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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니 Jul 31. 2019

아기가 아프니, 나도 아프네

카페노동기 #의지적글쓰기

다음 달이면 돌을 맞이할 노냥이가 처음으로 수족구에 걸렸다. 이번 주 수요일까진 어린이집 등원할 생각만 있었던 나에겐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생후 6개월 이후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콧물감기를 달고 살았는데 어디에서부터 그런 건지 엄마들이 무서워하는 수족구라니.


처음 있는 일이라 엄마 입장에서는 무시무시한 진단을 받은 기분이었다. 인터넷에는 고열과 수포로 아기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수족구는 확진받으면 전염성이 강해 어린이집 등원이 되지 않고, 격리해야 한다. 그렇기에 내가 가장 두려웠던 건 아기돌봄이었다. 나는 카페 일을 돕지 못하고, 노냥이 보육을 맡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지난주 월요일에 원장님이 노냥이 수족구 의심되니까 병원가보라 해서 콧물감기 때문에 자주 갔던 곳에서 수족구는 아니라 해서 원장님께 안심 문자를 보냈다. 진찰 당시에는 입안에 연증도 없고 목도 깨끗하고 그렁그렁 코 말고는 문제가 없다길래 의사선생님 말만 믿었다. 열심히 리도멕스와 레스타민을 번갈아가며 발라줬다. 열이 나면 꼭 오라길래 매일 열체크도 빠뜨리지 않았다.


계속 지켜보니 녀석의 두드러기는 좋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생애 첫 옥수수랑 분유 끊으려고 생우유까지 먹여서 헷갈린 점도 있었다. 깨끗했던 피부에 두드러기가 오래가서 여자의 촉으론 급한 대로 소아과에 갔다.


다음날 나는 원래 진료받았던 곳에 또 갔다. 처음 갔을 땐 아니라 했는데... 정확히 6일 후 다른 의사선생님이 노냥이를 보곤 수족구라고 했다. 처음 진단했던 의사선생님은 휴가를 떠났고 나는 당황스러운 결과를 뒤늦게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병원 오진의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 나는 아기가 아프면 무엇을 신뢰해야 하는지 헷갈렸다.


아기의 수족구는 인터넷에서 본 것처럼 심하지 않아서 잘 몰랐다. 옥수수를 먹곤 음식 알레르기가 올라오나 싶었고, 주말에 벌레가 많은 펜션에 갔다가 벼룩이 옮았나 싶었다. 열도 나지 않았고 몸에 수포도 거의 없었다. 검색해보니 수족구도 요즘은 변종이 많다고 한다. 수포가 올라오고 고열에 시달리는 심한 아이들도 있고, 열없는 수족구도 있다는 걸 알았다. 열없는 수족구였던 아기 컨디션은 좋았다. 이유식도 잘 먹고 분유도 엄청 먹었다.


하지만 다시 간 병원에서 수족구 확진을 받으니 원장님께 자초지종을 설명드리고 가정보육을 하기로 했다. 일하는 카페 공식휴가는 8월 1일인데, 저번 주 금요일 오후 늦게 확진받았으니 이번 주 3일 동안 육아 공백이 생겼다. 예상치 못했던 육아 공백으로 주말 동안 우울했다. 수족구인지도 모르고 어린이집에 보낸 게 내심 마음에도 얹혔다.


7월 말과 8월 초는 여름휴가기간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가게 앞 밥집이 10일 긴 휴가를 떠났다. 밥 먹고 넘어오는 카페를 찾아오는 손님도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내가 일하는 곳은 자리가 없는 테이크아웃 매장으로, 주로 근처 직장인들이 온다. 같이 하던 일을 사장님 혼자 오전 9시부터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쁠 시간에 잠깐 노냥이를 데리고 일터로 향했다. 이미 녀석의 수족구는 딱지가 앉았던 상황이었다.


‘봐줄 사람이 없으면 데리고라도 가봐야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동수단부터 나는 머리가 아팠다. 유모차를 가지고 지하철로 가자니 엘리베이터가 막막했고, 아기띠로 가자니 허리가 나가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차를 가져가면 베스트지만 주차할 곳이 없다.

