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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니 Jul 07. 2020

괜찮지 않습니다

괜찮지 않은데 반대로 말했던 순간들

촘촘한 삶 사이로,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는 말이 습관처럼 튀어나왔다. 왜 나는 스스로에게 아니면 타인에게 솔직하거나 진실하지 못한 걸까 자괴감이 들었다.


1. 우물쭈물 

30대 기혼여성의 재취업 분투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계약 만료 후 3개월 연장하고 , 9월 중에 다시 더할지 말지 결정하기로 했다.


회사는 대표를 포함해 3명 더 일하는 작은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큰 회사에서 다녔던 짬밥인지 아쉬움인지 연차 제도 등 정해진 건 있는 것 같은데 시시콜콜 알려줄 사수나 동료가 이곳엔 없다.


나랑 이 회사에 들어온 지 거의 1달 정도 차이나는 비서친구가 있다. 나이는 스물아홉으로 한참 어리지만 성격이 대들보처럼 우직한 스타일이다.


회사가 코로나 때문에 무급휴가를 주었고 1년 미만 근로자는 한 달에 1개씩 연차가 생긴다. 하지만 특수한 상황이 이어지고 나와 그는 연차가 몇 개 생기는지 도통 알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쉬지 않았다.


어제 대표에게 물어보기 위해 내가 잠깐 말을 먹었다. 그가 보기엔 우물쭈물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못 알아먹겠다고 했다. 그러게 대표한테 왜 당당하게 연차 제도를 묻지 못하나 싶은 내 빙구 같은 모습 더하기 그 친구가 보는 우물쭈물 내 모습까지 겹쳐서 지나고 보니 그 순간 괜찮지 않았다.


사람이 생긴 대로 산다고 스물아홉 친구는 나와 정반대의 성격이다. 나이 차이도 나고 공통된 관심사가 없어서 친해질 이유도 목적도 없는 사이다. 목례처럼 아침에 인사만 겨우 하는 관계다. 그래서 가끔 회사 가면 외롭고 답답할 때가 있다.


남편에게 오늘 우물쭈물 내 모습을 그 친구가 답답해했다고, 내가 왜 그 회사를 다니는지 모르겠다며 구구절절 말을 늘어놓자 속 시원한 한마디를 했다.


“네 마음에 드는 사람 세상에 없어. 그저 맞춰가는 거지.”


그래 맞춰가는 걸 머리카락으로만 알고 이성적으론 계산이 안되니까 얼마나 괴로운데...


2. 노냥이가 다쳤다 

노냥이가 어린이집에서 놀다가 흥분해서 턱 밑을 찍었다. 하원 하는 길에 담임 선생님과 마주쳤다. 나는 선생님이 늘 아기들 보느라 개고생 하는 걸 아니까 애써 괜찮다고 말했다. 쿨한 척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목욕을 시키고 잠들 시간쯤 아기 상처에 붙인 밴드가 떨어졌다. 속상했다. 빨갛게 오돌 토톨 흉터 생길까 괜스레 걱정이 올라왔다. 다음엔 괜찮지 않다는 말을 건넬 수 있을까, 과연 나는 그렇게 할까. 쿨한 척만 하지 않아도 괜찮겠다.


3. 5개월 회고 그리고 피드백 

요즘 시기만큼 취업하는 것도 이직도 어려운 순간이 그런 년도가 있었을까.


5개월 동안 회사로 다시 출퇴근하면서 꽤 많은 순간에 사로잡히고 번뇌했다. 아기가 어린이집에서 어려운 순간이 찾아오면 얘를 볼까 그만둘까 갈팡질팡했다.


회사 대표와 면담에서 다니며 어려운 점이 있냐고 다 들어줄 것 같은 인자함으로 질문하길래 솔직히 답했다가 깨달았다. 그냥 함구하는 게 사회생활이라는 걸 말이다.


어느 회사 대표나 최애직원은 일 잘하는 직원일 것이다. 일을 못하면 돈을 까먹게 되고, 어렵게 일군 사업이 위태로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거친 폭언하는 동료 이야길 했다가 내 태도가 훨씬 이기적이란 이야길 듣고 그 뒤로 계속 체한 것처럼 남아있다. 친구한테 터놓고 말했을 땐 대표가 그 직원 편을 들어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편을 든 직원은 일처리가 빠른 대신 험한 입은 애교 수준으로 봐줄 수 있는 건가 싶지만 현실은 늘 냉정하다.


나는 착하지도 않고 이기적이란 말이 훨씬 잘 어울린다. 그래도 내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는데 왜 그런 피드백을 받아야 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전혀 상식적이지 않고 늘 상식 밖, 예상을 깬다.


회사에 다니면서 500만 원을 모으겠단 목표는 이루지 못했다. 다행히 3개월 연장됐으니 목표도 수정 가능해졌다. 돈을 버는 만큼 소비하고 싶었던 미뤄둔 욕구가 폭발했다.


회사에서 각개전투하는 분위기인데, 밥을 같이 먹었다. 정말 밥만 먹었다. 우리가 이야길 나눴던가 싶을 만큼 밥만 먹었다. 마치 손잡고 잠만 잔 그런 느낌이었다.


괜찮지 않은 순간, 괜찮지 않다고 잘 말할 수 있었으면 싶다. 척하며 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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