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소리 지르는 건 아닌데 소리가 질러져요 ㅠㅠ
19개월 된 아기를 키우며 가장 힘에 부치는 일은 ‘재우기’다. 아기와 분리수면은 생후 50일 때부터 습관화해서 지금까지 (다행히도) 잘 지켜오고 있다. 단지 아기가 잠들기까지 날이 갈수록 뜻대로 되지 않아 소리 지르는 일들이 늘어가는 게 고민이다.
육아가 시작되고 입에 달고 사는 말은 피곤하단 이야기다. 뜻대로 쉬지 못하고 매일 월화수목금금금이 이어지는 날의 연속인 기분 탓이다. 아기 하나를 보려면 어른 둘 이상은 필요하다. 물론 아기가 주는 기쁨이 있지만 그 달콤함을 맛보기까진 과정이 녹록지 않아서 곡소리가 나온다.
얼마 전에 <고함쟁이 엄마>란 그림책을 읽었다. 펭귄 엄마가 소리지르면 아기 펭귄이 느끼는 감각을 그림으로 옮겨놓았다. 아기들은 엄마가 소리를 지르면 온몸이 찢어져 나가는 감각이라고 책에선 표현했다. 마지막은 해피엔딩처럼 엄마가 “미안하다 아가야”뉘앙스로, 조각난 아기 펭귄 몸을 엄마가 실과 바늘로 꿰매는 모습으로 끝난다. 내 삶에 적용해본 그림책의 효과는 몇 주 이어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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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욱하는 다혈질에, 성질머리까지 급해서 육아하는 내내 부대낌이 있다. 내 뜻대로 못하는 일들이 쌓여가고 고스란히 스트레스는 가장 약한 아기에게로 향하는 슬픈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소리를 지르고 싶지 않아도 매일 사자후 하는 날들이 쌓여간다.
그러다 문득 머리를 한 대 맞는 것 같은 순간들이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자고 싶어하지 않는 아기를 재우려고 과하게 소리를 높였다.
“노냥아, 이제 잘 시간이에요.”
노냥이는 순간 놀랐는지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3초 정도 정지했다. 나도 흠칫 놀라서 안 자고 싶으면 놀라고 태세를 전환했다. 내가 하는 행동이 미치는 영향력을 자녀를 키우면서 온몸으로 체감한다.
소리에 놀라서 납작 엎드린 아기를 마주하는 나는 엄마의 자격 혹은 조건을 운운하며 인간쓰레기 이런 식으로 밑바닥까지 철렁 내려앉는 일들을 반복한다. 나는 소리를 지르면 무서워 울어버리는 아기에게 불안전함을 제공하는 일이 잦아서 걱정이다. 가끔 미디어에서 교사가 아이 학대하는 사례가 나오면 그 마음이 이해되면서도 그러면 안 된단 마음이 널뛰기를 한다.
소리를 안 지르면 되지 않느냐고 질문할 수 있다. 그게 마음처럼 되면 나는 육아구루가 되는 거 아닐까. 내 안에 아기를 한 인격체로 대하는 마음의 엿부족인걸까. 이 부대낌은 육아해방이 오기 전까진 늘 나에게 던져진 숙제가 될 것 같다.
소리를 지른 나는 반성문을 이렇게라도 쓰고, 아기는 코를 드르렁 골며 꿈나라로 향했다.
미안하다, 아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