사진 = unsplash

엊그제는 유모차를 들고 지하철을 이용했고, 어제는 아기띠로 이동했다. 이동수단마다 애를 데리고 다니면 장단점이 있다. 지하철은 제시간에 빨리 도착하고 유모차 이동이 자유롭다. 하지만 내가 환승하는 역은 어르신들이 많은 곳이라 엘리베이터 앞에 줄이 길다. 나 역시 몇 번의 엘리베이터를 보내곤 유모차를 탔다. 예상시간과 다르게 일터에 늦었다.


유모차를 들고 버스 탈 생각도 했지만 저상버스가 아니면 쉽지 않겠단 판단했다. 초록창에 '유모차 버스'란 단어로 검색해봤지만 어른 두 명이 아니고선 혼자서 아이와 유모차, 난감한 선택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버스는 아기띠가 최선인데, 40분 넘게 가야 하니 녀석이 버티어줄지가 미지수였다. 유모차에서도 갑갑하면 소리 지르고 울어서 나는 비타민이랑 떡뻥(쌀과자)을 무한대로 아기에게 쥐어졌다.


버스에서 노냥인 조용했을까? 아니다, 그래도 내겐 비장의 무기 떡뻥이 있으니까 넘어갔다. 과자가 다 떨어져 갈 때쯤 나는 버스에서 아기와 내렸다. 몸은 무겁지만 아기와 함께 있으니 마음은 편했다.


월요일 점심때는 손님이 별로 없어서 괜찮았지만 다음날 점심때 손님이 많았다. 손님이 많은 날, 사장님이 두 대의 제빙기를 끄고 가서 얼음이 부족해 나는 녀석을 안고 편의점 가서 3킬로그램 얼음 두 개를 사와야 해서 애를 먹었다.


애를 데리고 일터에 나간 그날의 점수를 매긴다면, 10점 만점에 5점이다. 아이와 함께 있어서 마음의 위로가 가장 큰 점수를 차지한다. 그나마 위안은 노냥이가 그곳에서 큰 일을 보지 않았고, 달래 가며 일을 마쳤다는 사실이다. 까먹은 5점은 아이에게 불편한 환경 탓에 마이너스였다.


아기가 잠들었을 때 뉘일 곳이나 기저귀를 편하게 갈 수유공간이 없다. 나는 아기띠로 노냥이를 앞뒤로 움직여가며 얼음을 푸고 음료를 만들고 계산을 도왔다. 아기는 이제 좀 컸다고 아기띠에서 꺼내라며 난리 부루스였다. 혼자서 했을 땐 수월했던 일도 나는 겨우 했다.


녀석이 잠들지 않았을 때는 아이스컵에 담은 얼음을 녀석이 힘이 세진 발로 뒤엎었고, 칭얼대는 탓에 가니쉬로 기껏 빼놓은 민트 잎을 홀라당 까먹고 음료에 넣지 못했다. 구강기를 지나는 아기는 손에 잡히는 빨대나 무엇이든지 만지려고 버둥거렸다. 어린이집을 가지 못하는 날 아기를 봐줄 친인척이 주위에 없고, 째깍악어라든지 베이비시터를 구하는 방법뿐이지만 한두 번은 괜찮지만 계속 하기엔 돈이 문제다.


애를 데리고 가는 일터가 카페라면, 최소한 이런 환경이 마련되어야겠다. 편하게 아기가 있을 놀이매트, 수유나 이유식을 데울 전자레인지, 모유 먹을 아기를 위한 아담한 수유공간, 적당한 장난감이나 책, 카페 사장님이 여건이 된다면 놀이선생님까지 구해주면 금상첨화이지 않을까. 상상하고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편이 놓인다. 위와 같은 환경이 조금이라도 마련되어 있다면, 힘겹지만 할 만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


그래도 아기 덕분에 서로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할 일만 하는 나와 손님 사이에 약간의 대화할 시간이 있었다. 녀석과 함께 가지 않았다면 경험하지 못할 일들이었다. 어린아이들이 와도 안전한 일터(직장)에서 일한다면, 얼마나 마음의 부담이 줄어들까. 나중에 내가 카페를 운영하거나 사업을 한다면 꼭 엄마인 여성들이 아이와 함께 와도 괜찮은 공간을 구성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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