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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니 Feb 22. 2019

묵묵히 쓰기,

퇴사하고 글쓰기 - 합평하고 돌아갔던 그날의 기록, 오늘의 메타포라 15

수업을 마치고 집에 전화를 했다. 내가 번 퇴직금으로 수업을 듣는데 “그렇게 다녀야겠어”라는 말문 막히는 한마디와 마주하는 현실(전화만 했을 때는 오해했다. 확인해보니 아기가 과하게 울어서 힘듦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육아는 공동으로 하는 일이다. 충분히 조율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생이 처음인 아기는 낯가림이라는 변수와 내가 엄마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글쓰기모임이 걸림돌처럼 변해버렸다.


나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나다움을 쟁취하는 지금의 삶은 성향에 꼭 들어맞는 일이다. 현실과 체화된 구조 덕에 나는 마음이 약해진다. 글쓰기여야만 이해되는 내 삶에 아기와 육아로 지금 그것이 우선순위이니 가득 채우라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압박한다.


메타포라가 끝나고 아기와 글쓰기수업을 들을까 말까 고민했다. 고민할 거리가 안된다. 나다움을 잃어버리면 나는 아기에게 엄마 역할만 강요하고 토해내는, 되고 싶지 않은 엄마가 될 것만 같다.


나는 아들이 태어나길 바랐던 사람이다. 다행히 아들처럼 생겼다. 젠더 감수성(다른 성별의 입장이나 사상 등을 이해하기 위한 감수성)이 있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어디 여자가! 이런 말은 하지 않는 엄마인 여자이고 싶다. 녀석이 사는 세상은 내 세상과 다르길 무지 조금 기대한다.


미디어에서 전문가는 성폭력의 90프로는 여성이며, 가족에게 당하는 비율이 높다고 말한다. 자주 보는 친구나 지인조차도 가족에게 어떤 성피해나 폭력을 당했는지 나누지 않는다.


겨우 말하는 건 아빠가 엄마를 칼로 죽이려 했어 이 정도. 미디어에 전문가는 가장 가까이에서 성폭력이 일어난단다. 피부에 와 닿지 않았던 내게 오늘의 메타포라는 마음으로 공감한 시간이었다.


내가 이걸 말해서 뭐하나 와 같은 망상에 에너지를 쏟지 않겠다. 피해자인데 가해자까지 고민하는 이들의 글을 읽으며 그 입장에 서보게 된다. 왜 그렇게 가해자의 사과는 어려운 세상이 되었는지 슬펐다. 왜 말을 못하냐고 반동분자처럼 불만만 품지 않고 말할 권리와 경험을 스스로 찾으며 살아남아야겠다.


전업주부로 퇴근도 휴식도 없는 건조한 삶에서 묵묵히 쓰기로 날을 세워야겠다. 되지 않는 일은 쓰면서 언어로 만들어 구더기가 무서워도 장을 담아야겠다. 사적인 내 경험이 공적인 지지를 얻기 위해 뒷받침할 자료를 바탕으로 견고한 쓰기의 글을 구축하고 싶다. 그날의 메타포라는 그런 밤을 만들어줬다. 고마운 밤(덕분에 아기랑 수업을 듣는다  그 후는 조만간 정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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