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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니 Feb 13. 2019

그의 버킷리스트 : 키즈카페 같이 가기

10일차 #1일1글쓰기

내 친구 정화채는 대학동창이다. 학번은 같지만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어리고 서로 다른 전공을 했다. 우리는 함께 했던 신문사 활동과 극작 수업으로 친구가 된 것 같다.


정화채는 상냥한 인상을 가지고 무슨 이야기든 잘 들어준다. 리더십도 있어서 차분한 말투로 사리분별을 꼼꼼히 해낸다. 이렇게 그와 오랫동안 우리가 교제하는 힘은 비슷한 환경과 처지가 아닐까 싶다.


졸업을 하고 정화채와 종종 만나 근황 토크를 하며 소식을 알고 지냈다. 그가 나보다 먼저 결혼을 했고, 그 결혼식에 정화채만 만나곤 혼자 맛있는 뷔페를 먹고 돌아왔다. 나보다 먼저 퇴사하고 씩씩하게 공백의 시간을 보낸 야무진 면도 있다.


우리는 사회에서 아무런 이름이 없었을 때 만나 그 시간을 같이 공유하고 있다. 나는 4년 사귄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소중한 20대를 송두리째 빼앗긴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내 20대를 기억해주는 정화채가 있으니 산증인이라 불러야겠다.


서로 결혼을 하고 내가 아기를 출산하니, 이번엔 정화채 차례다. 임신의 꽃이라고 불리는 6개월의 몸으로 그가 우리집에 나타났다.


집에 올 때마다 정화채는 맛있는 디저트를 선물했다. 내가 좋아하는 밀도식빵과 800그램 아기 분유 선물은 그가 출산하면 내가 돌려줄 기억에 남는 추억이다.


나는 임신한 정화채에게 밥 한 끼를 해먹이고 싶었다. 우리는 쌀국수와 샤브샤브를 좋아했고 지금도 즐겨 먹는다. 처음 생각한 요리 계획은 떡국과 쌀국수를 할 요량이었다.


육아는 변수의 연속이다. 노냥이가 부산스럽게 분유를 거부해서 요리할 시간이 없다. 그가 올 시간이 되어가고, 나는 초조해진 마음으로 떡국과 불고기로 메뉴를 바꿨다.


나는 처음 떡국을 끓이는 것도 아닌데 멸치액젓을 넣어 멘붕에 빠졌다. 액젓이 들어간 소고기 떡국은 뜨거워질수록 구수한 향을 풍겼고, 후다닥 볶은 불고기는 바스락거리는 종잇장처럼 얇았다. 정화채의 컨디션을 고려해 유자소스를 넣은 양배추 샐러드까지 곁들였다.


풍성한 상차림을 기대하며 준비했지만 무척 빈약한 상차림이었다. 냉장고에 반찬이 김치와 봄동 뿐이었다.


정화채는 출산을 앞두고 어떤 육아템을 얼마만큼 구매해야 하는지 고민 중이었다. 나 역시 출산을 먼저 한 친한 언니의 도움으로 육아대장 아울렛에서 한꺼번에 구매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 내가 그에게 알려줄 차례다. 나는 육아를 시작한 지 6개월이 되어서 출산용품을 준비했던 시간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육아는 아기가 자라는 속도만큼 몇 배로 흘러간다. 출산용품만 준비하면 끝날 줄 알았더니, 이제는 이유식용품 준비 중이라 정신이 없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 있는 다음 임신. 나는 '출산여행'을 가지 못한 일이 제일 후회가 된다. 친구에게는 꼭 가라고 신신당부했다.


육아가 시작되면 혼자 여행할 권리는 아기를 봐줄 타인이 생기지 않는 이상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 혼자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다.


나의 20대를 함께 보낸 친구가 이제 6월이면 나와 같은 육아를 시작한다. 출산하기 전에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을 충분히 누리고 새로운 가족을 맞았으면 좋겠다. 그가 나와 꿈꿨던 '키즈카페 같이 가기' 버킷리스트가 이루어져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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