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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니 Jul 14. 2020

마음이 시끄러워서 청소를 했다

가족이란 명사를 붙이지 않으면 차라리 괜찮을 것만 같은 관계, 시가

마음이 시끄럽다. 시가 관련된 일은 미해결 된 과제처럼 나를 종종 어떤 이슈처럼 괴롭힌다. 괴롭지 않으려면 하라면 하고 말라면 하지 않으면 된다. 수동적인 아니 순종적인 무념무상이 좋다. 하지만 사람이 늘 그런 존재가 되지 못해서 문제일 뿐이다.


시가 이야긴 마음이 복닥거린다. 내가 아기를 먼저 낳고 둘째네는 힘들게 아기를 가져서 올해 6개월 된 아기를 만났다. 셋째 며느리인 나와 둘째 며느리는 한 살 차이가 나지만 시가에서 서열이나 관계의 시간면에서 내가 제일 얕고 낮다.


결혼해서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인 관계에서 적응하느라 개인적으론 혼쭐이 났다. 시간이 지나도 왜 이렇게 어려울까. 자녀를 낳으면 괜찮겠지 해서 어차피 낳을 거라면 하는 마음으로 재빠르게  낳았다. 결혼한지 6개월 만에 임신을 했다.


아기는 낳고 보니 지뢰밭과 행복감을 매일 오가게 만들어주는 환상적인 존재다. 인간이 덜 된 내 모습을 매일 마주치며 혹독한 수련을 몸과 마음으로 시켜주는 생명체다.


60세가 넘었지만 아직도 일하는 시어머니는 매주 금요일 저녁엔 셋째네인 우리의 저녁을 챙기고, 매주 토요일에는 둘째네 아기 보느라 바쁘다. 둘째네는 시가와 사는 곳도 차로 1시간 이상 떨어진 곳이라 왕래가 쉽지 않다.


회사를 퇴사하고 인간관계가 자연스럽게 정리됐다. 무척 간명한 관계만 남았다. 같이 사는 가족 외엔 회사 사람들과도 일정한 거리를 뒀다. 나는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사람이란 애매한 포지션이 있었기 때문이다.


살다 보니 군더더기 가득했던 관계들이 먼지를 털어내듯이 정리된 후엔 인간관계의 복잡스러움에 대해 마음을 덜 쓰게 됐다. 예를 들면, 가장 친한 친구들 이런 거 없다. 지금 곁에서 자주 만나고 연락하는 사람이 친한 친구다.


교회라는 공동체에 다닐 때도 돌이켜보면 나는 관계에 서툰 사람이었다. 아무리 시간을 같이 보내도 내 기준에서 친해지는 게 더디었고 어려웠다. 내가 다녔던 교회 공동체는 자신을 돌아보는 일주일 삶의 묵상이 많은 편이었다. 나를 돌아보고 내 이야길 그렇게 가득 아니다. 넘치게 꺼내놓았지만 나는 늘 겉도는 이방인 같았다. 내 잘못이겠지, 적응 못한 내 어리석음이겠지.


인간관계의 미숙함은 시가 식구들 사이에서도 또렷하게 드러냈다. 둘째 며느리, 내 위치에서 형님이란 단어를 붙이고 입으로 꺼내기조차 아직도 까칠 거 린다. 자주 만나지도 않고 명절 때 보면 많이 봤을려나. 서로 잘 몰라서 생기는 관계의 삐걱거림인 걸까.


가족이라고 말하지만 서로의 생일조차 챙기는 게 낯선, 굳이 가족이란 명사를 붙이지 않으면 차라리 괜찮을 것만 같은 관계다. 물론 가족이 다 생일을 챙기지 않는 시대를 살아가지 않나. 가족이란 울타리로 묶어서 서운한 감정들이 나도 모르게 조금씩 쌓이고 있다. 아니 쌓였다.


아주 사소한 서운함들이다. 둘째 며느리 생일은 찰떡처럼 시부모님이 챙기는데, 내 생일은 나랑 신랑이랑 시어머니랑 단출하게 보냈다. 생일을 축하한다느니 그런 인사치레는 없다. 물론 나도 마음이 오지 않아서 갈 마음이 없다.


다른 사람이니까 다르게 대하는 방식을 두 눈으로 목격했을 때 발생되는 감정들이다. 자식이 많으면 열손가락 깨물면 무는 강도에 따라 통증의 느낌도 다르지 않은가. 결혼한 시가 풍경에 끼어든 며느리란 존재도 무는 강도에 따라 다른 대우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머리로만 생각한다.


서로 아기를 낳고 만났던 얼마 전 가족모임에서는 내가 매주 가던 시가집인데, 마치 둘째네 집에 간 기분이 들었다. 모든 조건들이 둘째네 아기에 맞추어진 집안의 분위기. 그날은 그게 싫어서 내가 낳은 우리아기에게만 엄청 집중하고 돌아온 기억이 난다.


그날 그가 나에게 물었다.

"제가 좀 과한가요?"

- 아니요 뭐


나는 멋쩍었고 내 입에서 진심이나 솔직한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관계에 대한 기대조차 없어서인지  포장했고 얼버무렸다. 가면을 켜켜이 쓴 이 관계의 끝은 언제쯤 날까. 꼭 나는 그들과 혹은 시가 사람들과 친해지고 친밀해져야 할까.


내 안의 짓궂은 예민함은 돌부리에 걸려 넣어지듯 매번 몸에 생채기를 낸다. 시가 식구들 모임에 가지 않았을 때는 집으로 돌아온 남편에게 쫑알거리는 수다쟁이처럼 이것저것 묻는 편이다. 이번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았다. 아니 묻고 싶지 않아서 다음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잊어버린 척 묻어버렸다.


코로나가 2월 그러니까 재취업한지 6개월차인 지금도 이어지고 있네요. 잘 지내시나요? 도서관이 문을 닫아서 요즘 읽는 책은 경제신문과 회사 관련 논문(?) 같은 연구서들 뿐이네요. 일하는 일상에도 특별하게 나눌 거리가 줄어든 건지, 제 안의 수다스러움이 사라졌...글쓰는 사람으로 (다시) 힘을 내보려고 합니다. 화이팅입니다. 지난 일상이 그립지만 현재 할 수 있는 일을 해보려 합니다!


인풋이 없어서 글의 완결성이 스스로 보기에 부족하네요. 감정이 용광로처럼 흘러넘치고, 정리가 잘 안돼요. 현재진행형인 문제들이라 그런 듯 싶어요.


앞으론 회사에서 공부했던 내용들(콘텐츠마케팅) 관련 정보도 잘 정리해서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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