다. 그 사이에 신앙인으로, 종교 관련된 일을 하면서 파릇한 20대에 누려도 괜찮은 어떤 기회들은 종교성과 식욕으로 대체하며 잘 지냈다.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기 전, 섹스는 나에게 아기를 낳는 도구였고, 마냥 두렵거나 기피 대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신체적 나이도 많이 먹었고, 돈 벌기 빠듯했던 시간들이라 쾌락보단 잠이 더 고팠다.

임신 후 배뭉침, 메슥거림, 체중 증가, 출산 임박의 두려움과 생명을 낳는다는 기대함으로 양가감정을 느낀다. 막달이었을 때는 무덥기도 했지만 언제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독박육아하는 지금처럼 방콕을 했다.


내가 경험한 출산의 진통은 살면서 처음 느껴본 통증이었다. 통증 후 출산 전으로 돌아가면 좋겠지만 이미 내 몸은 노화와 달라져버렸다. 예전 같지 않다.  


출산 후 아기와 가족 입장에서 좋은 점도 많다. 화목하게 하나 된 분위기, 자라는 아기 보면서 웃을 일이 생김, 아기 덕에 주변 도움을 많이 받음, 죽을 때 왠지 덜 외로울 것만 같은 느낌 등.

반면 출산 후 엄마 역할을 할 여성에게 어려운 점은 모유수유를 하든 분유를 먹이든 아기 돌보기를 하며 몸에 고인 오로의 쏟아짐, 나를 위한 시간 사라짐, 뼈마디의 욱신거림,  타인과 만남도 없어짐, 아기에게 기 빨림, 지속적인 모성애 요청 등은 날이 갈수록 익숙해지지 않는 경험이다.


그 외에도 임신했을 때부터 어린이집에 들어가려면 대기를 걸어야 하고, 아기 분유와 기저귀 값만 해도 한 달에 족히 10만 원에서 20만 원 정도 소비되니 금전적인 부분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아기가 자랄수록 엄마인 여성이 편해지느냐. 그것도 아니다. 4개월 이후부터 모유와 분유를 먹이며 이유식을 초기중기말기로 돌까지 돌봄이 필요하다. 아기 하나를 거저 키우려고 했느냐고. 절대 아니다. 이 정도로 고단한 여정이라고 상상하지 못해서 매번 당황한다.


나는 <아름다운 외출>을 읽으면서 작은 위로를 받았다. 21세기 나만 겪는 여성의 고난은 아니라는 점에서 말이다. 모르고 시작해서 후회하는 나는 꼰대처럼 말하고 싶다. 임신, 결혼, 출산을 준비 중이라면 신중을 기하라고. 다른 대안적인 선택들에 대해서도 열어놓고 준비하면 어떨까. 물론 준비한다고 잘 되는 영역들이 아니라서 난감하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치가 쌓여야 타인의 언어 뒤 의미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니까.


밑줄 그은 문장


1. 새로운 자아는 의지만 충분히 강하다면 이전 것을 통해서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66


2. 여성들이 다르게 살고자 결심했을 때 부닥치는 현실적인 문제는 이들이 쉽게 움직일 만한 여력이 없다는 점이었다. 68


3. 임신에 대한 두려움도 여성으로 하여금 섹스를 기피하게 했다. 131


4. 여성에게 먹이고 씻기고 돌봐야 할 아이의 수가 줄어들수록, 글을 읽고 사색하고 자신을 계발할 수 있는 여유는 더욱 많아질 것이다. 자유를 누리려면 여유가 있어야 한다...모든 여성은 원한다면 피임에 대한 지식을 가질 권리가 있다. 155


5. 어머니의 일을 사회적 활동이라고 하면서, 사회가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한 주장은 어머니가 되는 것에 대해 자의식을 갖도록 해주었다.


6. 좀 더 좋은 어머니가 되라고 하는 이 모든 제안들 뒤에는 이상적 자녀 양육에 대한 유토피아적 희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194


7. 길먼은 어머니를 위한 새로운 조건들을 주장하면서 모성은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과 관련된 가치들도 수반해야 하며, 결국 보편적인 사회적 대안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시사했다. 196


8. 199쪽 1920년대에 아이스가 묘사한 아기가 깨서 울 때 장면 묘사


9. 일은 젠더를 뛰어넘어 인간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해주는 것이었다. 일은 개인으로서 새로운 정체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대표적인 수단이었다. 그러나 여성의 정체성은 여전히 가정일과 친족에 대한 봉사에 묶여 있었다. 280


10. 모성은 이데올로기적, 정치적일 뿐 아니라 사적으로도 여성을 얽어매는 오랏줄이었다.


메타포라 후기는 아래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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