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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애희 Nov 02. 2024

난 잘하는 게 없어.

딸과의 대화


나 좀 심각해.

금요일 늦은 밤 딸아이 표정이 안 좋다.

조금 전까지 친구들과 영상통화 열심히 했는데, 뭐가 심각한 걸까? 우선 씻고 침대에 누워 얘기하자고 했다.

지난 추석 이후 아버님 병간호로 남편은 매주 목요일 광주를 갔다 일요일 집에 온다. 이번주는 아이들과 집에 머물며 주말 일정을 하기로 했다. 남편이 없는 틈을 타 딸아이와 함께 자기로 했다. 혹시 서운해할지도 모르니까 아들에게도 같이 잘래? 물었다.


 "사양(4 양)하겠습니다. 메에~메에~메에~메에~" 중2 아들은 유쾌하게 내 제안을 거절하고 자기 방으로 갔다.

난 읽고 있던 <채식주의자> 책을 덮어두고 아이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했다.

난 공부도 잘하는 것도 아니고, 내 꿈은 이루기 힘들 거 같고(꿈=가수), 친구들은 잘하는 게 많은데 난 잘하는 게 없어!

친구들과 영상통화를 하며 서로 잘하는 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한다. 친구들이 내가 잘하는 거 얘기해 주는데 아닌가 같아.

네가 얼마나 네 할 일을 열심히 하는데! 했더니 엄마가 아는 가원이는 다른 모습이란다. 아이들도 사회생활을 하며 다양한 모습, 상황에 따른 모습을 조절할 수 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알고 있는 아이가 재미있다. 우선은 무슨 말을 해도 다 아니라고 대답하는 아이에게

좋아하는 걸 생각해자고 했다. 꾸미는 거 좋아해! 를 이어 아이는 좋아하는 것들을 줄줄이 이야기했다. 노래 부르기, 줄넘기, 그림 그리기, 친구들과 놀기 등 신이 나서 이야기한다.

그럼 엄마는 뭘 잘해? 물었더니 엄마는 새로운 것에 도전을 잘해. 유아교육을 공부해서 유치원선생님도 하고, 미술관에서 도슨트도 하고, 학교에서 청개구리 선생님도 하고, 컴퓨터 방에서 글쓰기도 열심히 하잖아. 자기가 보고 느낀 것들을 조잘조잘 잘도 얘기한다.

그럼 오빠는? 물었더니 수학 잘한다고 한다. 정말? 놀라며 되물었더니 학원에서도 학교에서도 수학성적이 좋다며 엄마 아빠 수학머리가 오빠한테 다 간 거 같다고 이야기하며 다시 자신을 돌아본다. 그리고 나 놀리는 거 잘해! 하며 배시시 웃는다. 그건 정말 잘하는듯하다며 맞장구를 쳐줬다.

친구들은 뭘 잘해? 묻자 oo은 성실하고 oo은 수학을 잘하고 oo은 친구를 잘 챙겨주고 oo은 그림을 잘 그리고 재잘재잘 끊이지 않는다. 마무리는  난 하나를 특별히 잘하는 게 없다고 한다.

넌 엄마 사랑하는 거 엄청 잘해! 하며 웃었다. 그게 아니잖아 하며 비음이 섞인 말투로 투정을 부린다. 이거 잘해!라고 이야기 해도 다 아니라고 하니까 절대 "아니"라고 못하는 거 얘기한 거라 하니 웃는다.

근데 넌 친구들이 잘하는 걸 어쩜 이렇게 잘 알아? 하며 다시 아이의 이야기를 이어가 보았다.

넌 친구들을 두루두루 살피고 상대방 이해를 엄청 잘하네! 하며 3년 내내 선행상 받은 사람 누군지 물었다. "나." 선행상을 3년 동안 받은 건 친구들이 너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갖고 좋아한다고라고 다시 각인시켜 주었다.

그럼 난 뭘 잘하는데? 묻는다.


"공감."

그렇네. 공감 잘하는 가원이네! 하자 난 어떤 직업을 할 수 있는 건지 물어본다. 선생님이지! 하며 토닥토닥해줬다.

난 법에 따라 결정을 할 때도 결정을 잘 못할 거 같아.


넌 법에 따라 재판을 하면서도 공감을 잘하기 때문에 따뜻한 결정을 할 수 있을 거야.


어려운 수학 문제 풀 때 어때? 기분 좋아.


넌 수학문제를 풀 때도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고민하지? 서로 다른 상대방에게 공감하듯 수학문제도 다양한 방법으로 도전해 보고 해내잖아. 네가 수학은 맞다 틀리다만 있다고 했던 말 기억나? 수학은 결과를 볼 수 있어. 하지만 수학문제를 푸는 과정도 엄청 중요한 거야.


너 사회 좋아하지? 네가 공감을 잘하니까 사회가 재밌나 봐. 사회는 함께하는 거잖아^^


마무리로 한마디 날렸다.


넌 엄마아빠의 공감능력을 닮았나 봐!


아이가 웃는다.



난 상상도 잘해.


자기 전에 상상하면서 자면 얼마나 재밌는지 친구들에게 얘기해 줬는데 잘 모르더라고. 쫑알쫑알


내가 좋아하는 책 주인공은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야. 상상하면서 편지를 잘 쓰거든.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난 <빨강머리 앤>을 추천했다. 앤이 상상하는 이야기 보면 너 엄청 좋아할 거야.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 이야기도 좋아.라고 이야기를 하며 매튜가 죽는 장면이 떠올랐다.


지금 병상에 누워계시는 아버님이 떠올랐다.


엄마는 <빨강머리 앤> 볼 때마다 펑펑 울었어. 너도 엄청 울걸! 넌 공감을 잘하니까!

난 빨강머리 앤의 미사여구 가득한 상상, 앤 특유의 깊은 생각, 창의적인 해결력이 좋다. 매튜의 죽음은 매번 읽을 때마다 내 눈물을 쏙 빼놓는다.

우리는 곧 소중한 사람과 이별을 해야 함을 알고 있다. 일상 속에서 그 이별에 대해 생각한다. 아이가 받아들여야 할 이별을 문학 속에서 간접 경험하고 조금이나마 덜 아팠으면 좋겠다.


넌, 잘하는 게 없는 게 아니야.

잘하니까 별일 아닌 것처럼 사는 거야.

그런데 누군가가 이야기해 주면, 그때서야 알아차리지.

엄마 잘하는 거 알려줘서 고마워.

공감 잘하는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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