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애니 Apr 18. 2022

[5문장쓰기] 적응 기간입니다

22.3.28~4.15 #재취업 #5살

[친정엄마]

친정집에 가면 시간이 쏜살처럼 흐르는 느낌이다. 아이랑 뭐하고 놀 것인지만 결정하고 시간을 보내면 된다. 어린이집 확진자가 속출해서 가정보육하겠다 말하곤 친정집으로 피신갔다. 8일의 꿈 같은 시간이 지나갔다. 아침에는 친정집, 오후에는 서울로 돌아오니 기분이 묘했다. 서울에서는 할 게 많아서 과부하가 걸리는 느낌인데, 엄마 덕분에 쉴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일이라는 단면]

유명한 대기업에서 4년 동안 케어서비스를 담당했던 K. 왜 그 일을 그만두고 회사에 들어왔냐고 이유를 물었다. 그는 비전이 없어서 그만뒀다고 했다. 아직 앞길이 창창해보이는 청년에게 비전 없음은 어떤 의미일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티나지 않고 계속 소모되는 느낌과 비슷할까. 한때 내 모습이 오버랩됐다.


[저작권]

(그동안) 콘텐츠를 만들었다 하면서 저작권 이슈에 민감하지 못했다. 한 강의를 듣고 후기 요약을 했는데, 내용을 덜어달라고 간곡한 부탁을 받았다. 뜨악했다. 그대로 후기를 요약해도 콘텐츠 원작자가 가진 십분의 일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강의 후기를 정리한다는 데 충실한 나머지 강의 원작자 입장에서 돌아보니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역지사지, 내겐 무얼 하든지 늘 어려운 숙제다.


[더 이상]

남의 콘텐츠를 반짝거리게 하는데 남은 내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았다. 잘할 자신과 목표, 에너지도 불충분하다. (그래서) 완전히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얼떨결에 시작은 했지만 잘할 자신이 없는 내 모습이 거울처럼 반사됐다. 요즘의 나는 이도저도 싫은 애매한 상태다.


산타는 중

[굳은 살]

5살에 접어든 아이는 뛰어노는데 진심이다. 말랑했던 아이의 살과 뼈가 단단해지고 탄탄해졌다. 아기 때 그 피부의 촉감이 아쉽단 달맞이의 이야기가 이해됐다. 야들거리던 아이의 손도 거칠어졌다. 보습에 신경을 좀 더 써줘야겠다.


[현장 너머]

롱블랙에서 슬로우파머씨 스토리를 읽었다. 식물조경에 문외한인 부부의 성공 뒤에는 현장이라는 답이 있다고 한다. 그들의 답이 마치 공부가 제일 쉽다고 말하는 수능만점자의 대답처럼 들렸다. 책상 앞 모니터보다 현장이 좋다고 나 역시 생각한다. 내가 속한 현장에서 맡은 바 잘하기 위해 어떤 답을 찾아야 하는 걸까.


[길 위의 시간]

올해 4월은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다. 집에서 사무실까지 약 1시간, 집에서 고객사까지 약 1시간이 걸린다. 돌아가는 시간은 일터에서 (절대) 고려되지 않는다. 밥으로 (계속) 한식뷔페를 먹으며 왜 중국김치를 주는지 생각한다.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며 겨우 5문장을 쓰곤 목적지에 어서 도착하길 기도한다.


[알 수가 없어]

요즘 시작한 새 일은 하루 전날, 어디로 갈 것인지만 알 뿐 퇴근 시간이 유동적이다. 9 to 6의 삶에서 대놓고 안정감을 느끼는 편이지만 아이가 들어오곤 9시간 동안 회사의 얽매이는 일이 매번 버거웠다.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우면 좀 괜찮겠다 싶었지만 매번 불안정한 하루를 살아내는 것도 곤욕이다. 살아내기 위함인지 아이와 남편에게 발악하든 감정쓰레기를 버리고 말았다. 내 삶의 원동력으로 이 불안을 어떻게 연료로 쓸 것인가 그것이 고민이다.


[마인드컨트롤]

마인드컨트롤을 하면서 일해야 하는 걸까? 일할 수 있음에 감사를 고백하면 버티는 게 맞나. 사실 아닌 것 같다. 누군가는 3개월, 6개월만 버티라고 조언한다. 나는 답을 알고 있지만 현실과 타협하며 결정을 보류하고 있다.


[아낌없이 사랑]

5살이 된 아이는 먹고 싶은 메뉴도 구체적이다. 얼마 전에는 뜬금없이 수박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의 작은 소원을 들어주려고, 과일가게에 수박이 보여서 덜컥 구매했다. 수박 한통은 3인 가족 먹기에 많아서, 주중에 홀로 계신 시아버지께 가져다 드렸다. 아이 덕에 4월부터 수박도 먹고 무더운 여름맞이 준비를 해본다.


[봄이 좋냐]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마음이 내려앉는다. 내 노동소득은 1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부자 중 누군가는 아이에게 돈은 줍는 거라고 가르치기도 하던데, 내겐 먼나라이야기처럼 와닿지 않는다. 비즈니스에서 을의 입장에서 오늘도 갑이 부럽다. 갑의 일이 많다고 하지만 을보다 많을까 싶은 쉬운 생각도 든다.


[실체없음]

아직 운전하는데 두려움이 있다. 어린이집을 가는 접은 골목길과 주차할 공간이 없다는 사실에 매번 괴롭다. 대안은 부딪히며 경험치를 쌓아올리는 걸텐데, 운전을 멀리하고 싶어진다. 실체없는 이 두려움 때문에 이건 운전의 문제가 아니라 상담이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었다. 60대 할머니도 그 좁은 길을 볼보SUV로 운전해서 주차하는데 나는 왜 그러는가 의문이 들었다.


[타인의 취향]

자동차를 좋아하고 살기 위해 먹는 미각을 가진 팀장 밑에 있다. 이런 취향은 처음이라 낯설다. 살기 위해 먹는 팀장의 평일 점심 메뉴는 백반집이다. 어떤 맛있는 것을 먹을까, 카페도 고민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그 팀장에게 제일 맛있는 건 담배랑 자동차이지 싶다.


[향기]

아이를 낳고 기르며 자연스럽게 멀리한 게 향수였다. 다섯살이 되니, 베르가못향이 가득한 핸드크림과 자몽향의 프레시향수를 손목에 발랐다. 일하러 가는 발걸음이 무거워 좋은 향으로 내 기분을 환기시키고 싶었다. 왜 이렇게 퇴사를 망설이고 있는가. 좋은 향이 주는 기운처럼 가볍게 박차고 나오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5문장쓰기] 자연은 서두르지 않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