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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부사수의 인마이백

내 조끼에 늘 있었던 도구들 #2

by 김애니

"청소 일이 마냥 괴롭기만 했다는 건 아니다. 이 일은 최악의 순간과 최고의 순간이 터널의 입구와 출구처럼 붙어 있다. 청소가 우리에게 부단히 일깨워 주는 것은 성취의 감각이다. 청소는 뒤돌아볼 때 의미를 찾게 되는 일이다. 도무지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던 난장판을 정리하고 극명하게 달라진 '비포'와 '애프터'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때, 특히 이런 똥구덩이나 다름없는 곳을 깨끗하게 치우고 뒤돌아보면 선사시대 고대인들이 매머드를 쓰러뜨렸을 때 느꼈을 법한 뿌듯함이 온몸에 솟구쳐 오른다.


사람들이 직업전선에서 겪는 위기는 경제적 위기 아니면 실존적 위기다. 격주로 토요일을 근무하고 월 150만원을 받는 우리가 겪는 위이가 경제적이라면, 우리가 청소해 주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겪는 위기는 실존적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얼룩 하나 없이 닦인 유리창의 가치에는, 막힌 변기를 뚫는 일의 가치에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이 일은 지극히 단순하기에 이 일을 수행하는 인간에게 부여하는 의미에 조금의 모호함도 허락하지 않는다. 내가 일을 제대로 안 해서 부끄러울 순 있겠지만 열심히 해서 끝마친 후에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하는 자괴감을 들지 않는다."

(어떤 동사의 멸종, 345쪽)

청소하러 갈 때는 몸에 착 붙는 가방을 주로 착용한다. 대부분 팀장의 차 조수석에 앉기 때문에 불필요한 게 그다지 필요 없다. 내 차도 아니니까, 나에게 필요한 것 위주로만 가지고 다녔다. 팀장은 자기 공간인 차였기 때문에 청소장비와 사생활에 가까운 물건이 (내 기준에서는) 넘쳐났다. 부사수는 (눈치껏) 팀장의 차 청소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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