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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cent diary Jun 04. 2024

나의 라이브러리, 나의 안식처

이곳은  나의 본질(essence)이 만들어지는 곳



도서관은, 진정한 미덕으로 가득한 고대 현인의 모든 유물이, 그리고

현혹과 기만이 없는 모든 것이 보존되어 안식하는 신전이다 _프랜시스 베이컨




그렇다.

현혹과 기만이 없는 모든 것이 보존되어 안식하는 신전.

나의 안식처.



(Prologue)

대학생이었던 나는,  학교의 중앙도서관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직 내가 가보지 못한 수천 개의 세상이 글이라는 존재들을 발견하고는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저 이  수많은  페이지들을  모조리 '다 읽어야겠노라'라는 막연한 결심을 가슴에 품었던 시간들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결심으로 학생의 신분일 때는 도서관에 매일 출입하여  수백 권의 책들을 신명 나게 읽곤 했는데, 이런 나를 보고  절친 친구는  

단지  "콘셉트" 일 거라 생각했다며  고백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보는 것을 콘셉트로 생각했다니 그렇다면 나는,  

책 읽는 모습 자체가 설정 콘셉트이었던 프로 컨셉러였단건가_ 20년 전에 이런 생각을 한 친구의 안목이 지금 생각해 보니 대단하다.  지금으로 따지면 ' 부캐 '(부 캐릭터)로서의 의미인데 오히려 나는 책을 좋아하는 것이 나의 본캐이고, 그 밖의  모습들이  사회적인  멀티 페르소나를 반영한  멀티 부캐(부캐릭터)인 셈이다.

대학교와 대학원 시절 내내 늘  도서관에서 시작해서 도서관으로 끝나는 나를 보고 그녀는, 자기의 인생 3대 미스터리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내가 책을  항상 읽고 있는다는 게  포함돼 있다고 했다. 나머지  두 개의 미스터리는 그녀의 프라이버시 문제로 밝히진 않겠다. 잠시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가자면.. 그 대단한 안목의 친구가 지금  많이 보고 싶어 진다. (지금은 아이 둘 엄마 박사가 되어버린 그녀. 잘 지내겠지)





나의 라이브러리 - 수천 페이지 속으로 들어가 숨어 버리고 싶은 그곳. 나의 케렌시아(Querencia)


아이와 함께하는 도서관 강의의 문구이다. 책을  한 권 읽을 때마다 , 좋은 스승을 만난 것같이 책 속에서  세상을  배웠고 살다가 힘들거나 어려움이 있을 때 역시  책으로 위안을 받았다.


책은 아무래도 좋았다.  다만 문제는 책을 읽어야 하는 물리적인 시간이다.
어린 시절부터  시간이 나면 책 읽는 것으로 여가를 보내던  책 읽기 컨셉러의 패턴이기에   휴양지를 가더라도 책은 늘 품에 자리 잡았는데,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는  아쉽게도 나의 품을  책에게 내어줄 수 없게 되었다. 책을 보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육아와 집안일로 인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에는  너무나  큰 스트레스로 다가와 나는 종종 무력감을 맛보곤 하였다. 안 되겠어서  아기를 재워놓고 밤에 책을 몰래 보다 보니  금단의 열매를

먹기 위한 아담과 이브처럼  시간이 너무 기다려지고  그 시간에 더 놀고 싶고( 책 보는 게 노는 거다) 그러다 보니  생활 리듬이 깨지게 되어 일상에 지장을 주었다.  

역시,  너무 과하면  화를 불러일으킨다.

잠 안 자고 새벽에 어두운 수유등 아래에서 책을 읽어 가다 보니 눈 시림 증상과 안구 건조증이 나타났다. 눈은 얼굴의 창문이다. 나의 창에

더 이상의 반짝임은 없다. 눈이 아프니 얼굴의 표정까지 안 좋아지고 그러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혹시 육아우울증이 온 것이냐며  걱정을 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육아로 인한 우울증이기보다는

책을 하루종일 읽지 못해서 우울증이 올 지경이었다. 한번 책을 읽기 시작하면  아주 작정을 한 사람처럼  며칠 밤을  책에 파묻혀 살고 싶어 졌다. 고백하건대  육아로 힘들 때 나는 조용한 도서관에 혼자서  책 읽는 시간이 그렇게 달콤했기에 떠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책을 품고 읽으면 숨통이 확 트이고  머릿속이 선명해지면서 내가 나 다울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 여겼다. 하루종일 책만 읽고 싶었다.

