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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이 넘어 해외여행에 빠진 이유

조금 재미있을 아빠의 이야기

by 여행작가 디오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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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을 넘어 칠순을 바라보시는 우리 아빠는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나 삶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나를 이해 못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우리 세대가 지금의 윗세대와 갈등을 겪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아마도 살아온 환경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아빠가 나를 가장 이해하지 못하고 탐탁지 못했던 것은 여행이다. 우리 아빠는 여권조차 만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주로 대학생 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해 모은 돈이나 학교 장학금을 사용해 해외를 다녀왔다.



그러면 아빠는 그것을 낭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여행은 보는 관점에 따라 낭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해외여행 가는 게 좋은 걸 어떡하나. 이곳저곳 다녔다.



그런 나를 보고 "우리나라도 예쁜 곳이 많다." "왜 그런데에 돈을 쓰냐" 등 해외로 나가는데 돈을 쓰는 게 아깝다고 생각하셨다. 당연하다. 아빠는 여행이나 휴가라곤 강원도 밖에 다니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해외여행은 1989년부터 자유화가 되었고 해외를 나가는 게 체화되지 않으면 나이가 들어도 해외를 나가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런데 2018년 아빠의 입에서 해외여행 이야기가 나왔을 때 기가 막혔다. "세부를 가보고 싶다." 정확히 '세부'라는 이야기가 아빠의 입을 통해 나왔다. "왜 세부가 가고 싶은데?" 나는 궁금해서 물어봤다. " 그냥 거기 푸른 바다가 있는 것 같아서... " 휴양지를 가보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여권은 있고?" "없지" "만드슈. 가게" 엄마에 의하면 바로 다음날 여권을 만들러 가셨다 하더라.



세부까지 비행시간은 4시간 대라 거리도 가깝고 바다도 맑고 날씨도 환상적이다. 리조트는 가성비 2박, 5성급 리조트 1박 이렇게 했다.



부모님이랑 가는 첫 여행이기 때문에 동선에 차질 없이 3박 4일의 계획을 최대한 즐겁게 설정했다. 무엇보다 날씨가 더우니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즐기는 여행으로 했다. 아빠가 가장 기대하는 것은 호핑투어였다. 그 큰 배에 우리 2명만 타는 투어로 했다. 선원이 5명이라 우리보다 많았던 게 참 재미있었다.



호핑투어는 결과적으로 대만족이었다. 맑은 바다를 보고 싶은 아빠의 욕구도 충족해 주었고, 여러 섬을 돌아다니면서 즐긴 게 좋았다. 섬에 차려진 음식도 환상적이었다. 아빠는 즐거워 보였다.



첫 해외여행이라 걱정이 많은 아빠는 햇반, 컵라면 등등 이것저것 많이 가져오셨다. 5성급 호텔 식당에서 웨이터에게 햇반을 주며 데워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웨이터는 그런 일이 많은 듯 아무 일 없이 햇반을 데워다 주었다.



원래 먹으려고 했던 맛집들의 음식은 모두 다 성공했고, 호핑투어 만족도도 좋았고, 5성급 리조트에서 보낸 날도 좋았다. 우리 아빠는 첫 해외여행을 아주 즐겁게 보냈을 것이다.



그 후로 코로나 때문에 해외여행을 가지는 못했지만 아빠는 그동안 해외여행 박사가 된 것 같았다. 전 세계에 있는 푸른 바다에 한해서는 나보다 더 전문가다. 심심하면 유튜브로 푸른 바다가 있는 휴양지 영상을 보고 계신다.



다음은 어디를 가야 한다느니, 타히티가 어떻니 등등 해외여행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아마 여행의 즐거움을 제대로 맛보셔서 그런 게 아닐까? 아니면 뒤늦게 나와 같은 역마살의 운명이 깨어난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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