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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니 Jun 19. 2019

내 삶에 들어온 거대한 일

퇴사하고 글쓰기모임을 합니다 - 1일1글쓰기 : 30대 여자사람에게 육아

나에게도 같은 일이 생겼다. 한 사람에게 어떤 운동 하나가 삶의 중심 어딘가에 들어온다는 것은 생각보다 커다란 일이었다. 일상의 시간표가 달라졌고 사는 옷과 신발이 달라졌고 몸의 자세가 달려졌고 마음의 자세가 달려졌고 몸을 대하는 마음 자세가 달라졌다.(9,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 



여자 사람에게 출산과 육아가 삶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생각보다 거대한 일이었다. 아기가 생기면 회사를 그만두는 동료를 보면서 나는 안타까워했던 사람이다. 현실육아 11개월차, 나는 육아로 퇴사한 동료의 이유를 이제서야 공감한다.


회사 다닐 때는 출퇴근이 1시간 30분 거리라 평일에 오전 6시 30분이면 집을 나섰다. 아침은 오전 6시부터 장사하는 우리집김밥 메뉴를 골라가며 해결했다. 주말에는 오전 11시까지 늘어지게 자도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었다.


출산 후 아기 100일이 지나고 나는 10개월째 매일 오전 6시 40분이면 일어나야 한다. 늦잠을 자려면 친정집에 가거나 남편이 늦게 출근하는 방법이 있다. 오전 7시면 집을 나서야 하는 남편의 간단한 아침밥은 내가 그나마 해주는 아내 노릇이다.


남편이 요리하면 부엌이 난리가 나서 뒷수습을 하느니, 내가 하는 게 마음과 몸이 편하다(식기세척기를 놓을까 고민 중이다). 남편의 아침은 냉동 볶음밥이 메뉴의 90퍼센트를 차지한다. 둘이 살 때는 아무렇지 않았던 냉동 볶음밥 구매가 아기의 이유식 양이 늘어갈수록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볶음밥은 어떤 재료든 넣어서 볶고 소금으로 간만 맞추면 되는 간편식 아닌가. 육아할 때는 간편했던 것들이 더 간편해졌으면 싶어진다. 아기이유식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르는 일도, 가계의 부담감을 느끼는 것도 10개월동안 오롯이 내 몫이었다.


냉장고털이하는 심정으로 비몽사몽 눈을 떠서 하는 아침 첫 일과가 밥을 볶는 일이라니 가끔 내가 뭐하고 있나 싶은 생각이 불쑥 올라온다. 허지원 작가(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는 인생의 허무감이 몰려올 때 '왜'라고 질문하지 말고 '어떻게'에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조언은 조언일뿐 실생활 적용이 바로안되는 게 늘 문제다. 아기가 귀가 밝아져서 잘 달궈진 기름에 밥이 섞일 찰나에 운다. 나는 볶음밥 완성을 마저하고 싶지만 우는 아기 앞에서는 소용이 없다. 볶음밥 하나를 완성하려면 나는 남편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아기를 달래러 가야 한다.


아침마다 볶음밥을 먼저 만들었던 나의 일과는 10개월 아기의 이유식을 데우고 분유를 조제하는 일로 달라졌다. 아침에 여유롭게 물 한잔 먹는 일조차 까먹기 일쑤다. 빨리 아기가 이유식이 아니라 어른처럼 일반식을 같이 먹는 날이 속히 왔으면 싶다.


현실육아가 시작되고 내 삶을 치고들어왔던 질문은 '내가 이럴려고 악착같이 대학을 가고 돈을 벌었나'였다. 여자사람의 인생이 출산과 육아와 함께 이렇게 바뀌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면 나는 애써서 대학을 가지 않았을 것 같다. 빨리 출산과 육아를 끝내거나 애초에 시작하지 않았을 듯싶다.


나는 임신 4개월 차에 회사 리더와 관계가 좋지 않았다. 나는 퇴사의 이유를 임신으로 합리화했고, 일자리를 구할 요량으로 사표를 썼다. 새로운 일을 하려면 기존의 하던 일을 멈춰야 실현 가능해 보이기도 했다. 꼭 되겠다 생각했던 일터는 보기 좋게 떨어졌다.


