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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니 Mar 22. 2019

화장실 바닥에 겉옷을 깔았다

퇴사하고 글쓰기 #1일1글쓰기


날이 좋아서 주말에 유모차를 끌고 성수동에 다녀왔다. 센터커피가서 커피도 마실 요량이었다. 카게 하는 루이스의 시장조사를 위한 외출이었다. 유모차에 엊그제 산 방풍막까지 장착했다. 우리는 즐거웠고 피곤했다.


어린이집 가는 날 아침, 아기는 맑은 콧물이 두 콧구멍에서 번갈아 나왔다. 전에 감기를 앓은 탓에 겁은 나지 않았다. 걱정이 돼서 받아둔 감기약을 먹였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콧물이 많이 나온다며 내일 등원하기 전에 누런 코가 나오면 병원에 들르라 했다. 이침에 아기는 재채기와 함께 콧물이 왕창 나왔다. 닦아주고 싶은데 고개를 양쪽으로 펙펙 돌리며 거부했다.


나는 안 되겠다 싶어 소아과 대신 이비인후과에 갔다. 아기 따를 메고 병원에 도착하니 9시 20분, 앞에 대기환자가 여럿이다. 기다리는 사이 아기는 큰 일을 봤다. 어제 어린이집에서 기저귀 발진이 나서, 마음이 급해서 나는 아파트 상가 화장실을 찾았다.


남녀공용화장실이었다. 장애인 화장실에 들어가 아기를 누렇게 띈 변기 뚜껑 위에 눕혔다. 사이즈가 딱 맞다. 아기가 한 번만 뒤집어도 굴러 떨어질 모양새다.


나는 맨바닥에 고양이가 혀로 핥기 좋은 털이 누벼진 검은 털 니트를 깔았다. 아기를 눕히고 버둥대는 녀석의 기저귀를 갈았다. 바닥에선 한기가 올라왔고 지나가는 할머니가 화장실 구경을 하고 갔다. 공용화장실이니 남자가 볼 일 보러 들어오면 난감했을 터다.


아기는 깨끗하게 기저귀를 교체했다. 기저귀 갈이대가 없는 불편함에 나는 잔뜩 분비물이 묻은 기저귀를 짓이기듯 쓰레기통에 구겨 넣었다.


아기와 외출할 때 기저귀 갈이대가 없을 확률이 대부분이니 놀라지 말란 말을 남기고 싶었다.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 라는 말처럼, 기저귀 갈이대가 없으면 바닥에 옷을 깔면 된다.


사진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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