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더운 추석을 보냈다. 밤새 에어컨 틀고 자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추석연휴가 끝나고 이틀정도 비바람이 휘몰아쳤다. 비바람이 멈추고 푸르른 하늘이 돌아왔다. 나를 둘러싼 자연, 삶, 사람들 모두 그대로인데 오즈의 마법사의 회오리바람처럼 더위만 데려갔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을 배웅한 뒤 집 안이 조용해졌다. 고요함은 잠시 오전 9시가 되자 집 앞 초등학교에서는 신나는 음악과 진행자의 씩씩한 목소리가 동네방네 퍼졌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드높은 하늘의 가을, 짧은 가을을 즐기는 건 운동회 하는 아이들뿐만 아니었다. 간편한 복장, 운동복 복장을 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뒷산으로, 호수공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울려 퍼지는 확성기 소리 때문인지 내 엉덩이도 들썩거렸다. 집안일을 빛의 속도로 한 뒤 작은 돗자리 하나와 책 한 권을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섰다. 시원한 바람이 바삐 움직여 열이 오른 내 몸을 식혀주었다. 푸른 하늘, 커다란 구름을 내 눈에 담자 미소가 절로 나왔다. 머리는 따뜻한 커피, 몸은 차가운 커피를 외쳤다. 오늘은 몸이 이겼다. 차가운 커피를 한잔 들고 카페 사장님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다. “짧은 가을 즐기세요!” 한마디에 사장님에게 들떠있는 내 마음이 들켰음을 알았다. 높은 건물 사이를 통과해서 도착한 곳은 집 근처 호수공원이었다. 확 트인 호수를 보자마자 ‘잘 나왔다!’ 스스로를 칭찬했다. 동쪽에서 떠오른 해는 바람과 물을 만나 수많은 반짝임으로 나를 맞이해 주었다. “아침호수야! 반갑다. 가을아 반갑다!”
까미유 끌로델_벽난로가에서의 꿈, 1898
뜨거움과 차가움 사이
더위와 시원함 사이에서 내가 일상을 보내고 있을 때, 까미유 끌로델은 뜨거움과 차가움 사이에 있었다. 차가워진 벽난로 앞에서 무릎 꿇고 두 손을 벽난로에 의지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성냥팔이 소녀’ 같았다. 크리스마스이브, 맨발에 얇은 옷을 입고 추위를 온몸으로 버텨내며 성냥을 팔았던 소녀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 보고 또 봤던 책이었다. 성냥을 사는 사람이 없어서 늦은 시간까지 성냥을 팔기 위해 돌아다녀야 했던 소녀가 성냥불을 켜자 꿈같은 일이 일어났다. 따뜻한 난로와 근사한 요리가 소녀 앞에 나타났다. 성냥불이 꺼지자 모든 게 사라져 버렸다. 정말 안타까웠다. 다음 성냥불을 켜자 크리스마스트리와 함께 소녀의 할머니가 나타났다. 소녀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할머니와 함께 떠났다. 할머니와 떠날 때는 소녀의 죽음을 몰랐다. 다음 장에 미소를 지으면서 생을 마감한 소녀는 꽤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성냥팔이 소녀> 책을 통해 소녀를 향한 불쌍한 마음, 환상을 경험하는 즐거움과 함께 죽음이라는 아픔까지 느꼈었다. 40대 후반의 나는 까미유 끌로델 <벽난로가에서의 꿈, 1898> 조각을 보며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성냥불처럼 뜨거웠던 벽난로가에서 그녀는 어떤 모습을 꿈꿨을까? 사랑하는 사람과 미래를 꿈꿨을까?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 재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을 꿈꿨을까? 아니면 건강과 장수를 꿈꿨을까? 연기만 남기고 사라진 성냥불처럼 차갑게 식어버린 벽난로를 붙잡고 그녀는 간절히 기도를 한다.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일까, 누군가를 위한 기도일까? 뜨거움과 차가움이 공존하는 벽난로가에서 까미유 끌로델, 그녀는 어떤 꿈을 꾸며 삶을 살았는지 궁금해졌다.
까미유 끌로델
열정과 기도
‘조각’하면 역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일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운동장과 화단 사이에 여러 조각상들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 조각상과 함께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이 있었다. 그렇기에 ‘로댕’이라는 조각가는 무척 친숙했다. ‘까미유 끌로델’은 작년 <도슨트와 함께하는 미술관 여행> 강의 때 처음 알게 되었다. 6개월간 함께한 엄마들의 글쓰기 모임은 <살롱 드 까뮤>였다. 까미유를 좋아하는 김상래 작가(진행자)가 사심 가득 담아 지은 모임명이었다. 올 초부터 내 인생에 까미유가 들어와 있었다. 그녀의 인생에 대해 대충 알았지만, 깊숙이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벽난로가에서의 꿈, 1898> 작품 하나가 그녀의 삶을 무척 궁금해지다니, 작품이 이끄는 힘이 강력함에 스스로 놀랬다. 로댕과 연인이었던 그녀는 어른시절보다 어린 시절이 내 호기심을 더 자극했다. ‘까미유 끌로델’의 남다른 재능을 알아본 사람은 바로 아버지였다. 그녀는 주머니에 작은 칼을 가지고 다니면서 과일 껍질을 벗기기, 연필 깎기 또는 진흙을 잘게 부수는 데에 사용했다. 집 근처 숲 속에서 놀던 까미유는 우연히 구부정하고 울퉁불퉁한 '제앵'이라는 바위를 발견했다. 이 바위는 까미유의 조각 본능을 드러내게 한 엄청난 제물이었을까? 까미유의 조각 열정이 피어올랐다. 진흙으로 이 바위의 형상을 만들기 시작했고, 나폴레옹 흉상이나 비스마르크, 다비드와 골리앗에 관한 이야기에 관련된 조각 작품을 만들었다. 동생들을 모델로 만든 조각을 보며 가족을 사랑하는 까미유의 마음도 느껴졌다. 그녀는 자신을 태우며 세상을 밝히는 성냥불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조각으로 꿈과 열정을 펼쳤다. 로댕과 헤어진 이후에도 조각을 계속했다. 까미유는 <벽난로가에서의 꿈, 1898> 조각 속에 자신을 위한 꿈과 희망을 담아 기도를 했을 것이다. ‘혼자서도 할 수 있어!’
차가워진 벽난로 가처럼 세상의 시선은 얼음보다 더 차가워졌지만, 조각 속에 담긴 그녀의 열정은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불처럼 내 기억 속에 간직될 거라고 까미유에게 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