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일에 지쳐갈 때

30대 후반 기혼여성의 재취업분투기 ep 10. 일과 육아

by 김애니

오늘은 온전히 육아하며 하루를 보냈다. 한 가지만 집중하니까 다른 날보다 마음이 훨씬 가벼웠다. 다른 날의 의미는 일과 육아가 뒤엉키는 평일을 뜻한다.


일보다 육아가 수월할까. 요즘 돌아보면 일은 할수록 지쳐가는데, 아이와 함께 하는 순간들은 반짝거린다.


아이와 산책하는 순간, 나는 작은 보폭에 맞춰 가장 느리게 걷는 사람이 된다. 아이에게 속도를 맞추는 중에는 내가 얼마나 빨리 걸을 수 있는 사람인지 잠시 잊어버린다. 길을 가는 개미도 봐야 하고, 하늘에 뜬 달도 챙겨야 한다. 물 흐르는 소리, 개짖는 소리, 경찰차 소리 등 듣고 이야기해주고 할 게 많다. 아이와 산책할 때는 잠시 아이의 세계에 머문다. 때로는 그 경험이 내 삶을 풍요롭게 한다.


내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 거라는 생각에 악착같이 구하고 시작했던 일. 육아만 할 때는 그것이 주는 의미가 일보다 작게 느껴졌다. 일하면서 존재의 의미(이유)를 발견해왔기 때문에 그게 쏙 빠진 내 인생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듯싶다.


주변에서 일괴 육아하는 슈퍼우먼을 찾았던 걸까. 어렴풋이 그런 가상의 인물을 만들곤 내 마음대로 넘겨짚었던 것 같다. 일과 육아는 병행할 수 없는 대상인데 착각했던 건 아닐까.


어쩌면 일과 육아는 같은 기준으로 바라보면 안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을 이해해보겠다고 말도 안 되는 구렁텅이에 스스로 빠진 게 아닐까 묻게 된다.


현실육아하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일이 주는 의미가 내 삶에서 희미해지는 것 같다. 나는 예측할 수 있고 컨트롤이 가능한 일을 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떤 날은 오후 7시에 들어온다는 일이 1시간 20분이 지나 들어왔다. 아이는 재워달라고 해서 옆에 누웠지만 아무리 토닥여도 쉬이 잠들지 못했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아이를 재우다가 다시 일(?)을 시작했다. 결국 나는 협박하는 단어들로 아이를 울렸고 일은 피곤해서 대충 했다. 마트 가서 잘근잘근 씹어먹는 주전부리를 구매하므로, 차오르는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아무 곳에서나 연동되는 메신저. 일을 마치곤 가끔 다시 들어갔을 때, 메신저에 뜬 N표시에 놀랄 때가 많다. 뭔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긴장감이 늘 있다.


일하면서 눈은 침침하고 몸은 졸음을 겨우 버티는 날이 쌓여간다. 빨리 일이 마무리되면 좋겠다는 마음만 앞서는 날도 많아지고 있다. 이렇게 자꾸 늦어지는 일을 계속할 수는 없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일이 자꾸 늦어져서 피곤하니까 대충하게 된다. 대충 해야 빨리 끝난다는 오류에 빠진다. 내 것도 아니고 회사 것이니 마무리에만 집중하게 된다. 자꾸 일을 대충 하는 스킬만 늘고 있다.


갑자기 회사가 이사를 간다는 소식도 구성원(?)으로 당황스러웠다. 회사 이전은 생각지도 못한 이벤트였다. 왜 그 지역으로 갔는지 이유도 모른 채 옮겨지는 회사라니. 출퇴근 시간이 이전보다 왕복 30분 이상 늘어나는 부담감도 작용했다. 계속 재택근무가 이어진다면 사무실이 어디든 무슨 소용인가. 회사 이전 소식을 접하고 퇴사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잠시 할 정도로 점점 일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듯싶다.


또 걸리는 건 있다. 회사 구성원이 젊기 때문에 30대 후빈인 기혼 여성인 내가 정말 이 회사에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는 점이다. 나보다 다 젊고 회사와 일에 집중이 가능한 사람들. 회사와 거리두기 하는 나는 그들처럼 쏟을 에너지와 열정이 부족한데 어떡해야 좋을지 사실 모르겠다.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다는 생각으로 매일 견디며 다른 날로 넘긴다. 회사 일에서 배우는 점도 있다. 특히 독자피드백을 열람하는 일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부정적인 반응은 뼈 때리는 피드백이라 아프지만 가장 좋은 반면교사이기도 하다. 누군가 가려워하는 부분을 긁어주는 글, 그게 타인을 돕는 그런 쓰기인가. 타인이 읽고 도움이 될 만한 텍스트를 쓰는 습관을 들여야겠다고 다짐한다.


이렇게 정리하니까 요즘 내가 일의 의미를 잘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다시 일을 구했던 작년 11월과 지금 나는 어디에서 성장하고 있을까. 경제적 자립에 해당하는 돈, 그것 대신에 육아만으로 만족할 수 있겠니? 이제 정말 그러고 싶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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