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 조건

르네 마그리트_골콩드Golconde(겨울비), 1953

by 전애희
르네 마그리트_골콩드Golconde(겨울비), 1953 캔버스에 유채, 80.7 x 100.6 cm 메닐컬렉션

엉뚱한 그녀

사이렌 오더로 커피를 주문했다.


느긋한 발걸음으로 스타벅스에 가면 별칭으로 날 불러준다. "러블리 제니님. 음료 나왔습니다." 러블리 제니는 내가 지은 별명이자 애칭이다. 내 이름 세 글자를 빠르게 부르다 보면 '제니'처럼 들려 지은 내 영어 이름이다. 제니처럼 내가 지은 애칭이 있다면, 주변 사람들이 지어준 별명도 있다. 내 이름에서 힌트를 얻은 A, 앞니가 큰 내 모습을 보고 지은 토끼, 토깽이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 친한 친구들이 '뚤레뚤레, 전우세'라는 별명으로 날 불렸다. 친구들과 함께 어딘가를 갈 때 난 친구 팔짱을 끼던지, 친구 가방끈이나 친구의 옆구리 쪽 옷을 살짝 잡고 다녔다. 친구는 나의 길잡이가 되고, 난 온 세상을 살폈다. 그리고 가끔(어쩌면 자주) 남들이 하지 않는 엉뚱한 생각으로 웃음을 주거나, 황당함을 주기도 했다. 이런 나의 모습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올해 처음 만난 민들레가 반가워 인사 나누고, 바람에 빙글빙글 돌면서 비행하는 나뭇잎을 한참 바라보기도 했다. 산책하는 까치에게 인사를 하며 "넌 이름이 뭐니?" 묻던 중 뒤에 오는 행인에 혼자 민망했던 날도 있었다.

"중절모는 전혀 독창적인 게 아니다. 오히려 중절모 쓴 남자는 익명성 속에 숨은 미스터 애버리지(Mr. Average, 평균인)다. 나 역시 중절모를 쓰고 있다. 대중 사이에서 눈에 띄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르네 마그리트가 이야기했다. 하지만 지금은 중절모는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하나의 오브제가 되는 듯하다.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친 60대 정도 남성분이 깔끔한 정장을 입고 중절모를 쓰고 있다. <골콩드>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사람 같았다. 지나가는 행인,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내 눈길도 그의 뒷모습에 한참 멈춰있었다.


무조건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골콩드, 1953>는 <겨울비>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겨울비처럼 비가 내리던 날, 우산을 쓰고 길을 걷던 나는 궁금한 게 생겼다. 비처럼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나에게 다가오는 것들은 뭐가 있을까 생각했다. 먼저 하얀 눈이 떠올랐다. 이어서 햇살, 바람, 아카시아 향기처럼 날 기분 좋게 하는 자연의 향기들이 떠올랐다. 순간 내 곁에 공기처럼 함께하는 자연이 한없이 고마워졌다. 잠시 후, 엄마라는 이유로 아무 조건 없이 날 사랑해 주는 아이들이 떠올랐다. 나에게 달려와 품에 안기는 아이들을 생각만 해도 행복한 미소가 지어졌다.


우리에게 온 별은 캄캄한 우주 속에서 빛나는 별처럼 반짝이는 두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무한한 신뢰와 사랑으로 날 봐주던 그 시절이 지나고, 세상과 나를 저울질하며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십 대 중반의 아이에게 때론 서운함을 느낄 때가 있다. 꽃샘추위처럼 들쭉날쭉한 감정에 내 마음도 왔다 갔다 한다. 때론 내 마음이 번개처럼 변할지라도, 평온하게 내리는 <골콩드(겨울비)> 속 신사처럼 내 마음을 진정시키고 싶다. 질서 속에 평온힘을 찾은 후 아무 조건 없이 아이들을 품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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