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료와 점심을 같이 먹지 않았다

30대 경력단절 기혼여성의 재취업분투기 ep.5

by 김애니


2번을 발행했다 취소했다. 대놓고 타인을 비하하는 텍스트를 쓴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고 나는 욕동료와 점심을 같이 먹지 않는다. 오늘로 10일째다.


1시간 점심시간이 남기도 하고 마음대로 자유롭게 사용하니 날아갈 것 같았다. 듣기 싫을 정도로 지루한 가르치려드는 훈계조의 이야길 더 듣지 않아서 좋았다.


삶의 여러 경험들은 겪어보지 않고 말하기엔 조시스럽다. 맨스플레인, 한남이란 단어를 듣기만 했지 겪어보지 않아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정리된 글을 쓸 날이 오면 싶다.


맨스플레인이 가스라이팅과 비슷하다고 느낀 건 조정당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욕동료 말은 다 옳고 내 이야긴 늘 대부분 부정됐다. 맨스플레인 당한 입장이라 텍스트의 결이 고르지 못하니, 양해 부탁드립니다(꾸벅)



일은 내가 아니다(명함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일보다 내가 중요하다(내가 나 자신을 싫어하더라도)

나는 사장이 아니다(사장이었으면)

언제든 때려치울 수 있다(아마도)

대출금과 할부금 잔액 리멤버(신이시여 제게 로또 1등 세 번!)


- 출근길의 주문 중 이다혜


회사인간이 된 지 5월 19일, 77일째 날이다. 분수에 넘는 업무가 떨어진 날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어떤 분야의 매뉴얼을 작성해야 했고, 콘텐츠마케팅이 무엇인지 개념이 희미했을 때 브랜드를 알리고 싶은 회사와 대표의 계약 완료 후 나는 전처럼 해내야 했다. 생리가 시작되기 전이라서 감정 기복이 심했던 걸까. 나는 두 번의 고비를 넘으면서 숨 막힌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벗어나고 싶었지만 버티어야 했다.


4월 30일 석가탄신일을 시작으로 5월 5일 어린이날까지 직장인들에겐 긴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싱글이었을 땐 장기휴가만큼 기다렸던 순간이 없었던 것 같은데, 현실육아가 시작되고 긴 휴가는 또 다른 노동의 이름처럼 다가왔다. 아기와 있는 건 즐겁지만 끝나지 않는 노동의 연속성을 감내해야 한다.


현실육아 후 쉬고 싶다는 말만큼 이기적으로 들리는 말이 없다. 회사에 가면 주어진 일을 하느라 집에 오면 주어진 육아를 해내느라 씹지도 못하고 쓰러지는 날들이 더 많았다. 씻지 못하고 자면 체력까지 떨어져서 아프기 일쑤였다. 그렇게 원했던 일을 시작했지만 나는 숨막히는 느낌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잘 몰랐다.


무작정 1건의 일을 끝내 놓고 며칠을 벼르다가 대표에게 쉬겠다고 공표하듯 말했다. 쉬니까 살겠다. 녀석은 어린이집에서 갔고 남편 루이스는 자기 일하러 떠났다. 고요하고 적막한 집이 좋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는 5월 중순 정도에 집 근처 도서관이 다시 문을 열었다. 한동안 읽지 못해서 쓰지 못했다. 그동안 읽은 건 인터넷뉴스 경제 기사와 회사 업무용 자료들뿐이었다. 도서관에서 대출한 도서는 슬프게도 회계 관련 도서와 인플루언서마케팅 책이었다. 그리고 5달을 기다린 '출근길의 주문'이었다. 이다혜 작가의 에세이집인데 책 제목처럼 인용한 책의 내용이 가슴 깊숙이 자리 잡았다.


요즘 일에 잠식당할 찰나에 '출근길의 주문'을 읽으면서 정신을 차렸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친구에게 다녀온 길에 수다 떨면서 정리가 됐다. 재취업 후, 새로운 업무가 주어지는 건 사실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인간관계가 걸림돌이었다. 어렵게 취업한 내 입장에서는 500만 원 모으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버틸 큰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대표의 업무보조를 담당한 1년 안 된 직원이 퇴사하고, 약간 흔들렸다.


내가 지금 다니는 회사는 사무실에는 총 5명의 인원이 출근한다. 한 명은 컨설턴트라 대화할 기회가 없고, 대표 경영지원 담당자는 나이 차이도 많이 나서 어울리기 어렵다. 비슷한 연배의 디자이너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처음에는 잘 모르니까 밥도 같이 먹었고 지금도 먹는 중이다.


레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책 제목을 현실로 시전해주는 캐릭터였다. 일의 스타일도 달랐다. 전 직장에서는 디자이너에게 일정 자료 최소만 넘겨줘도 찰떡처럼 결과물이 나왔다. 여긴 달랐다. 자료가 넘어간 게 시답잖은 지 욕설이 들렸다.


77일 동안 그곳에서 일하며 수많은 욕설을 들었다. 그가 욕하는 순간은 스트레스를 받아서 빡치는 일전의 시발탄이었다. 욕설이 들리곤 그가 내 자리로 와서 습관처럼 또 가르치려 들었다. 지금까지 잘 들어줬다. 뭣 같은 이야기도 찰떡처럼 그럭저럭 넘겼지만 이젠 약간 내 에너지도 바닥났다.


새끼 나오는 건 애교에 속했고, 마리란 이야기도 서슴없이 했다. 아무말대잔치인 디자이너는 그렇게 살아도 됐던 걸까. 억소리나는 재산을 가졌다. 그를 잘 모를 때 구글 검색창에 "욕설 하는 남자"란 검색을 돌린 적이 있다. 싱겁게도 원하는 답을 찾진 못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길 몇 번 번복했다. 그러다 회사가 코로나 때문에 힘들다고 무급휴가를 줬다. 그 고비를 지나며 욕쟁이 동료 에피소드도 사그라드는 듯했다.


욕하는 언어습관은 고치기 힘들다. 인성도 바뀌기 어렵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글쓰기 수업 때 한남에 관한 에피소드를 간접 경험해봤지만 내가 직접 경험해보니 약간 당하는 입장에선 매번 멘붕이 되는 것 같다.


김숙 씨가 욕쟁이 이성을 만났을 때 정색하면서 이야기하란 해결책을 보긴 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이제 계약기간 1달 하고 10일 정도 남았다. 타인 때문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는 우를 범하고 싶진 않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 답답한 마음에 취업사이트를 검색했다. 답답한 마음에 막막한 마음까지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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