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라이더라는 게임을 해보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카트라이더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유행하는 롱런 게임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부스터를 사용하며 짜릿한 속도감을 느끼는 것도 재밌지만, 카트라이더가 재밌는 이유 중 하나는 다양한 서킷을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실제 포뮬러 1(F1) 레이싱 서킷을 본떠 만든 서킷들도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카트라이더 게임 개발 회사(넥슨)에는 이러한 서킷을 설계하는 디자이너가 있을 텐데요, 반도체 서킷 디자이너의 업무를 설명하기에 카트라이더 서킷 디자이너만큼 좋은 직업은 없을 것 같습니다.
카트라이더 서킷 디자이너가 '싱가폴 서킷'을 설계한 과정을 한 번 따라가 보며, 반도체 서킷 디자이너의 업무도 함께 배워보겠습니다. 카트라이더 서킷 디자이너가 무작정 도로를 깔거나, 다리를 놓거나, 혹은 건물을 배치하는 것을 먼저 진행하지는 않습니다. 서킷 디자이너의 첫 번째 업무는 서킷의 목적과 특성을 정의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카트라이더 서킷 디자이너는 "싱가폴 서킷은 스피드전 목적의 반시계 방향 서킷이고, 한 바퀴 기준 6분 소요되는 난이도 2 수준의 서킷"이라고 정의하는 것에서 설계를 시작하였을 겁니다. 반도체 서킷 디자이너의 업무도 마찬가지입니다. 회로의 목적과 특성을 정의하는 것에서 시작하죠. 예를 들어, "이 반도체 회로는 휴대전화 카메라 손떨림 방지 목적의 회로이고, 100 MHz* 속도에서 동작하는 회로"라고 정의하는 것에서 회로 설계를 시작할 수 있겠습니다.
*MHz:백만 Hz(헤르츠)를 의미함. 1MHz는 초당 1백만 번의 진동신호를 처리하는 시스템의 속도를 의미함.
[싱가폴 서킷] 출처 : 나무위키
그다음 단계로, 정의한 목적과 특성을 만족하는 서킷을 설계하기 위해, 카트라이더 서킷 디자이너는 실제 노면 종류와 도로 최소폭 등을 선정합니다. 카트라이더 서킷 디자이너는 "싱가폴 서킷은 스피드전 목적의 서킷이므로 매끄러운 노면을 활용하고, 난이도 2 수준의 서킷이므로 도로 최소폭은 카트 6대 폭 넓이로 선정"하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도체 서킷 디자이너는 어떨까요? 반도체 서킷 디자이너는 반도체 공정을 진행할 파운드리 공정과 회로 선폭 등을 선정합니다. 예를 들어, "이 반도체 회로를 설계하기 위해, 삼성 파운드리의 BCD* 공정을 활용하고, 130nm 선폭으로 선정"하겠다고 할 수 있습니다.
*BCD=Bipolar CMOS DMOS 공정으로, Bipolar 소자/CMOS소자/DMOS소자를 제공하는 공정
디자인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 배웠습니다만,
이쯤 되면, 도대체 싱가폴 서킷은 언제 그리는 것인지 궁금할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카트라이더 서킷이 되었건, 반도체 서킷이 되었건, 최종 그림이 가장 중요한 산출물입니다. 다만, 오늘 글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서킷 디자인의 첫 단추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니다는 점입니다.
업무의 근본과 시작점을 이해하는 것은 실무 그 자체를 더욱 빛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