임신을 해도 어떤 회사든 받아주겠지라는 혼자만의 착각을 했다. 현실을 보는 눈이 임신을 해서 멀었던 걸까. 현실을 직시하도록 조언하는 누군가 있었다면 나는 다른 선택을 했을까. 퇴사를 유보했겠지만 언젠가 그만두었을 것이다.


임신한 상태에서 구직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고려할 게 많아져서 쉽지 않다. 내가 가능한 일이 있어도 하원시간을 생각하면 어딘가에 소속되는 일에 마음이 약해진다.


낯가림이 시작되면 힘들다고 해서 6개월이 되자마자 어린이집에 보냈다.집에서 아기와 12시간 이상을 붙어있으니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아 살기 위해 했던 선택이었다. 아기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나는 남편 카페 일을 돕는다. 어린이집 등하원은 화장실을 들어갔다 나올 때처럼 왔다 갔다 했다.


어떤 날은 어린이집 담임선생님을 신뢰했다가 집에 와서 아기가 배가 고프다고 울어재끼거나 예상 못한 떼를 부릴 때면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나라에서는 법으로 종일반은 오후 7시 30분까진 맡겨도 된다.


현실의 어린이집은 오후 4시 30분이 넘어가면 남아있는 아기들이 없다. 글쓰기수업하고 하원한다고 눈썹이 휘날리도록 뛰어 어린이집에 도착하면, 선생님이 가방을 메고 퇴근준비를 마친 모습과 마주할 때면 당황스럽다. 나 역시 퇴근의 즐거움을 알기에 들뜬 어린이집 선생님을 탓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되도록 늦지 않고 오후 4시 30분이 되면 아기를 데리러 가야 한다.


그래도 내 삶에 숨통이 트이는 구멍이 있다. 집에서 공식적인 외출은 글쓰기모임이 있는 날이다. 감응의글쓰기 14기가 끝나는 날은 아쉬움이 컸다. 매주 화요일은 남편이 아기를 하원시키는 날인데, 글쓰기가 끝나면 전담으로 어린이집 등하원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말은 남편이 하원한다고 했지만 카페에서 이것저것 챙기다가 놓칠 때가 많아져서 나도 간다. 나는 똑 떨어지게 남편이 화요일에는 하원하고, 나는 자유를 만끽하는 삶을 철없이 꿈꿨다.


끝나지 않았으면 싶었던 공식적인 글쓰기모임은 끝났지만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다. 어떤 구실로든 나는 나만의 자유시간이 필요했고, 매주 화요일은 저녁까진 자유로운 날이었으면 싶었다. 하지만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혼자서 아기와 밥을 챙겨 먹고, 목욕을 시키고 잠을 재우는 육아의 피곤한 여정을 둘이 하면 훨씬 낫기 때문이다. 최대 보장된 자유시간은 오후 7시를 넘기지 못한다. 가끔 어떤 자리가 재미있으면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놀기도 하지만 마음이 불편해서 가시방석처럼 느껴진다.


애엄마, 애 딸린 경력단절여성, 애기엄마, 누구네엄마 등 나는 아기와 함께 있는 내 모습이 10개월이 되어도 익숙했다가 불편했다가 한다. 미혼인 친구와 만남은 열 손가락 안에 꼽는다. 아기가 없어도 나는 친구와 육아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그런 애쓰는 관계에 지칠 때가 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은 카페 운영과 육아다.


남편 밑에서 바쁠 때만 돕는 초단기 알바지만 다른 지점을 냈을 때 온전히 도맡아 카페 운영을 해보고 싶단 욕심이 생겼다. 평생 글을 쓰려면 돈은 내 이름으로 된 카페를 차려서 벌거나 부동산을 잘해서 건물주가 될 생각이다. 출산과 육아로 삶이 달라졌으니 꾸는 꿈을 이루는 방법도, 돈버는 법도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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