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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운명을 캐리어에 맡긴다고?

입국 레이스

by 여행작가 디오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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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지에 도착하는 것은 언제나 기분이 좋다. 얼른 입국 심사를 받고 캐리어를 수령해 한시라도 빨리 공항을 떠나 여행지를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또 시간은 한정적이라서 서둘러야 한다.



재미있는 상황은 비행기가 도착했을 때 발생한다. 비행기가 게이트에 도착하고 안전벨트 표시등이 꺼지자마자 우리는 약속한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짐을 빨리 꺼내야 하기 때문이다.



비행기 착륙 후 항공기 문이 열려야 우리는 내릴 수 있지만 모두 앞을 째려본다. 미어캣처럼 목을 들고 문이 언제 열리나 계속 쳐다본다. 애타게 기다려본다. 문이 우리들의 눈치를 보고 미안해서 빨리 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절대 서있지 않는다. 내 가방만 유유히 내리고 자리에 앉아있는다. 다리 아파서. 어차피 내 차례가 오면 길이 트이고 앞에는 아무도 없다. 지나갈 때 빈 통로에서 가끔 짐을 내리는 분이 있는데 기다렸다 살짝 피해 가면 된다.



문이 열린다. 준비... 출발! 문이 열리자마자 레이스가 펼쳐진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야 입국심사 줄을 통과하기 때문인 것 같다. 경보, 달리기와 비슷한 수준의 걷기 등 레이스가 펼쳐진다.



보통 비행기의 1/3 지점에 앉아 빠르게 내리는 편인 나는 절대 달리지 않는다. 무빙워크가 있으면 오른쪽에 서있는다. 하지만 급하신 분들은 이동속도 지원을 받아 더욱 빨리 움직인다.



그렇게 첫 번째 관문인 입국 심사대에 통과한다. 한 외국인이 우스갯소리로 아시아인 뒤에 서있으면 입국심사를 빨리한다고 해서 자기는 아시아인 뒤에 선다고 한다.



맞다. 우리는 빠르다. 아시아인 중 특히 한국인이 가장 빠를 것이다. 입국 심사 운명의 줄이 4개가 있으면 우리는 경우의 수를 생각해 현재 입국 심사를 받는 사람이 끝날 타이밍, 내 앞에 몇 명이 서있는지 등을 파악해 가장 최적화된 길을 찾는다.



드디어 내 차례다. 입국 심사관에게 싱긋 웃어주고, 잘 도착했다는 환영의 의미인 스탬프를 여권에 쾅 찍고, 캠으로 셀카도 찍고, 손가락도 몇 번 찍어준다. 입국은 문제없다.



마지막 관문인 랜덤 캐리어 배출이 남았다. 이미 수화물 벨트 근처에 사람들이 많이 있다. 모두 캐리어를 배출하는 창구를 계속 쳐다본다. 째려보면 빨리 나오는 듯하다.



나는 절대 서있지 않는다. 뒤에 있는 벤치에 앉아 내 캐리어를 살펴보다 나오면 가져간다. 근데 점점 시야가 흐려진다. 사람들이 수화물 벨트를 빙 둘러쌓아 캐리어 벨트의 시야를 모두 가리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도 군중과 함께 하나가 된다. 내 캐리어가 벌써 나와있다. 힘차게 달려가신 분들에게 약간 미안해지지만 캐리어를 들고 나는 내 갈길을 간다.



물론 더 빨리 나가는 방법이 있다. 수화물을 맡기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여행 맥시멀리스트인 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는 비용을 내고 좋은 좌석을 타면 캐리어가 빨리 나온다. 돈으로 빨리 나갈 수 있다.



아무리 빨리 비행기에서 내려도, 입국심사를 빨리 통과해도 결국엔 캐리어가 나와야 나갈 수 있다. 내 빠른 입국의 운명은 캐리어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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