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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니 Feb 27. 2021

모든 곳에 부장님이 계셔

Y를 만났다

코로나 때문이었을까. 아니, 그냥 그런 관계. 친구가 그렇지. 방송작가 일을 하다가 감독에서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한 Y.


Y와 나는 종교관이 같지만 성격은 다르다. 그날 만남에서 더 느꼈다. Y가 꽤 예민한 친구란 것도.


예를 들면, 오늘 나는 밥먹으 식당에서 물을 많이 마셨다. 맛있어서 그랬는데 Y  한잔에 행복한 나를 보곤  맛을 알려주겠다며 음미해줬다.


그리고 미처 갈 만한 카페를 준비하지 못해서 아무말대잔치였던 나. 나도 생각하지 못한 어떤 영역을 말로 긁어주었다. Y가 그런 사람이었다. 어쩌면 언제나.


30대 후반을 지나가는 우리의 일상은 세상 모든 곳에 계시는 부장님을 모시는 삶 그 자체였다. 어디든 사회생활이 끊이지 않고, 비위를 맞춰야 살아남는 세상에서 버티고 있다.


20대 때 미리 경험했다면 지금쯤 서로 하고 싶은 그것을 하면서 지내고 있진 않았을까 하는 이야기를 했다. 2~3년마다 이직하며 몸값을 올려 일을 할 순간에 나는 9년을 보냈고 뒤늦게 이곳저곳 전전긍긍 중이다. 젊은 나이에 할 일을 이제 겪느라 쉽지 않다.


지금 일하는 곳이 스타트업 그러니까 성장하는 곳이라고 했더니 작은 조직이 더 힘들단 이야기를 해줬다. 그렇게 공감 자체가 귀하게 느껴졌다. 나 진짜 힘들거든 이란 말을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나보다.


친구가 자기가 지금 하는 일의 소신을 인스타그램에 올렸길래, 묻고 싶은 질문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것에 관해 꽤 긴 이야기를 나눴다.


각자 안정된 회사를 박차고 나온 그 순간을 회상했다. 어떤 면에서 나는 후회했고 Y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회사를 박차고 나온 걸 후회하는 이유는 조직생활의 그리움 때문이었다.

그말을 들은 Y는 당연한 거라고 했다. 새로운 길을 걷기 위해 다른 사람보다 치열하고 열심히 하는 중인 Y. 더 나아가기 위해 요즘 하는 고민도 어떻게든 헤쳐나갈 듯싶었다.


세상엔 쉬운 게 없다고. 끝없는 영업의 길이라고 우리는 공감했다. 어쩌면 쉬웠으면 쉽고 적당히 해도 누가 해주는 그런 일은 세상에 바라면 큰 코 다친다.


또 언제 만날지 몰라 아쉬운 만남. 적당한 시간에 마스크를 먼저 쓴 친구를 보곤 우리의 헤어짐이 곧이란 걸 알았다. 다음 스케줄이 있어서 한 행동이었지만.


오랜만에 이야기를 했고 나눴다.


한없이 한가롭고 편안한 오후를 보냈다. 거리 곳곳에도 사람이 많았다.


친구는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까. 나는 또 어느 길을 향해 떠날까. 우린 또 언제 만날까. 멀어지고 좁아지는 관계들이 아쉽고 안타깝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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