책 속의 수천 페이지 속으로 들어가 숨어 버리고 싶었던 그 시절의 나. 피할 수 없음 즐기라는 패기 있는 말이 떠올라  집안 어딘가에 나만의 라이브러리를 만들기로 한다. 난 알뜰한 아기 엄마이니 돈 한 푼 안 쓰고  '0원으로'  나만의 케렌시아를 만들어 나간다. 나만의 케렌시아의 콘셉트는  미술작품이 걸려있는 갤러리와  라이브러리의 공존이다. 책 읽기 컨셉러라는 소리까지 들었으니 제대로 집안에 도서관을 만들어 보았다. 총 세 곳의 영역에  나의 라이브러리가 완성되었다.




너와 나의  라이브러리 _ 우리는  평생을 함께할 좋은 메이트가 될 거야.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하게 된 시절부터  지금까지, 도서관은  엄마의 안식처이자  아이의 놀이터이다.
감사하게도  아이는 엄마를 너무나 좋아해서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위기는 기회라 했던가. 나는  나의 사랑스러운 감시자에게  아까 위에서 말한 콘셉트를 좀 부려보았다. 집안 곳곳에는 책이 있고 ( 그 어떤 책이라도 좋다)  시간만 나면 나는 책을 집어 들어 읽었고, 아이는 엄마가 보는 저것이 무엇인지  확인을 꼭 해야 하는 철저한  감시자인지라 어김없이 나에게로 온다. 그럼 아이의 두 눈에도  책이  담긴다.

물고 있던 쪽쪽이를 집어던지며 엄마 따라 책을 넘기기에 바빴던 생후 200일 인생의  아기.

성공이라고  호들갑 떨지 않는다. 독서는 평생의 습관이기에  기저귀를 찬 아이를 안고 우리 함께 책 여행을 떠나보자 하며   계절에 맞는 옷을 입고 도서관으로 나들이를 다녔다. 코로나가 오기 전이라  옷차림도 시원하고  자유롭게  도서관에서 책을 꺼내보며 시간을 보내며 휴가 온 것처럼 매일이 좋았다. 북캉스라는 말이 이래서 나온 거구나. 아이와 내가 온몸으로  책을  누리던 시절,  첫 돌을 겨우 넘긴  나의 아기그림책이 둘러싸인 이곳,  너와 나의  라이브러리에서    일곱 발자국을

혼자 걸어 나갔다. 책을  향해서

첫걸음마는 라이브러리에서.

그렇게 아이의  사계절이  5번이 지난  5년 하고도 몇 개월이 지난  지금은  파란색 강의실의 문이 매력적인 도서관에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  초등학교 언니 오빠들과  책을 펴서 읽고 있다. 유일하게 미취학 아동 신분인 아이는 아기 염소 같은  목소리를 내며 그림책 연계 수업을 듣고 있다.



저 안에서   어떠한 세상이 펼쳐질까.

책을 보며  어떤 질문을  떠올렸을까.

페이지를 넘길 때   너는 두근거렸을까.  

아니면 엄마가 보고 싶었을까.









그림책이 있기에   아이도 성장하고 나도 성장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갖는 기대는  단 한 가지.

스스로의  에센스를 찾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의 안식처를 찾아가는 것.






(Epilog)
나의 아이가 자라  10년 후 , 20년 후  대학생이 되었을 때, 너와 나는  이 세상의 모든 도서관을 다니며  

좋은 세상을   눈으로 읽고  마음에 품어

흔들리지 않고 너만의 인생을 사는  그런  어른이 되어가도록 옆에서 말없이 책을 건네주는 

평생의 메이트가 되어 주고 싶다.






docent diary 도슨트다이어리 · 미술·디자인·북큐레이션·
눈길이 닿는 그곳에서부터 시작되는 사유의 공간. 미술관과 학교에서 그림을 나누며,  책을 통한 인문학과 예술을  다이어리로 기록해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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